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현장개선우수사례공모전] 수기 최우수상작 "내 인생 첫 '경위서'" (붉은달)

202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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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최우수상] 내 인생 첫 ‘경위서’

붉은달


* 2020 한빛센터 <방송현장개선 우수사례공모전> 수기 부문 수상작을 게재합니다.


“제 이름은 나오지 않게 해주세요”


피디는 이 말을 던지고 나가버렸습니다. 하지도 않은 일로 한참이나 욕을 먹은 후 경위서를 쓰기 위해 방송이 끝나고도 남아있던 참이었지요. 

서울의 한 방송사에서 저녁 시사 프로그램을 제작했던 때의 일입니다. 점심에 출근해서 방송이 끝나야 퇴근하는, 무늬만 프리랜서인 생활이었지만 프로그램은 그런대로 괜찮았습니다. 사회적 이슈에 대해 날카롭게 짚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고, 그것을 위해 많은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매력이 있던 프로였습니다. 

당시 저는 그 프로그램에 합류한 지 채 일주일도 되지 않은 상태라 원고를 입력하는 내부 시스템 작동에도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서 어려움이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프로그램 적응기였던 저는 제 원고를 쓰고 후배작가들의 원고를 봐주는 정도의 일이 전부였고, 그래서 작가들이 쓰는 원고 외에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원고를 썼는가는 관심도 없었습니다. 마침 그날 북한의 고위 관료가 처형되었다는 기사가 나왔고, 그것을 토대로 작가와 피디가 각각의 코너를 맡아 원고를 작성했습니다. 

생방송이 시작되고 방송이 한참 나가는 중에 담당 팀장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할 때에도 저는 그 이유를 몰랐습니다. 제 원고나 혹은 후배 작가들 원고에서는 문제가 없었거든요. 방송 끝에 가서야 후배작가들에게 팀장이 화난 이유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방송 직전 담당 피디의 원고가 수정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 수정 원고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권리는 안 주지만 책임은 무한대


북한발 뉴스는 현장 확인이 안되기 때문에 ‘카더라’가 많고, 그러다보니 오보도 많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더 신중하게 작업을 해야하는데 방송 직전 담당 피디의 원고가 ‘카더라’를 근거로 작성해 팩트 오류가 되어버린 겁니다. 파르르 떠는 후배들을 보며 혹시나 후배들이 잘못된 정보를 가져온건가 싶었습니다. 물론 잘못된 정보를 가져온다고 해도 작가와 피디는 그것이 팩트인지 아닌지를 확인해야할 의무가 있는 것이고요. 

시작은 그날 출연하는 전문가가 이야기해준 잘못된 정보가 후배 작가들에게로 들어갔고 그것을 전해들은 담당 피디가 팩트확인 없이 원고를 수정했다, 그리고 그것이 잘못된 정보였다가 전부였습니다. 뒤늦게 상황 파악을 하면서 혹시라도 후배 작가들이 잘못된 정보의 출처로 오해를 사고 그것으로 인해 불이익이 갈까 싶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저에게, 그리고 후배작가들에게 “당신들 잘못이 아니다”라고 해줄 이가 없었거든요. 결국 제가 책임을 졌고, 그렇게 무조건 잘못했다, 다시는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는 경위서를 작성해 팀장에게 제출했습니다. 살면서 처음 써본 경위서, 그것도 남이 한 일을 대신해서 책임지며 써야했던 그날의 일은 시간이 지나면서도 끊임없이 저를 괴롭혔습니다.

시청률이 잘 못 나와도 결국은 작가들 탓이고, 무엇을 해도 작가들이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로 귀결되는 이 시스템이 바뀌지 않으리라는 것도 확실하게 알아챘고 말이죠. 10년이 넘게 같은 일을 해온 사람에게 데일리 생방송을 맡기며 300만원의 페이를 제시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서 프리랜서에 대한 존중, 아니 비정규직에 대한 권리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그 일이 있은 후 프로그램 MC도, 후배 작가들도 어느 누구도 관련해서 해명을 해주거나 하지않았고, 그저 쉬쉬하는 모습들에 신뢰까지 깨져버렸습니다. 물론 그들 입장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당장 다음주부터 나오지 마세요라고 하면 무어라 제대로 항의도 못하고 그대로 따라야하는 위치에 그들도 나도… 동일선상에 놓여있었으니까요.


희망을 잃었을 때 찾아온 ‘뒷배’


결국 3개월을 채우지 못하고 프로그램을 그만뒀고 한동안 방송을 다시 시작할 수도 없을만큼 피폐해졌습니다. 다른 프로그램에 다시 들어가서 일을 할 자신이 없었거든요. 희망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1년여 가량을 제대로된 방송 프로그램을 하지않은 채 이런저런 소일거리로 때우며 버텼습니다. 이제 더 이상은 방송일을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죠.

그렇게 폐인처럼 1년을 보내고 2017년 봄부터 작가들의 권리찾기에 대한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습니다. 다시 귀를 열어 소식을 찾아들었고 그렇게 2017년 가을, 들뜨는 마음으로 방송작가 유니온 출범식에 참여했습니다. 내 이야기를 들어줄 작가들의 든든한 ‘뒷배’가 있다는 그것만으로도 가늠할 수 없을만큼의 힘을 얻었고 방송작가 유니온을 통해서라면 앞으로 부당한 일, 불합리한 일들을 함께 해결해 나갈 수 있을거라는 기대가 마치 방송작가를 처음 시작할 때와 같은 설렘을 주었습니다.

물론 아직 갈 길은 멉니다. 여전히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불안감 속에 좋은 방송 만들겠다는 고집 하나만으로 방송을 하기에는 벅찬 것도 사실입니다. 저 역시도 지난 개편 당시, 제 의사와 상관없이 프로그램에서 하차해야 하는 경험을 했습니다. 시청률, 제작완성도 등과는 별개로 여전히 방송사 혹은 방송사 PD가 ‘갑’으로 군림하는 현실에서 ‘을’일 수밖에 없는 작가의 고단함은 어쩌면 이 일을 하는 내내 짊어지고 가야 할 짐일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이제는 비빌 언덕이 있어 그 짐의 무게가 조금은 가볍게 느껴집니다. 

줄기차게 홍보, 미디어 분야에 이력서를 내던 저는 다시 방송작가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다음 방송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언제 해고될 지 모르는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살지만, 그래도 ‘경위서’를 쓰는 일은 없을겁니다. 이제는 함께 응원해주는 이들이 생겼으니까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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