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산도에서 보내는 편지-최승진님

2022-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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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 살고 있습니다.

목포에서 2시간가량 배를 타고 내해수로를 따라가면 잔잔한 비금, 도초가 나옵니다. 그곳을 지나면 흑산외해인데 날 궂을 때 들어서면 쉴 새 없이 몰려오는 파도에 멀미가 심해 힘들어하거나 의자에 기대 기도를 하는 승객들이 보이기도 합니다.

흑산 바다는 다산 정약용과 그의 형 손암 정약전에게 매우 애틋한 바다입니다. 형은 아우에게 "동생이 이 험한 흑산 바다를 건너오게 할 수 없다"며 직접 우이도(비금도)에서 기다리다 상봉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넘실거리는 파도 사이로 멀리 영산도, 멍섬 그리고 다물도가 검은 점처럼 보이기 시작하면 파도는 잦아들고 모두 기쁨의 한숨을 쉬기 시작합니다.


다산의 둘째 아들 정학유가 쓴 52일간의 흑산도 기행일기 <부해기>에는 이 섬들 주변에서 고래가 노닐며 헤엄치는 것을 보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혹시 흑산도에 오시거든 눈을 크게 뜨고 찾아보세요. 이제 스피커 사이로 분주한 선장님의 목소리가 들려오니 평생 해왔던 하선 준비를 합니다.

흑산도에서 어업인으로 3대에 걸쳐 가업을 맡아 바다노동자로 지내오고 있습니다. 바다 생활이라고 별다르지 않지만, 오직 바다만 바라보면서 삭막한 삶의 무게에 짓눌려 지내지 않으려 다양한 노력을 해오고 있습니다.

섬에서 철마다 생산되는 지역 수산물을 개인 SNS에 소량 판매하고 수익의 일부는 꼭 좋은 곳을 찾아 기부하고 있습니다. 이곳 어민들에게는 알리지 않았지만 그들이 흑산 바다에서 힘들게 잡아온 노동의 대가는 후원을 통해 우리 사회에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돌려 드리고 있습니다. 이런 생활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모르지만 힘든 시간을 보내는 이들에게 아주 작은 도움이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될 거라 믿고 있습니다.


작년 5월에 이곳 섬 흑산도에서 고 이한빛 피디의 부모님 김혜영, 이용관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인연으로 끝날 수 있었지만 그들의 끝없이 무너져 가는 눈빛에 그저 먹먹하기만 했습니다. 먼저 간 아들에 대한 슬픔을 함께 여행 오신 분들과 얘기하는 걸 듣게 되었습니다. 흑산 어부가 할 수 있는 건 함께 걷고 성당을 안내하고 글썽이는 슬픈 눈을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김혜영 선생님이 쓰신 <네가 여기에 빛을 몰고 왔다>를 읽고 이야기하는 것이었습니다. 고 이한빛 피디의 "기억과 참여"라는 말에 관련 단체를 찾아 더욱 적극적으로 후원하게 되었습니다.

흑산도는 아주 멀리 떨어진 섬이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누구라도 좋습니다. 직접 닿지 못하면 후원을 통해서 전해질 것이고 슬픈 일이 있으면 기억을 통해 참여할 것입니다. 저는 섬에서 살고 있습니다. 비록 작은 섬이지만 ‘기억과 참여’를 통해 매일 조금씩 세상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 글을 한빛레터에 추천해주신 김혜영, 이용관선생님 항상 함께 옆에 있어 줄게요.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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