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현장개선우수사례공모전] 수기 대상작 "해고부터 복직까지 초스피드로 겪은 수기"(댕댕이)

202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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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대상] 수습 3개월간 해고부터 복직까지 초스피드로 겪은 수기

댕댕이


*2020 한빛센터 <방송현장개선 우수사례공모전> 수기 부문 수상작을 게재합니다.


부당해고와 복직투쟁


나는 지난 해 대학 졸업 후 올해 한 작은 방송 제작사에 입사했다. 처음 들어간 회사라 ‘내가 드디어 사회인이 되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어 모든 게 신기하기만 했다. 그런데 다니면 다닐수록 회사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팀장이 정말 이상한 사람이어서 마음고생을 크게 했다. 내가 여기서 뭘 하는 건지 고민이 많이 됐다. 매일 퇴근할 때마다 우울감에 젖어있었다.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결심을 하기도 전에 황당한 일을 겪었다. 입사 두 달만에 부당해고를 당한 것이다. 

대체휴가 사용을 요청한 게 발단이었다. 이 회사에서는 주말에도 촬영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수당을 지급하지 않아 대체휴가가 쌓여있었다. 이따 얘기하자는 팀장의 말에 나는 왠지 불안해졌다. 이미 비슷한 상황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 예감은 틀리지 않았고, 팀장은 나에게 회사 생활을 정리하라는 통보를 했다. 간략하게 말하면 ‘일을 못 한다’는 이유였다. 기대감이 없네 어쩌네…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눈물이 주룩주룩 나왔다. 지금 그만두게 되면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력하겠다, 계속 일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했지만, 팀장은 완강하게 날 자르겠다고 했다. 

무의미한 대치상황이 흐르고 계속 줄줄 울다 어느 시점에서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던 친구에게 가서 나 지금 잘렸다, 같이 담배를 피우자고 했다. 회사 앞 테라스에 나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피웠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다 같은 마을공동체의 회원인 A선생님한테 전화를 했다. “선생님, 저 잘렸어요.”라고 말을 했더니 선생님이 대충 욕 비스무리한 말을 하고, 역시 나에겐 마을공동체에서 친하게 지내는 언니이자 모 지역의 노동단체의 활동가인 B언니에게 연락을 해주었다. B언니는 자신의 단체에 자문해 주시는 노무사님을 소개해 주었다. 

회사를 나오는 날까지 노무사님과 전화를 하며 해고판정을 받을 수 있는 증거를 모았다. 노무사님을 만나 사건 위임을 하고 이유서를 작성했다. 지방노동위원회의 접수 공문을 받은 지 일주일이 지나지 않아 회사는 노무사님을 통해 합의의사를 전해왔다. 소를 제기할 때부터 합의는 절대 안 할 생각이었다. 합의를 거절하자, 회사에서는 대화를 요청했다.  대화 후 집으로 가는 길에 다시 회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복직을 알리는 전화였다. 다행히 회사 사람들도 나에게 악감정이 없는지 잘 대해주어서 정규직으로 거듭나 회사에 잘 다니고 있다.


포기하는 법 대신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할 용기를 얻게 된 계기는 노무사님이 B 언니에게 보낸 텔레그램 내용 때문이었다. 

‘본인이 원하면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맡아서 진행하려고 합니다.’

‘첫 직장부터 포기하는 법을 배우게 하긴 싫군요.’

보는 순간 살면서 포기해 온 수많은 사건이 떠오르며 이번에도 포기하긴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속한 마을공동체의 사람들도 다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싸워도 된다고 얘기해주었다. 해결되지 않는 수많은 문제에 분노만 하다 이제는 결국 무기력해져 세상을 약간 외면하고 있는 상태였는데, 이 사건만큼은 날 도와줄 사람들이 많고 내가 무언가 해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떠한 투쟁을 할 때 지쳐서 그만두고 싶은 시기가 분명히 올 수 있는데, 나에게 얼만큼의 힘이 있는지, 그 순간 그만둘지 말지 생각해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부당해고 투쟁은 결국 나를 지키기 위한 싸움인데, 내가 그 싸움에 매몰되어 고통을 받는다면 그게 의미가 있을까? 나도 이 싸움을 시작할 때 이 싸움이 길어지면 몇 년도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를 도와주는 사람들에게 “나는 포기하지 않고 최대한 싸우고 싶다”고 얘기했는데, B 언니는 “하다가 힘들면 그만둬도 된다”고 말 해줬다. 그 말이 엄청나게 고마웠다. 중간에 그만둔다고 겁쟁이가 아니니까! 

내가 왜 그런 경우없는 팀장 때문에 고통을 받았는지는 정말 이해가 되지 않지만, 한 달 간의 고통을 겪으며 얻은 교훈도 있다. 

첫 번째로, 부당해고를 당할 때 정신만 잘 차리자는 것이다(일단 사측에서 함부로 해고하지 않는 게 맞지만, 사람은 길 가다 날벼락을 맞을 수 있다). B언니는  내가 그래도 사직서에 사인이라도 안 해서 부당해고 구제신청이라도 할 수 있었지, 그게 아니었음 아무것도 못 했을 거라는 사실을 알려줬다. 자신이 소속된 노동단체에도 상담을 받는 사람이 많은데 그 사람 중 억울한 사람이 많지만 소도 제기 못 하고 끝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하여튼 해고를 당할 때는 절대로 사직서에 사인을 하지 말자! 

그리고 빨리 믿을만한 단체 또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받아야 한다. 나는 운이 좋아서 주변 사람들이 다 ‘빨갱이’라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만약 주변에 사람이 없다면 단체(노동조합이라던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혹은 노무사에게 빨리 전화를 하는 게 제일 좋은 것 같다. 회사 대 개인의 싸움은 무섭기 마련이다. 그럴 때 힘을 합칠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내가 회원으로 있던 마을공동체 사람들에게서 힘을 많이 얻었고, 친구가 속한 노동단체 노무사님의 도움을 받아서 덕분에 그 노동단체에도 가입할 예정이다(노무사님께서 정말 감사하게도 본인에게 드릴 수임료를 그 단체에 기부하고 회원가입을 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A선생님의 추천으로 ‘희망연대노동조합 방송스태프지부’에도 가입했다. 사건이 원만히 해결되어 직접적인 행동(시위 등등)을 함께 하지는 못 했지만 지부장님과의 대화가 힘이 많이 되었다. 


힘들었던 시간을 이겨낸 힘은


구제신청을 하고 나서 마을공동체에서 가졌던 술자리에서 B 언니와 마을공동체 사람들이 네가 제일 힘들 거라는 얘기를 했는데, 처음 그 얘기를 들을 땐 힘들다는 게 어떤 건지 잘 몰랐다. 한 달을 보내면서 힘든 게 뭔지 잘 알게 되었는데, 첫 번째로 스스로에 대한 의심을 많이 하게 되는 게 힘들었다. ‘내가 자를 만한 사람이라 그런 식으로 해고를 하지 않았을까?’ 하는 나의 쓸모에 대한 의심을 스스로 갖게 되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래도 사람을 그렇게 함부로 자르는 자본가들이 잘못된 거지 내가 뭘 크게 잘못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게 되었다. 어쨌든 날 그런 식으로 자르는 인간들은 사람을 기계 부품처럼 생각하고 인간적인 대우를 하지 않는데, 내가 실력이 모자란 게 큰 문제인가 싶다. 심지어 나는 수습기간 중에 잘렸는데! 

두 번째로, 해고기간 동안 어떻게 될지 모르니 당장 일자리를 구하지 않았는데, 그로 인한 자괴감이 심하게 들었다. 내가 너무 쓸모없는 사람이 된 기분이 자꾸 들어서 고통스러웠는데 여러모로 힘든 시기를 그래도 견딜 수 있게 해줬던 건 내가 좋아하는 행위를 하는 것과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었다. 자꾸 사건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 취미생활을 열심히 하고 친구들을 만나 속풀이도 했다. 취미로 드럼을 열심히 박살 낸 결과 요즘은 오아시스의 Don’t look back in anger라는 곡에 맞춰 드럼을 치고 있다.

해고 기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록을 열심히 남길까 하다 나에게 일어났던 사건을 돌이켜 보는 것이 조금 고통스러워 기록을 열심히 하지 않았는데, 다른 사람들을 위해 많이 기록할 걸 하고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녹음 파일이 많이 남아있어 나중에 여력이 된다면 말소리와 자막 위주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볼까 하고 있다. 여튼 사건이 원만하게 해결될 때까지 도움을 준 친구와 노무사님, 마을공동체 친구들, 노동조합에 감사한다. (나보고 시위 언제 하느냐고 마을 공동체 친구들이 다들 신나서 물어보고 노동단체 대표분께서 앰프랑 피켓도 빌려준다고 했는데 회사 앞에서 시위를 안 해서 조금 아쉽지만) 

마지막으로 힘든 시간을 잘 견뎌 결국 사측과의 소통을 통해 사건을 아주 쉽게 해결한 나 자신에게 잘했다고 칭찬을 해 주고 싶다. 사건을 겪고 나서 친구들에게 우스갯소리로 ‘너는 이런 거 겪지 마라…’라고 했는데, 부디 세상이 좋아져 노동자의 권리가 잘 보호되어 고통받는 사람들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비록 월급은 쥐꼬리고 회사에서 일은 더럽게 많이 시키지만, 부당한 일이 또 일어난다 해도 난 이번에 포기하지 않고 이겨냈기 때문에 앞으로도 나의 권리를 쟁취하며 살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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