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가 생략된 조직에서의 삶_독립 PD F의 이야기

2023-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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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미디어 현장에는 작품의 완성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열정을 쏟는 종사자 여러분이 계십니다. 이에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는 방송미디어 현장의 '더 아래로, 더 옆으로' 빛을 비추어 이들의 삶을 마주하고자 합니다. 방송일터에서의 나의 삶을 함께 이야기 나눌 분들이 많아지길 바라며, 우리 센터 또한 '한빛이 만난 사람들' 이야기를 통해 더 나은 방송미디어 노동 현장을 만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한빛이 만난 사람들> 여섯 번째 이야기, 시작합니다.




함께 한 사람들 

인터뷰이 : 독립 PD F님 / 인터뷰어 : 김영민 센터장 

내용각색 : 김희라 기획차장



소개말 

《한빛이 만난 사람들》 여섯 번째 인터뷰 주인공은 독립 PD 20년여 이상 활약하고 계신 F 님입니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는 오랜 기간 독립 PD로서 살아온 F 님의 방송 현장에서의 경험과 삶을 통해 방송미디어 현장의 개선이 필요한 점은 무엇인지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흥미가 업(業)이 된 삶

그는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좋아했다고 했다. 영화가 좋았던 F는 방송 현장에서 업(業)을 이루겠다는 마음으로 대학 역시 영화학과에 진학하기에 이른다. 뚜렷한 흥미, 그리고 목표가 있어서였을까. F는 대학 재학 당시부터 편집 일을 익히며 자연스레 방송 현장에 녹아들었다고 했다. 또한 일하면서 깊은 배움의 갈증을 느껴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면서 더욱더 방송 현장에서 벗어날 수 없는 베테랑 PD로서 자리하게 되었다. 말그대로 흥미가 업(業)이 된 것이다.



절차의 생략이 곧 현장의 기본값

F는 20년 넘게 현장에 남아있지만 과거부터 지금까지 늘 답답한 점이 존재한다고 전했다. F에게 ‘어떤 것들이 답답함으로 작용했는지’ 물었다. F는 이렇게 답했다.

“계약서 문화가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죠, 모든 일에 앞서 업무 범위에 대한 논의, 업무 진행에 대한 계약 등이 선결되어야 하는데 방송계는 이러한 절차의 생략이 기본값인 것 마냥 수 십년을 유지하고 있어요. 그리고 계약서를 쓴다고 하더라도 비용에 대한 정확한 계산과 집행이 이뤄지는 곳이 많진 않습니다. 제가 20년 넘게 현장에 있는 상황이지만 10년 전 연출료를 받지 못한 건도 아직 존재해요.”

F는 자신이 좋아서 방송 현장에 진입했고, 일 또한 20년 넘게 유지하고 있지만 이해할 수 없는 현장의 관행과 문화를 어느 지점부터 손을 대고 고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지 늘 어렵고 답답하다고 전했다.



기술 발전의 아이러니

한편 F의 이야기를 듣고 한가지 궁금한 점이 생겼다. 과거에 비해 상당한 기술의 발전으로 방송계 역시 컨텐츠의 발전을 이룰 수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종사자들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말이다. F에게 질문을 했다.

F는 장비가 경량화된 것이 가시적인 기술 변화중 하나이고, 촬영/편집/특수효과 등의 기법 발전 또한 가시적인 기술 변화에 해당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에서 종사자들에게 돌아오는 애로사항도 존재한다고 전했다. 

장비가 경량화되다보니 기동성이 좋아졌죠, 하지만 사람 한 명이 모든 것을 수행해야 하는 상황을 안겨주기도 했어요. 장비의 경량화가 과정의 집약화와 개인화를 불러온거죠. 마치 보따리 장수같다고 해야 할까. 희한하게도 개인 장비를 사용해야 하는 상황도 많아졌고요.

기술이 발전하여도 오히려 노동강도가 높아지는 역설적인 상황도 벌어지는 것이다.



불명확하고 부당한 지시가 관통할 때,

F는 최근에 있던 일이 생각났다며, 그 이야기하겠다고 전하며 한숨을 내뱉었다.

“어느 채널의 프로그램을 맡아서 일을 할 때였어요. 지방에 내려가 몇날 몇일을 촬영하고 서울에 올라와서 밤새서 1차 편집까지 마치면 내부 시사를 해요. 뭔가 부족하다고 해서 수정 편집을 해서 갖다주면 문제있다면서 다시 지방에 내려가 재촬영을 해오라고 합니다. 그것도 방영 이틀 전에. 예를 들면 촬영 당사자간 갈등이 제대로 안드러난다면서요. 그럼 일어나지도 않은 갈등 구조를 짜내고 당사자를 설득해서 찍어와야 해요. 없는 일도 만들어서 찍으면 당사자도 상처받고, 촬영하고 편집하는 우리도 상처받아요. 누굴 위한 촬영인건지 싶죠. 애초에 명확한 디렉팅도 없고, 상식적이지 않은 촬영 지시를 한다는게. 촬영을 담당하는 PD가 쥐어짜임을 당하고 흔들려야 제작사가 먹고 살고 다음 촬영도 따내지 않겠냐는 말도 듣고요.

F는 이런 일이 소수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다수에 해당하니 현장에 남아있던 후배들이 흔히 말해 ‘현타’가 와 현장을 떠나기도 한다고 했다.



선배, 동료 그리고 후배 세대가 뭉쳐야 할 때,

F는 독립 PD로서, 제작사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자신이 겪은 여러 상황을 후배들이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그리고 자신이 궂은 일을 최대한 맡아서라도 후배들이 일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것을 개인이 오롯이 감당하기란 쉽지 않기에 방송 현장에 남아있는 각 세대들이 뭉칠 필요가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특히 요즘은 급부상하는 매체들이 많은데, 규정이나 제도가 구축되지 않은 상황이니 별의별 일이 일어나요. 그렇기에 현장에 진입하는 후배들이 안 좋은 일을 겪지 않게 하려면 힘을 합쳐서 머리를 맞댈 필요가 있어요.”

방송 현장에서 20년 이상 생사고락을 이어온 F의 진솔한 이야기를 통해 방송 현장에서 발생하는 애로사항의 또 다른 지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카메라 뒤의 노동이 여전히 가려져 있음에 미안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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