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빛이 걸어온 길


나 혼자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 자리에 선 모두가 너와의 첫 만남을 어떤 방식으로든 상기하고 있었을 것이다.

마지막은 처음을 반추하게 하는 것일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주어진 시공간을 누구보다 찬란하게, 반짝이게, 치열하게 살아냈던 사람. 

너를 사랑했던, 네가 사랑했던 사람들은 너를 그렇게 기억한다. 

여기 모은 글들은 그랬던 네 삶의 가장 생생한 기록이자, 

네가 바라보았던 세상에 대한 가장 진지한 묘사다.


한빛 PD 추모집 발간사 중에서


1989

서울 출생


2008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경제/사반 입학


2009 - 2010

웹진 자하연잠수함 편집장

사회대 새내기 새로배움터 기획단장

이랜드 그룹 박성수회장 규탄 ‘성수대첩’(‘이랜드 노동자들의 소박한 꿈을 응원하는 사람들’)

사회대 과/반 학생회장 연석회의 집행위원장


2011

서울대 비상총회 성사를 위한 TF 팀장


2012

서울대 제3섹터 기획

진보신당 청년학생위원회

<서울대생들이 본 2012 총선과 대선 전망>(강원택 편, 인간사랑, 2012) 편저자 참여


2013

방송문화진흥회 주최 ‘좋은 방송을 위한 시민의 비평상’


2014

공군참모총장표창


2016

<대학신문> 제56회 ‘대학문학상’ 영화평론부문 가작

tvN 예능국 입사


방송과 한빛

‘세상과 연애하기‘ 인터뷰 중,

드라마에서는, 스토리가 있고 사람들에게 감정을 전달하잖아요. 사랑이라면 사랑, 분노라면 분노 기쁨이라면 저 역시 기쁨. 드라마를 통해 감정들을 전달을 받았거든요. 제가 감동을 받았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에게 감동과 감정을 전달하는 영상을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드라마를 통해 따뜻한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던 한빛 PD, 

하지만 현장은 오히려 착취와 불행만이 가득했고, 오직 썩은 관행과 타협만이 가능했습니다.


이한빛 PD의 유서 중

촬영장에서 스탭들이 농담 반 진담 반 건네는 ‘노동 착취’라는 단어가 가슴을 후벼팠어요.

물론 나도 노동자에 불과하지만, 적어도 그네들 앞에선 노동자를 쥐어짜는 관리자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까요.

만드는 사람이 행복한 드라마 현장을 꿈꾸었던 한빛 PD의 바람은, 그가 떠난 이후에야 사람들에게 전해졌습니다. 그렇게 방송 현장은 하나 둘 바뀌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살기 바쁘다며 앞만 보는 경주마처럼 달려나갔을 때, 

너는 조용히 몸을 돌려 아무렇게나 짓밟힌 차가운 흙길을 두손으로 어루만졌다.

우리는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다. 네가 남긴 것은 따스한 체온이었다.


CJ ENM 회사 동기 추모사 중 1

우리 대부분은 이러한 현실에 맞서 소리칠 시간도, 체력도, 그리고 용기도 갖고 있지 못했다. 

그런데 한빛이 소리를 냈다. 한빛 이후의 후배들이 계속해서 꿈을 향해 달릴 수 있게 해줄 의미 있는 변화임이 분명해 보인다.


CJ ENM 회사 동기 추모사 중 2

세상과 한빛

언젠가 4월에 노란 리본을 내 가방에 달아주며 “엄마, 기억하기 위한 작은 의식이여요. 우린 연대해야 하고요”하며 불편해하지 말라고 했다.


한빛 PD 1주기 추모제 어머니 추모사 중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노점상에게, 노숙자에게 연대의 손길을 내미는 것은, 단순히 그들의 삶을 함께 지켜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연대를 통해, 우리의 삶을 지켜내기 위해서이다.


광우병, 그리고 비정규직 중, 이한빛


일찍 퇴근했기에 시간이 생겼다. 그래서 구의역에 갔다. (중략) 구조와 시스템에 책임을 물어야하는 죽음이란 비참함. 생을 향한 노동이 오히려 생의 불씨를 일찍, 아니 찰나에 꺼뜨리는 허망함. (중략) 얼굴조차 모르는 그이에게 오늘도 수고했다는 짧은 편지를 포스트잇에 남기고 왔다. '오늘'이라 쓰지 않으면 내가 무너질 것 같기에 오.늘.이라 힘주어 적었다.


구의역 사고에 대한 한빛 PD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