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및 논평

[제133주년 세계노동절 성명] K콘텐츠 산업을 말하기 전에, 그 속의 노동을 이야기하라

2023-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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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제133주년 세계노동절 성명]
K콘텐츠 산업을 말하기 전에, 그 속의 노동을 이야기하라

 

‘넷플릭스 향후 4년 간 한국에 3.3조원 투자’. 얼마 전 여러 논란 속에서 마무리 된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방문에서 들려온 소식이다. ‘세계로 뻗어나가는 K콘텐츠 산업’의 국위선양의 길이 열린 것처럼 비쳐지지만, 그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노동권 보장에 대해서는 이야기되지 않는다. 최소한의 조건을 보장하지 못하는 노동실태는 산업의 지속가능성과 경쟁력에도 도움이 될 리가 없다.

이는 최근 해외 OTT가 제작한 모 드라마에서도 드러난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로 접수되었던 내용에 따르면, 해당 촬영장에서는 가장 혹독하게 촬영이 진행되었던 기간에는 평균 주 60시간의 촬영이 진행되었고, 그 20일 중에서 10일은 자정을 넘겨서야 촬영이 종료되었다. 장시간 노동 지적에 제작사는 B팀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지만, 같은 스태프들을 월화수에는 A팀이라고 했다가 목요일에는 B팀이라고 하는 식의 궤변일 뿐이었다. 이렇듯 장시간 노동 등으로 악명 높은 한국의 드라마 제작 현실 속에서 해외 OTT의 투자가 노동조건 개선도 가져올 수 있다는 기대는 사그라진 지 오래다. 넷플릭스가 한국에 최근 4년 간 약 1.9조 원을 투자하고 해마다 투자를 늘려오고 있는 것은 고퀄리티의 드라마를 값싸고 빠르게 찍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미 한국인의 하루의 24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유튜브는 새로운 열정페이 시장이 되어 있다. 유튜브 채널을 통해서 올라오는 수많은 영상들의 편집 단가는 작업물 1분당 1만 원이라는 이상한 기준이 통용된다. 10분짜리 영상을 편집하기 위해서 보아야 하는 영상이 10시간이라거나, 작업 결과물에 대한 추가적인 수정 요구 등은 최저임금에도 훨씬 미달하는 노동조건을 감수하게 한다. 계약서조차 제대로 쓰지 않는 것이 당연히 여겨진다. 아무 규제 없이 방치되고 있는 새로운 산업 영역의 무법지대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일들은 규제완화만 앵무새처럼 되뇌는 현 정부는 절대로 짐작도 못할 것이다.

새롭게 성장하는 영역만의 문제는 아니다. 방송 영역에서 가장 큰 규모와 영향력을 가진 방송사들에서 벌어지는 비정규직 문제는 ‘무늬만 프리랜서’라는 이름으로 오늘도 반복되고 있다. 노동위원회나 노동청에서 근로자로 판단한 사례가 제법 쌓였음에도 CBS처럼 원직복직 명령을 사실상 거부하거나 근로계약서도 작성하지 않은 채 버티기도 한다. 대기업이 이런 식이니 작은 규모의 제작사 등에서 출근 시간은 정해져있는데 퇴근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은, 용역 계약이 남발되는 무질서한 고용관행은 너무나도 당연해보일 수 있겠다.

K콘텐츠 산업의 미래를 말하기 전에, 불안과 경쟁 속에서 시달리는 종사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이미 있는 노동법이 잘 지켜지도록 적극적인 근로감독이 절실하다. 또한 끊임없이 노동법의 경계를 흐트러뜨리는 영역에 대한 규제와 규율을 고민해야 한다. 불안정한 고용으로 사회보장에서 배제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그러한 변화들을 현장에 정착시키기 위해서 일하는 이들의 결사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불안정한 고용과 배제된 사회보장 속에서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과 항상 다음 일하기 위해서 지금 성과를 내야하는 경쟁을 견뎌내야만 하는 상황이 ‘원래 그런 것’이라고 치부된다. 133번째 세계노동절을 맞아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는 이런 ‘원래 그런 것들’을 바꿔가기 위한 과제와 역할을 다시금 되새긴다. 변화는 끝나지 않았다.

 

2023년 5월 1일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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