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기/최우수상] 우리는 왜 서로에게 숲이 아닌가
고아영
*2020 한빛센터 <방송현장개선 우수사례공모전> 수기 부문 수상작을 게재합니다.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된다는 것이 가능할까? 방송국에서 작가로 일을 하면서 가장 많이 품었던 질문이다. 모두가 너무나 바쁘고, 정신없고, 피로한 이곳에서는 자신을 돌보는 것만도 버거워서, 역지사지란 너무나 어려운 일이라고 수도 없이 되뇌었다.
다 때려치우고 싶을 만큼 힘이 든 적도 있었고 여러 고비들을 넘었지만, 지금 와서 돌아보면 올해 상반기에는 기억할 만한 소중한 일들도 몇 가지 있었다. 그중 하나가 마침내 나도 ‘입봉’이라는 걸 했다는 것이다. 방송작가로 일을 시작하고 정확히는 4년 6개월 만이니, 업계 평균에 비추어 보자면 상당히 늦은 입봉이라 할 수 있겠다. 1년 반 동안 준비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엔딩 스크롤에 내 이름이 ‘글/구성’으로 올라가는 걸 마침내 보게 됐다. 다른 사람들 얘기처럼 그렇게 짜릿한 경험은 아니었지만, 이제 미련 없이 이 업계를 떠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 생활을 3년 동안 하다가 이직을 한 터라, 사회 초년생의 열정 같은 것은 처음부터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방송국에서 작가로 일한다는 것은 믿기지 않을 만큼 이상한 일투성이었다. 최저임금 수준에라도 맞춰 주면 감사해야 하는 적은 급여, 하루 종일 해도 끝이 나지 않는 과다한 업무, 이런 건 일을 시작하기 전에 예상했던 것들이라 힘은 들어도 견딜 수 있었다. 의미와 재미가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데 기여할 수 있다면 충분히 감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나를 견딜 수 없이 힘들게 한 것은 예상치 못한 것들이었다.
박봉과 과로보다 힘든 것
한 편의 방송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는 여러 사람의 노력이 들어간다. 그중에서도 피디와 작가는 방송 제작의 두 축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방송국이라는 계급사회에서, 정규직인 피디와 프리랜서인 작가는 결코 동등할 수 없는 관계다. 그 기울어진 관계 속에서 더 많은 업무와 의무는 점점 더 힘이 없는 쪽으로 옮겨 가고, 좋은 결과물에 대한 인정과 보상은 점점 더 힘이 있는 쪽으로 옮겨 간다. 이 불균형한 관계가 이상하다고 느끼면서도 그 안에서 일을 하려면 적응해 나가야만 하는 괴리감 속에, 일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내 안에 차곡차곡 쌓이는 것은 울분이었다. 이것은 바뀌지 않는 ‘차별’의 구조에 대한 답답함과 분노였다.
처음에는 이것이 ‘차별’이라고도 생각하지 못했다. 어떠한 보상도 없는 초과근무와 온갖 잡다한 일들까지 떠맡아 하면서도 방송작가는 ‘프리랜서’니까 당연한 거라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 자유롭게 자신의 일을 하고 그에 응당한 보상을 받는 프리랜서라면, 왜 나는 그렇게 열심히 일해서 만든 결과물에 대해 어차피 내 것은 아니라고 부정하며 스스로를 자신의 노동으로부터 소외시켜야 했을까. 방송작가로 일을 하는 동안 나를 가장 괴롭힌 것은 이렇게 프로그램을 위해 오랜 시간을 들여 고민하고 노력하는 나의 노동이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데서 오는 박탈감이었다.
서로를 돌아보기 힘들 만큼 바쁘고 피로하지만, 한편으로는 서로를 너무나 잘 이해하는 것이 방송국 사람들이기도 하다. 비슷하게 불합리하고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며 방송국을 떠받치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궁금해 한다. 모두가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왜 바뀌지 않는 걸까? 생각해보면 이유는 단순하다.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바꿀 수 있는 힘이 없고, 바꿀 수 있는 사람들은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함께 일했던 사람 좋은 피디님들도 이렇게 얘기했다. 작가는 프리랜서니까 본인이 그만두고 싶을 때는 그만두면서, 왜 타의에 의해 그만두는 것에 대해서는 해고라고, 부당하다고 이야기를 하는 거냐고. 나는 깊은 속에서 차오르는 울분을 애써 억누르며, 겨우 이렇게 이야기했다. ‘저는 방송작가를 하고 싶었지, 프리랜서로 일하기를 선택한 적은 없거든요.’
그동안 거쳐 온 모든 프로그램에서,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갑자기 일을 그만두어야 하는 비정규직 작가나 AD, FD들을 목격했다. 담당 피디에 의한 해고였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며칠까지 거취를 결정해서 얘기해 달라는 통보에 짓눌려 고민하는 동료에게, 나는 원한다면 피켓이라도 써서 들고 문제를 알리자고 얘기해 봤지만, 그녀들은 두려워했다. 또한 이곳이 아니라도 취재작가를 구하는 다른 프로그램은 많이 있고, 이미 눈 밖에 난 상사와 함께 계속 일을 해나가는 것이 순탄치 않으리라는 걸 모두가 몸으로 알고 있었다. 그리고 정규직 피디들도 잘 알고 있다. 프리랜서인 작가는 상근으로 일하고 직접 업무지시를 받으면서도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것. 그래서 바로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는 말을 들어도 부당해고로 신고조차 할 수 없다는 것. 그래서 정규직 피디가 마음에 안 드는 취재작가 한 명쯤 자르는 것은 참 쉽다.
문제를 문제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어떤 이는 ‘방송작가의 삶이 트라우마의 연속선상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생각했다. 나 역시 여러 부당한 일들을 견디며 버텨 왔지만, 그중 가장 참기 힘든 것은 해고당하는 동료를 바라만 봐야 하는 일이 거듭되어도 여전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끝내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거라는 무력감이었다. 하지만 동료 취재작가들과 함께 작은 변화를 이끌어낸 경험이 없지는 않다.
몇 년 전 한 지상파 방송의 어느 프로그램에서는 8명의 취재작가가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 주에 방송이 결방되면 모든 취재작가에게는 주급이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결방이 된 주에도 계속되는 취재와 업무들로 모든 취재작가는 사무실로 정상 출근을 했다. 당시 주급이 40만 원이었으니, 한 달에 1번 결방이 되면 월급은 120만 원, 2번 결방이 되는 달이면 월급이 80만 원인 셈이었다. 누가 봐도 이상한 시스템이었지만, 그 안에서는 오랫동안 문제라고 여겨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취재작가들이 뭉쳐서 팀장님을 찾아가 문제 제기를 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렇게 팀장님을 찾아가기 전까지 취재작가들은 수차례 온라인 메신저와 오프라인 모임을 통해 의견을 모았다. 각자의 성향에 따라 어디까지 의견을 전달할 것인지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함께 목소리를 내야만 바꿀 수 있다는 공감대가 있어서 뜻을 모을 수 있었다. 취재작가들의 이야기를 들은 팀장님은 방법을 고민해 보겠다 하셨고, 오래지 않아 결과를 알려 오셨다. 결방 시 취재작가들의 급여를 보전해 주기 위해 주급을 5만 원씩 올리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즉, 그 5만 원은 함께 일하는 메인작가의 급여에서 차감한 것이었다. 우리가 만들어 낸 작은 변화였지만, 그마저 다른 작가들의 파이를 깎아서 얻어낸 것이라니 참혹한 마음이었다. 이 일로 몇 분의 메인작가님들은 프로그램을 그만두셨다.
작년에는 새해와 함께 방송국에 또 한 번 최저임금이 떠올랐다. 방송국에서 작가의 노동력은 항상 저평가된다. 피디들은 작가의 임금이 적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많지 않은 제작비에서 작가들에게 주는 인건비가 적지 않다고 느껴지는 거라면 관대하게 이해를 하자면 해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최저임금 수준에 맞춘 급여 인상 요구에 대해 작가들이 9 to 6 출근을 하냐고 되묻는 부서 팀장의 발언은 성찰의 부재를 여실히 드러낸다. 1초라도 생각하고 말했다면 방송국의 어느 정규직 피디도 그렇게 출근하지 않는다는 것을 떠올릴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지나가는 말이라도 그런 말을 듣게 되는 날이면, 아무리 흘려들으려 해도 마음이 주저앉아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작가는 프리랜서고, 최저임금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공허한 논리의 말들. 그 공허한 말의 굴레가 작가들의 삶을 옥죄고 있다.
입봉했으니 미련 없이 그만둘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한 달도 안 되어 또 새로운 프로그램에서 일을 하고 있다. 소규모의 제작팀에 프리랜서로 고용되는 이 불안정한 일을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어떤 지점이 문제라는 것을 정확하게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그저 소진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서서 버틸 수 있는 힘을 낼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리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조금쯤 비켜서는 사사로운 태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문제에 대해 문제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방송국이 프리랜서인 작가와 앞으로도 계속 함께 일하고자 한다면 작가에게 터무니없는 업무에 창의성과 아이디어까지 무턱대고 요구하기 전에, 작가의 노동을 존중하고 그에 걸맞은 보상과 대우를 해주면 좋겠다. 그럼 많은 작가들이 박탈감으로 소진되는 아까운 시간을 줄여, 더 좋은 프로그램을 위해 고민하고 좀더 나은 구성안과 대본을 써낼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번번이 배신당하고 절망하고 낙담하면서도 희망을 품어 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강인한 이들이 조금 더 행복하게 일할 수 있기를 바란다.
(끝)
[수기/최우수상] 우리는 왜 서로에게 숲이 아닌가
고아영
*2020 한빛센터 <방송현장개선 우수사례공모전> 수기 부문 수상작을 게재합니다.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된다는 것이 가능할까? 방송국에서 작가로 일을 하면서 가장 많이 품었던 질문이다. 모두가 너무나 바쁘고, 정신없고, 피로한 이곳에서는 자신을 돌보는 것만도 버거워서, 역지사지란 너무나 어려운 일이라고 수도 없이 되뇌었다.
다 때려치우고 싶을 만큼 힘이 든 적도 있었고 여러 고비들을 넘었지만, 지금 와서 돌아보면 올해 상반기에는 기억할 만한 소중한 일들도 몇 가지 있었다. 그중 하나가 마침내 나도 ‘입봉’이라는 걸 했다는 것이다. 방송작가로 일을 시작하고 정확히는 4년 6개월 만이니, 업계 평균에 비추어 보자면 상당히 늦은 입봉이라 할 수 있겠다. 1년 반 동안 준비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엔딩 스크롤에 내 이름이 ‘글/구성’으로 올라가는 걸 마침내 보게 됐다. 다른 사람들 얘기처럼 그렇게 짜릿한 경험은 아니었지만, 이제 미련 없이 이 업계를 떠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 생활을 3년 동안 하다가 이직을 한 터라, 사회 초년생의 열정 같은 것은 처음부터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방송국에서 작가로 일한다는 것은 믿기지 않을 만큼 이상한 일투성이었다. 최저임금 수준에라도 맞춰 주면 감사해야 하는 적은 급여, 하루 종일 해도 끝이 나지 않는 과다한 업무, 이런 건 일을 시작하기 전에 예상했던 것들이라 힘은 들어도 견딜 수 있었다. 의미와 재미가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데 기여할 수 있다면 충분히 감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나를 견딜 수 없이 힘들게 한 것은 예상치 못한 것들이었다.
박봉과 과로보다 힘든 것
한 편의 방송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는 여러 사람의 노력이 들어간다. 그중에서도 피디와 작가는 방송 제작의 두 축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방송국이라는 계급사회에서, 정규직인 피디와 프리랜서인 작가는 결코 동등할 수 없는 관계다. 그 기울어진 관계 속에서 더 많은 업무와 의무는 점점 더 힘이 없는 쪽으로 옮겨 가고, 좋은 결과물에 대한 인정과 보상은 점점 더 힘이 있는 쪽으로 옮겨 간다. 이 불균형한 관계가 이상하다고 느끼면서도 그 안에서 일을 하려면 적응해 나가야만 하는 괴리감 속에, 일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내 안에 차곡차곡 쌓이는 것은 울분이었다. 이것은 바뀌지 않는 ‘차별’의 구조에 대한 답답함과 분노였다.
처음에는 이것이 ‘차별’이라고도 생각하지 못했다. 어떠한 보상도 없는 초과근무와 온갖 잡다한 일들까지 떠맡아 하면서도 방송작가는 ‘프리랜서’니까 당연한 거라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 자유롭게 자신의 일을 하고 그에 응당한 보상을 받는 프리랜서라면, 왜 나는 그렇게 열심히 일해서 만든 결과물에 대해 어차피 내 것은 아니라고 부정하며 스스로를 자신의 노동으로부터 소외시켜야 했을까. 방송작가로 일을 하는 동안 나를 가장 괴롭힌 것은 이렇게 프로그램을 위해 오랜 시간을 들여 고민하고 노력하는 나의 노동이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데서 오는 박탈감이었다.
서로를 돌아보기 힘들 만큼 바쁘고 피로하지만, 한편으로는 서로를 너무나 잘 이해하는 것이 방송국 사람들이기도 하다. 비슷하게 불합리하고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며 방송국을 떠받치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궁금해 한다. 모두가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왜 바뀌지 않는 걸까? 생각해보면 이유는 단순하다.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바꿀 수 있는 힘이 없고, 바꿀 수 있는 사람들은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함께 일했던 사람 좋은 피디님들도 이렇게 얘기했다. 작가는 프리랜서니까 본인이 그만두고 싶을 때는 그만두면서, 왜 타의에 의해 그만두는 것에 대해서는 해고라고, 부당하다고 이야기를 하는 거냐고. 나는 깊은 속에서 차오르는 울분을 애써 억누르며, 겨우 이렇게 이야기했다. ‘저는 방송작가를 하고 싶었지, 프리랜서로 일하기를 선택한 적은 없거든요.’
그동안 거쳐 온 모든 프로그램에서,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갑자기 일을 그만두어야 하는 비정규직 작가나 AD, FD들을 목격했다. 담당 피디에 의한 해고였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며칠까지 거취를 결정해서 얘기해 달라는 통보에 짓눌려 고민하는 동료에게, 나는 원한다면 피켓이라도 써서 들고 문제를 알리자고 얘기해 봤지만, 그녀들은 두려워했다. 또한 이곳이 아니라도 취재작가를 구하는 다른 프로그램은 많이 있고, 이미 눈 밖에 난 상사와 함께 계속 일을 해나가는 것이 순탄치 않으리라는 걸 모두가 몸으로 알고 있었다. 그리고 정규직 피디들도 잘 알고 있다. 프리랜서인 작가는 상근으로 일하고 직접 업무지시를 받으면서도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것. 그래서 바로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는 말을 들어도 부당해고로 신고조차 할 수 없다는 것. 그래서 정규직 피디가 마음에 안 드는 취재작가 한 명쯤 자르는 것은 참 쉽다.
문제를 문제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어떤 이는 ‘방송작가의 삶이 트라우마의 연속선상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생각했다. 나 역시 여러 부당한 일들을 견디며 버텨 왔지만, 그중 가장 참기 힘든 것은 해고당하는 동료를 바라만 봐야 하는 일이 거듭되어도 여전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끝내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거라는 무력감이었다. 하지만 동료 취재작가들과 함께 작은 변화를 이끌어낸 경험이 없지는 않다.
몇 년 전 한 지상파 방송의 어느 프로그램에서는 8명의 취재작가가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 주에 방송이 결방되면 모든 취재작가에게는 주급이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결방이 된 주에도 계속되는 취재와 업무들로 모든 취재작가는 사무실로 정상 출근을 했다. 당시 주급이 40만 원이었으니, 한 달에 1번 결방이 되면 월급은 120만 원, 2번 결방이 되는 달이면 월급이 80만 원인 셈이었다. 누가 봐도 이상한 시스템이었지만, 그 안에서는 오랫동안 문제라고 여겨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취재작가들이 뭉쳐서 팀장님을 찾아가 문제 제기를 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렇게 팀장님을 찾아가기 전까지 취재작가들은 수차례 온라인 메신저와 오프라인 모임을 통해 의견을 모았다. 각자의 성향에 따라 어디까지 의견을 전달할 것인지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함께 목소리를 내야만 바꿀 수 있다는 공감대가 있어서 뜻을 모을 수 있었다. 취재작가들의 이야기를 들은 팀장님은 방법을 고민해 보겠다 하셨고, 오래지 않아 결과를 알려 오셨다. 결방 시 취재작가들의 급여를 보전해 주기 위해 주급을 5만 원씩 올리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즉, 그 5만 원은 함께 일하는 메인작가의 급여에서 차감한 것이었다. 우리가 만들어 낸 작은 변화였지만, 그마저 다른 작가들의 파이를 깎아서 얻어낸 것이라니 참혹한 마음이었다. 이 일로 몇 분의 메인작가님들은 프로그램을 그만두셨다.
작년에는 새해와 함께 방송국에 또 한 번 최저임금이 떠올랐다. 방송국에서 작가의 노동력은 항상 저평가된다. 피디들은 작가의 임금이 적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많지 않은 제작비에서 작가들에게 주는 인건비가 적지 않다고 느껴지는 거라면 관대하게 이해를 하자면 해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최저임금 수준에 맞춘 급여 인상 요구에 대해 작가들이 9 to 6 출근을 하냐고 되묻는 부서 팀장의 발언은 성찰의 부재를 여실히 드러낸다. 1초라도 생각하고 말했다면 방송국의 어느 정규직 피디도 그렇게 출근하지 않는다는 것을 떠올릴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지나가는 말이라도 그런 말을 듣게 되는 날이면, 아무리 흘려들으려 해도 마음이 주저앉아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작가는 프리랜서고, 최저임금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공허한 논리의 말들. 그 공허한 말의 굴레가 작가들의 삶을 옥죄고 있다.
입봉했으니 미련 없이 그만둘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한 달도 안 되어 또 새로운 프로그램에서 일을 하고 있다. 소규모의 제작팀에 프리랜서로 고용되는 이 불안정한 일을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어떤 지점이 문제라는 것을 정확하게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그저 소진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서서 버틸 수 있는 힘을 낼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리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조금쯤 비켜서는 사사로운 태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문제에 대해 문제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방송국이 프리랜서인 작가와 앞으로도 계속 함께 일하고자 한다면 작가에게 터무니없는 업무에 창의성과 아이디어까지 무턱대고 요구하기 전에, 작가의 노동을 존중하고 그에 걸맞은 보상과 대우를 해주면 좋겠다. 그럼 많은 작가들이 박탈감으로 소진되는 아까운 시간을 줄여, 더 좋은 프로그램을 위해 고민하고 좀더 나은 구성안과 대본을 써낼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번번이 배신당하고 절망하고 낙담하면서도 희망을 품어 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강인한 이들이 조금 더 행복하게 일할 수 있기를 바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