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나 한잔 – 염은진님

2022-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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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차 마시고 싶어.” 여섯 살 막내가 얼마 전부터 차를 마시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다. 

그럴 때마다 나는 늘 바빴기 때문에 다음에 마시자고 넘겨버렸다.

 그런데 그날 또 차를 마시고 싶다고 했다. 아이 말이라고 귀담아듣지 않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더 이상은 아이의 말을 외면하면 안 될 것 같았다.

 

몇 년 전부터 텃밭에서 수확한 민트를 말려 차로 마시고 있다. 머그컵 대신 선물받은 다구에 차를 우려 내놓았더니 예상외로 아이들이 너무 좋아했다. 

작은 다관에 차를 우리고 뽑아서 찻잔에 쪼르륵 따르는 과정이 신기했나 보다. 그후로 아이들은 다기세트에 차를 마시고 싶다고 종종 얘기했다.

 하지만 나는 의자를 옮겨 그 위에 올라서서 선반 깊숙이 들어 있는 다구를 꺼내는 일이 귀찮았다. 

가만히 앉아 차를 마실 여유는 더더욱 없었다. 그래서 어느 날부터는 주전자에 물이 끓으면 민트를 바로 넣어 우리고 머그잔에 따라서 마셨다.

그런데 그날 막내가 원한 건 머그잔이 아니었다. 자그마한 찻잔에 차를 달라고 했다. 

세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재워야 하는 저녁시간은 하루의 에너지를 모두 소진한 나의 체력이 임계점에 달하는 시간이다. 

게다가 마감(아이들 재우는 일) 전에 설거지를 비롯해 아이들 샤워, 숙제, 양치질, 다음날 준비물 등등 체크해야 할 일이 산더미라 늘 바쁘고 지친다.

 

그날도 바쁘게 설거지를 마치고 큰 아이들 숙제를 봐주느라 여기저기 뛰어다니던 와중에 막내에게 차를 준비해 주었다. 

차를 우려서 아이가 먹기 좋게 식힌 다음 작은 찻잔에 따라줬다. “여기 있는 거 안 뜨거우니까 이제 혼자 따라서 마셔.”

 아이가 혼자 차를 따라서 마실 수 있도록 식탁에 세팅을 해놓았다. “엄마 먼저 가서 씻고 있을 테니 차 다 마시면 씻으러 와.” 

그러고는 얼른 샤워하러 달려갔다. 아이가 차를 마시는 동안 나는 샤워를 하고 아이가 오면 바로 씻겨서 나오면 되니 뭔가 시간을 득템한 기분이 

들기까지 했다. 그런 생각으로 막 샤워를 하려는데 아이가 목욕탕 문을 열었다. “나 차 다 안 마셨어.” “왜?” “나 누구하고 같이 마시고 싶어. 아무나. 

차는 원래 두 명하고 같이 먹는 거야.”

 

순간 아차 싶었다. 내가 삶에서 중요한 걸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차 한잔 마실 여유도 없이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었구나. 

조주선사가 말한 ‘차나 한잔’의 공안까지는 모르더라도 아이가 엄마한테 차나 한잔 하자고 한 그 말도 못 알아들었구나. 

우리가 차를 마시며 나누는 게 차든 마음이든 사랑이든 행복이든 그냥 그걸로 충분한 것을. 나는 그것도 잊은 채 살았구나.

 

취침시간이 좀 늦어지더라도, 아이가 밤에 침대에 오줌을 싸더라도 그날은 아이와 차 한잔 하고 자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옷을 입고 머리를 말리는 동안 아이는 옷을 다 입고 이미 한쪽에서 놀고 있었다.

“선아, 엄마랑 같이 차 마시자.” “싫어. 나 장난감 가지고 놀 거야.”

아. 차 한잔 마시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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