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자락을 스미는 찬 바람이 1월의 끝자락을 알려주는 오늘입니다. 스튜디오S 이힘찬 프로듀서 4주기 추모제에 다녀왔습니다. 이힘찬 프로듀서는 드라마 <소방서 옆 경찰서>에서 제작PD로 일하던 중, 빡빡한 예산과 일정 속에서 모든 것이 버겁다는 말을 남기고 스스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SBS제작센터에서 진행된 추모제를 마치고, 이힘찬 프로듀서가 잠들어 있는 청아공원에도 다녀왔습니다. 4년이 지났지만 수많은 동료 분들이 여전히 함께해주셨습니다. 함께 기억과 추모의 시간을 보내면서, 개인이 지나친 책임을 지는 구조가 되지 않게, 조직이 마땅한 책임과 역할을 하기를 바래봅니다.
김영민 센터장의 추모사 입니다.
이렇게 쌀쌀한 겨울이 오면, 청아공원을 찾아갈 때가 되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방송노동환경 개선을 위해서 활동하는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의 센터장 김영민입니다. 오늘도 이렇게 4년 전, 우리 곁을 떠난 이힘찬 PD를 기억하고자 함께 자리를 마련해주시고 또 시간 내어주신 동료 분들, 언론노조SBS본부, 그리고 스튜디오S 관계자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차가운 공기가 마음 속 깊숙한 곳까지 스며드는 날씨입니다. 4년 전 이힘찬 PD의 마음은 마치 이런 추위에 홀로 남겨진 것과 같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거대한 프로젝트를 홀로 감당하는 책임감과 감당하기 벅찬 괴로움, 빠듯한 시간 속에서 느끼는 초조함과 그리고 외로움. 아무리 꽁꽁 싸매도 파고드는 매서운 추위 속에 놓여진 것 같은 마음이지 않았을까요. 어쩌면 조금만 주위를 둘러볼 수 있었다면 그가 아직 우리 곁에 남아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하루하루 숨 가쁘게 돌아가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그를 놓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드라마 산업은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웠던 수준으로 성장하였고, 이제는 세계적인 수준의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밖에서 보면 무한한 기회의 공간이 열린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런 화려한 성공에 가려졌지만, 우리는 그 속살을 알고 있습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규칙과 관행이 부족한 상태로 많은 것을 일하는 각자가 감당해야만 합니다. 촉박한 시간 속에서 숱한 돌발 상황과 끊임없는 리스크들을 어떻게 감당할지를 고민하게 합니다. 때로는 어쩔 수 없다는 말로, 때로는 그래도 이 일이 좋아서 하는 거니까 라는 말로 위로해보지만, 그런 위로로도 어쩔 수 없는 순간들도 있습니다. 이힘찬 PD 또한 겪었고, 또 여기 계신 많은 분들도 겪는 일들일겁니다. 스튜디오S라는 조직이 구성원들이 일하면서 겪는 어려움들을 기꺼이 함께 짊어지는 조직이 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이힘찬 PD를 생전에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4년 전 대책위를 하면서 만난 그의 흔적들과 동료 분들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그를 알 수 있었습니다. 전도유망한 PD였고, 10년 가까이 함께 한 동료였으며, 또 많은 분들과 깊은 우정을 나누는 친구였습니다.
10년 전에 세상을 떠난 이한빛 PD가 살아서 계속 드라마를 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합니다. 신입이었던 한빛이 여러 드라마를 거쳐 일하면서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 많은 분들과 함께 행복한 드라마를 만드는 그런 상상입니다. 조금 더 나은 제작환경이었다면 그럴 수 있지 않았을까. 괴로움을 주는 현장의 문제를 함께 해결할 방법을 찾았다면 그러지 않았을까. 이힘찬 PD를 생각하며 같은 질문들을 떠올립니다. 외형과 달리 수년째 시달리는 불황 속에서, 자본과 이윤의 논리로만 모든 것이 결정되고 요구받게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이한빛, 이힘찬 PD가 겪었던 그런 괴로움들을 또 다른 누군가가 더 이상은 겪지 않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 한빛센터도 그런 마음으로 함께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이힘찬 PD의 평온과 안식을 빌며 제 이야기는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영민 센터장의 추모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