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빛PD 6주기 추모제, 빛을 이어가는 사람들로 함께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2022-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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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수), 이한빛PD 6주기 추모제가 있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와주신 덕분에 무사히 진행되었습니다. 발 디딜 곳도 찾기 어렵게 가득 메워주셔서 6번째를 맞이하는 추모제의 자리가 외롭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어김없이 함께해주시는 것은 하나의 죽음에서 시작된 변화들, 그리고 그 변화를 위해서 애썼던 많은 이들의 노력과 연대를 함께 기억하고 이를 이어가고자하는 마음들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권오성 이사장의 인사말로 시작된 추모제는 한빛의 죽음 이후에 시작된 방송미디어 노동현장의 숱한 싸움들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되었습니다. 희망연대본부 방송스태프지부 김기영 지부장, 전국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방송작가유니온) 유지향 사무국장의 연대발언이 있었습니다.

연대발언 - 공공운수노조 희망연대본부 방송스태프지부 김기영 지부장

벌써 6년이 되었습니다.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때, 방송스태프지부는 한창 방송갑질119를 통해 노조를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을 때 쯤이었을 것입니다. 지금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조금 더 일찍 노조가 만들어졌다면, 함께 방송현장 개선을 위해 싸울 수도 있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곤 합니다.

그 동안 방송 현장, 특히 드라마 제작현장에서는 계속해서 보다 나은 방향으로 변화를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그래도 방송스태프지부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는 한걸음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일일 촬영 27시간, 디졸브촬영과 같은 장시간 노동은 많이 줄었습니다. 고용노동부와 법원에서는 스태프의 근로자성을 계속해서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제 52시간 제도가 많이 자리 잡아, 대부분의 현장에서는 52시간은 넘지 않게 촬영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 KBS 드라마 미남당의 경우에도 노조와 함께 문제를 제기한 스탭들이 다시 또 이겼습니다. 근로자성이 확인되었고 제작사에 시정지시가 내려졌습니다. 단순히 1주 52시간만 지키면 되는 것이 아니라, 1주일에 연장근로시간이 12시간으로 제한되는 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한빛에 연락을 준 미남당 스태프들이 아니었다면, 또 계속해서 미팅을 할 수 있도록 한빛센터가 이 자리에 없었다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저 드라마의 관행이라 생각하고 넘어갔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를 그냥 넘기지 않으려는 스태프들의 의지와 보다 나은 현장을 만드려는 한빛센터와 방송스태프지부의 노력이 있었기에 싸워 이길 수 있었습니다.

완전한 승리는 아닙니다. 아직 감독급 스태프에 대한 노동자성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고, 촬영지까지의 왕복 이동시간에 대한 노동시간 인정도 받지 못했습니다. 스태프들의 연차수당은 지급이 명령되었지만, 연장근로수당, 야간수당 등에 대한 임금미지급 진정과 고소는 아직 진행 중입니다. 작년 9월에 고발한 KBS의 6개 드라마에 대한 근로감독 결과는 1년이 지난 지금도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OTT가 늘어가면서 방송사의 자회사인 제작사들과 통신사의 자회사인 제작사들의 영향력은 더 커져가고 있지만, 아직 대화의 창구조차 없는 상황입니다. 여전히 갈 길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방송현장에서 방송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제대로 된 권리를 찾을 수 있을 때까지 방송스태프지부는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와 계속 싸워나가겠습니다.  다시는 방송현장에서 일하다 죽거나 다치는 사람이 없도록, 방송현장에서 일하는 모두가 자부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연대발언 -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 유지향 사무국장

상상해봅니다. 살아생전의 한빛과 내가 친구였다면.
조연출 이한빛과 작가 유지향이 친구였다면 어땠을까.
그 둘은 무슨 대화를 나눌까 가끔 상상해봅니다. 

하루 7시간 이상 잠 좀 자고 싶다. 이렇게 투정을 부렸을 것 같고요.
저는 한빛을 보고 ‘그래도 너는 큰 방송국 직원이라 좋겠다’며 철없이 부러워했을 것도 같습니다.

그리고는 함께 이야기 할 것 같습니다.
우리 함께 노동조합을 만들자고.
노동조합 만들어서 정규직 비정규직 차별 없는, 정규직 비정규직 모두 안전하게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방송 환경 만들자고 이야기 나눌 것 같습니다.
우리가 만든 방송은 전파를 타고 널리 퍼져나가 차별 없는 세상의 희망이 될 거라고.
그렇게 이야기 나눌 것 같습니다. 

작가들의 노조, 방송작가유니온의 출범한 지 5년. 정규직 비정규직이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방송환경은 아직 멀게만 느껴집니다. 근로자로 인정받은 작가들을 차별적인 대우를 받는 ‘방송지원직’에 배속시켰습니다. 여전히 많은 작가들이 저임금 고강도 노동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거대 방송사들은 아직도 방송작가유니온과 정식 교섭에 나서지 않고 있습니다.

이룬 것도 있습니다. 계약서 쓰는 문화가 생겼고, 막내작가들의 임금이 올랐으며, 일부 방송사에서는 임금 협상도 합니다. 방송작가 최초로 근로감독을 받아보니 152명의 작가의 근로자성을 인정 받았습니다. 부당해고를 당했다가 방송국 직원으로 복직한 작가도 생겼습니다. 예술인 고용보험으로 실업급여와 출산급여를 타는 작가도 있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계속 걸어나가고 있습니다. 쉼 없이 걸어갈 때면,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이한빛 피디가 꼭 제 진짜 친구처럼 느껴집니다.

요 앞에 카페가 참 많은데요. 그 중 가격이 저렴한 커피가게 앞에는 젊은 청년들이 줄 서서 커피를 사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하나같이 헐렁한 추리닝을 입고 푸석한 얼굴로 커피를 들이킵니다. 그들에게 한빛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그들의 친구가 되어주고 싶습니다. 그게 한빛이 가장 바라는 일인 것 같습니다.

방송작가 노조의 하루는 정신없습니다. 하루라도 사건 사고가 안 터지는 날이 없지요.
그래도 노조가 있어 다행이다, 어려울 때 전화 걸 수 있는 노조가 있어서 좋다고 말하는 작가들의 말에, 유니온은 다시 일어납니다.
그런 마음으로 오늘도 저는, 우리 방송작가유니온은
이곳 회색빛 상암에 ‘한빛’을 밝힙니다.


전국언론노조 윤창현 위원장도 참석하여 다음 달에 준비위가 출범하는 미디어 비정규직 지부와 이에 이어 방송 현장의 비정규 불안정 노동을 바꾸기 위해서 노력하겠다는 각오와 다짐을 밝혀주셨습니다. 방송미디어산업의 대표적인 노동조합으로서 비정규 불안정 노동을 바꿔나가는 언론노조의 역할을 계속해서 기대해봅니다.


추모사는 한빛PD의 친구 김훈녕 님과 청년유니온 김설 위원장이 낭독해주셨습니다. “냉소로 가득 찬 이 세상에 그럼에도 빛이 있음을 이야기 할 때”라는 말처럼, 계약서 미작성과 노동법 위반이 만연한 일터들이 우리가 추모를 이어가면서도 빛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이유일 것입니다.

추모사 - 故 이한빛PD 친구 김훈녕님

당당함과 자신감. 저에게 누군가 한빛이의 첫인상이 어땠냐고 물어보면, 저는 망설임 없이 이 두 단어를 고를 것입니다. 토론을 함께 할 때 한빛이의 빛났던 눈과 여유로운 말투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렵지 않게 공감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때문에 한빛이는 도드라진 친구였습니다. 무엇을 하던 자기 고민을 놓치지 않고, 어디를 가던 제 목소리를 잃지 않았습니다. 통통 튀는 탱탱볼과 주머니를 푹푹 뚫고 나오는 송곳 그 중간 즘에 있는 친구였달까요. 학회 활동에 열중하다가도 느닷없이 웬 잠수함 로고가 박힌 웹진을 들고 나타났고, 비정규직 대량 해고의 주범인 악덕 사장을 향해 쳐들어 갈 때도 무슨 파티하는 사람 마냥 유쾌했습니다. 대학 기업화를 막겠다며 비상총회를 열자고 목소리 냈을 때도 그랬습니다. 성사가 될까말까 한숨이 푹푹 나오는 비상총회 이야기를 하면서도 한빛이는 즐거워보였습니다. 돌이켜보면, 참 한빛이는 늘 한빛스러웠습니다.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도 아마 한빛이는 계속해서 한빛스러웠을 것입니다. 비록 그것이 스스로를 힘들게 만들었더라도 말이죠. 부조리가 관행이란 말로 덮어지는 것을 납득하기 어려웠을 것이고, 사람을 갈아 넣는데 너무도 익숙한 환경을 용인할 수 없었겠지요. 카메라 뒤의 사람이 눈에 밟혔을 것이고, 밤을 지새운 스태프들의 한숨을 떨쳐내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아픔과 불합리를 외면하기란, 한빛이에게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겠다 생각합니다.
때문일까요. ‘일은 결국 사람이 하는거다’라는 단순한 진리를 확인할 때 저는 문득문득 한빛이를 떠올리곤 합니다. 석탄을 나르는 컨베이어 벨트 옆에도, 캄캄한 새벽부터 문 앞에 배송되는 택배 박스 뒤에도, 빵 만드는 기계 앞에도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들을 때마다 그랬던 것 같습니다. 저도 조금은 한빛스러워졌나 싶습니다.

오늘 추모제의 공지를 보고 행사명, ‘빛을 이어가는 사람들’이란 이름이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때마침 세상 사람들이 조금씩만 더 한빛스러워지면 좋겠다 생각하던 터였거든요. 한빛이의 마음처럼, 방송 분야에서 일하는 분들이 서로의 아픔을 더 많이 나누고 변화를 꿈꾸는데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 역시도 미약하게나마 함께 기억하고, 변화를 위한 걸음에 함께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추모사 - 청년유니온 김설 위원장

오늘 이 자리에 함께 하고 계신 모든 분들, 오늘 우리는 빛을 잃어가는 이 사회에 빛을 이어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빛을 이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준, 故 이한빛PD의 정신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이한빛PD를 여전히 그리워하고 계시는 가족분들과 지인분들께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오늘 이 자리를 정성을 다해 준비해주신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관계자 분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빛나는 스크린의 어두운 이면, 여전히 방송 드라마와 영화를 만드는 현장들에서는 밤낮 없이 격무에 수면부족에 시달리는 것은 일상이고 무겁고 높은 장비들을 다루면서 산재 위험에 노출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외주에 외주로 이어지는 무책임 가운데 임금체불, 부당해고, 직장내 괴롭힘이 만연합니다.

“여긴 미친 세상이다” 이한빛PD가 외주업체와 소속 스태프의 교체를 지켜보며 친구에게 전한 말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의 노동을 존중받지 못하며, 소외되고 차별받는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안전하게 일하고 싶다라는 외침들이 있습니다. 평등하고 존중받으며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다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한빛센터가 밝히고 있는 것 처럼, 이한빛PD의 죽음은 한 개인의 죽음이 아닙니다. 이한빛PD의 죽음은 불합리한 현실을 자각하게 만들었고, 수 많은 이한빛들 그리고 미디어노동자들의 노동을 위해 이한빛의 정신을 이어가고자 하는 이들에게 죽음을 추모하는 것을 너머 새로운 희망을 그리고 더 나아진 사회를 상상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이자리에 있는 우리는 빛을 이어가고자 하는 이들입니다. 이한빛의 정신, 이한빛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만큼 지금 이 순간에도 일터에서 빛을 잃어가고 있는 노동들을 만나, 냉소로 가득찬 이 세상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빛이 있음을 이야기 할 때 길이 생길 것이라 믿습니다.

다시 한번 이한빛이 남긴 이 길에 함께 하고 계신 여러분께 감사와 존경을 담아 인사를 건냅니다. 그리고 늘 빛은 길이되어 우리가 함께 나아가고 있음을 확인해줄 것입니다. 존경과 사랑을 담아. 이 세상을 그리고 자신의 동료들을 너무나도 사랑했던 고 이한빛PD를 추모합니다. 감사합니다.


유가족을 대표하여 한빛PD의 아버지 이용관님의 인사말이 있었습니다. 두 분께서는 추모제를 잊지 않고 찾아주시는 분들을 위해서 직접 만든 살구잼과 효소를 두 손 가득 준비해오셨습니다.

올해로 3회를 맞이하는 한빛미디어노동인권상 시상도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평소 한빛센터의 활동을 비롯하여 방송미디어 노동현장 개선을 위해서 애써주신 분들께 감사패를 수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돌꽃노동법률사무소의 김유경 노무사님, 이은규 전 드라마 PD님, 치유자 정혜신 박사님께 감사패를 드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많은 도움과 연대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어서 추모영상과 이어진 헌화를 통해서 추모의 마음을 모으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어서 2부에서는 권하늬 전 이사의 진행으로 세 동생 분들을 모시고 이야기마당을 가졌습니다. 이한빛PD의 동생 이한솔 님, 이재학PD의 동생 이대로 님, 이힘찬 프로듀서의 동생 이희 님을 패널로 모시고, 형을 떠나보낸 동생들의 이야기로 채워졌습니다. 현장에 참석해주신 많은 분들에게 위로와 치유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미디어오늘의 김예리 기자가 2부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기사에 담아주셨습니다.

[미디어오늘] 이한빛 6주기 추모제 '그래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6595


잊지 않고 기억하는 이들과 함께한다는 의미가 더욱 빛나는 밤이었습니다. 현장에는 오시지 못했지만, 마음으로 함께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는 계속해서 방송미디어 노동현장의 한 줄기의 빛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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