성명 및 논평

[성명] CJB청주방송, 대전MBC, TJB대전방송… 노동을 탄압하기에 바쁜 방송사에 미래는 없다

2020-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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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CJB청주방송, 대전MBC, TJB대전방송…

노동을 탄압하기에 바쁜 방송사에 미래는 없다


지상파 방송사가 위기라고 말한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는 지상파 방송사에 집중되었던 수요를 분산시키고 있고, 이는 다시 방송사의 광고 수익을 감소시켜 재정 유지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 그러나 방송사의 위기는 수요 감소나 재정난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매일매일 한 편의 방송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헌신하는 ‘방송 노동자’의 노동권과 인권을 무시하는 방송사들의 태도가 이 위기를 불러온 한 축이다.


충청북도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민영 지상파 방송인 CJB 청주방송에서 14년 동안 일한 이재학 PD는 제작진의 열악한 처우를 견디다 못해 개선을 요구했다가 하루아침에 모든 프로그램에서 강제 하차당했다. 부당해고였다. 그는 ‘이름만 프리랜서’였을 뿐 청주방송에 전속성을 가진 노동자로 일했고, 계약서 한 장 제대로 써본 적이 없었다. 이재학 PD는 청주방송에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청구했지만, 청주방송은 이재학 PD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대신 갖은 수로 재판을 방해했다.

결국, 이재학 PD는 올해 1월 1심 판결에서 패소하고 말았고, 억울함을 견디지 못해 2월,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이후 3월부터 6월까지 진행된 진상조사는 이재학 PD의 노동자성이 다툼의 여지 없이 분명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고인의 죽음에 대한 사용자 측의 책임도 너무나 명백했다. 그러나 청주방송은 여전히 제대로 된 사과를 피하며, 이재학 PD 유가족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있다.


방송 노동자의 심장에 대못을 박는 일은 민영방송만이 저지르는 일은 아니다. 공영방송인 대전MBC는 1990년대부터 아나운서 채용과정에서 남성은 정규직으로, 여성은 비정규직이나 프리랜서로 뽑는 관행을 20년 넘게 지속해왔다. 성별과 상관없이 하는 일은 같았고, 아나운서 본연의 업무에도 프로그램의 기획을 비롯한 온갖 행정 업무를 함께 수행해야 했지만 대전MBC는 채용과정에서의 성차별을 멈추지 않았다.

이에 2019년 대전MBC 유지은 아나운서를 비롯한 여성 아나운서들이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진정을 제기하자, 대전MBC는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는 대신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응수했다.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제대로 쉴 틈 없이 아나운서를 굴리던 대전MBC는 라디오 프로그램 단 하나를 제외하고 모든 프로그램에서 유지은 아나운서를 하차시켰다. 지난 6월에는 국가인권위원회가 1년 6개월 간의 조사 끝에 대전MBC를 비롯한 MBC 지역 계열사의 채용성차별을 인정하고 시정을 요구하였으나 한 달이 넘도록 대전MBC는 물론, 지역 계열사를 관리할 책임이 있는 서울 MBC 본사도 국가인권위원회의 요구를 무시하는 상황이다.


방송 노동자의 권리를 무시하고 짓밟는 방송사의 처사는 방송 노동자가 결국 방송을 떠나도록 만든다. 2012년부터 6년간 대전광역시와 충청남도 지역을 권역으로 삼는 민영 지상파 방송사 ‘TJB 대전방송’에서 일하며 메인 뉴스의 앵커를 맡기도 했던 김도희 아나운서는 2018년 사표를 제출했다. 2016년 4년, 대전방송은 3개월 동안 일한 아나운서의 퇴직금 지급 요구를 거절했다가 민사소송 끝에 퇴직금 일부를 지급하는 사건이 있었다. 소송 패소한 뒤, 대전방송은 즉시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프리랜서 아나운서의 노동자성을 철저하게 배제하기 위해 용역계약서 작성을 강요하고, 유급휴가를 일방적으로 무급으로 변경한 것이다. 이러한 행태에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는 이유로 김도희 아나운서는 부당대우에 시달렸다. 일례로, 2017년 김도희 아나운서가 할머니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사측의 허락을 받아 경조휴가를 이틀간 다녀오자, 대전방송은 경조휴가를 ‘무단결근’으로 처리했다. 인간의 도리까지 내팽개친 것이다. 환멸을 느낀 김도희 아나운서는 이듬해 퇴사하여 회사에 근로자지위확인소송과 퇴직금 청구 소송을 진행하여 2020년 6월 18일 1심에서 승소했다. 동시에 로스쿨에 입학하여 노동 문제 전문 변호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방송사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이유로 명목상은 프리랜서지만 아무런 자율성이 없는 ‘무늬만 프리랜서’인 방송 노동자를 대거 양산하고, 이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권리를 요구하면 철저하게 배제하고 탄압하기에 바쁘다. 민영방송이나 공영방송 모두 마찬가지다. CJB대전방송의 故 이재학 PD, 대전MBC의 유지은 아나운서, TJB의 김도희 전 아나운서의 사건 모두 국가기관이나 대책위원회 차원의 조사에서도 방송사의 책임이 명백하게 드러났지만, 방송사는 이를 수용하는 대신 오히려 지금 이 순간에도 제2의 이재학, 제2의 유지은, 제2의 김도희를 양산하는 길을 걷고 있다. 


방송을 만드는 사람의 권리를 무시하는 방송사에 무슨 미래가 있는가! 이미 일선 방송 현장에서는 방송 노동 현장의 악명이 널리 퍼진 바람에 신입 스태프가 들어오지 않는다며 인력난을 호소하고 있다. 법으로 주어진 노동자의 권리마저 짓밟는 방송사에 대체 어느 누가 제 발로 오고 싶어 할까. 그러나 방송사들은 계속 방송 산업의 어려움만 말할 뿐, 자신들의 책임과 잘못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을 뿐이다.


진정으로 방송을 어렵게 하는 것은 누구인가? 대체 누가 방송의 미래를 없애고 있는가? 방송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마저도 부정하고 지우길 원하는 방송사 자신들이 방송의 앞날을 스스로 없애고 있다! 방송사는 탐욕을 멈추고 방송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귀담아들어라!


2020년 7월 22일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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