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창한 10월의 마지막 토요일, 마석모란공원에는 많은 분들이 자리해주셨습니다. 많은 열사 분들이 잠들어계시기에 새로운 곳에 잠들게 된 한빛PD가 외롭지 않을 것 같습니다. 모란공원을 들어오면 바로 오른쪽에 위치한 민족민주열사묘역입니다. 아직은 입구 표지판에 한빛PD 묘 위치가 표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조금만 길을 따라서 언덕을 올라오면 커다란 민족민주열사 추모비가 놓여있고, 그 바로 뒷 편에 한빛PD의 새 보금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추모제를 앞두고 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에서 추모미사를 집전해주셨습니다. 이른 시간 멀리서 진행되는 추모미사에도 적지 않은 분들이 함께해주셨습니다. 미사를 집전해주신 노동사목위원회 신부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추모제의 시작에 앞서 간단한 묘비제막식이 있었습니다. 한빛PD의 동생 이한솔님은 '생전의 형을 생각하면 사실 본인은 이렇게 열사 묘역에 묻히는 걸 바라지 않았을 것 같다'면서도 '하지만 이제는 형의 죽음이 사회적 의미를 기억하고 또 이어가는 의미라고 생각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한솔님의 말처럼, 이렇게 10월이 되면 함께 모이고 기억하는 것은 이제는 없는 한빛의 자리를 채우고 그리워하기 위함이고, 또 그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고뇌했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기 위한 노력이기도 합니다.

어머니 김혜영님과 아버지 이용관님, 동생 이한솔님이 함께 묘비를 덮은 흰 천을 당기면서 묘비제막식을 진행했습니다. 묘비 전면에는 "방송노동자의 한 줄기의 빛, 이한빛"이라는 문구와 함께, 생전에 한빛PD가 자주 썼던 문구 "연대의 두근거림으로 빛나는"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 문구들을 한빛PD의 중학교 시절 은사이신 나승인 선생님께서 직접 캘리그래피로 써주셨습니다. 묘비 후면에는 아들에게 남기고 싶은 어머니의 글이 새겨졌고, 측면에는 한빛PD가 생전에 썼던 글귀를 가져왔습니다. 묘역에는 한빛PD를 기억하는 물품을 보관할 상자와 방송노동을 상징하는 조형물도 추후에 갖춰질 예정입니다.
추모제의 첫 순서로 한빛PD의 대학 친구이자 여전히 방송 일을 하고 있는 지윤님의 추모사가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9년전 신입이었던 모두에게 방송 드라마는 정말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2016년 봄 쯤에 한빛은 혼술남녀라는 드라마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드라마 대본을 이해하고 싶은데 혼술을 해본적이 없다고 했어요. 저도 드라마 업계에 있던 입장이라 좀 아는 척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같이 술 먹고 있던 자리였는데 이제와서 고백하지만 저는 그 때 혼술이 혼자 술먹기의 줄임말인줄도 모르고, 그럼 지금 해봐! 라고 했었어요. 대충 또 제가 모르는 드라마 업계 용어라고 생각했나봐요. 이제와선 부끄럽지만 그 땐 부끄럽다고 못했던 것 같아요. 당시에 우리는 현장에서 쓰는 모든 용어들, 예를 들어 시바이, 대모찌, 다찌, 발차 이런 모든 게 낯설었고, 한빛은 그런 소위 현장 용어를 좀 가르쳐줄 수 있냐고 물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도 뭣도 모르는데 간신히 아는 척 하면서 야 니마이와 쌈마이라는 게 있어 라고 알려줬던게 또 부끄러웠던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
풀이 죽어있던 한빛에게 그땐 위로의 말을 차마 건네지 못했는데 이제와서는 얘기할 수 있어요. 신입에게 모든 건 쉽지 않은데, 드라마 현장은 더 혹독했던 것 같다고요.
(...)
그런데 2025년은 조금은, 그리고 어떤 부분에서는 아주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그건 제가 나이를 먹어서 일 수도 있고, 세상이 달라져서 그럴 수도 있어요. 하지만 아주 분명한 건, 밤을 새서 1시간 찜질방에서 쪽잠자고 촬영하던 시대와 오늘은 달라졌다는 사실이에요. 그리고 그걸 만든 건 한빛 뿐 아니라 한빛센터를 스쳐간 모든 이들, 한빛을 기억하는 유가족들, 그리고 한땀한땀 한빛센터에 마음 모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의 추모사는 이 미친 세상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과 그 사람들이 살아남을 수 있게 한 한빛, 그리고 한빛의 부모님, 한빛센터 분들께 올리고 싶습니다.
이어서 두 번째 추모사는 전국언론노동조합 이호찬 위원장을 대신하여 조성은 수석부위원장님이 맡아주셨습니다. 방송산업의 여전한 노동현실과 최근 있었던 MBC 고 오요안나 기상캐스터 사건과 같은 문제들을 언급하며, 함께 싸워가겠다는 연대의 인사를 함께 담아주셨습니다. 9년이 지났지만, 아직 바뀌지 않은 방송산업의 불안정 노동자들의 문제에 대해서 언론노조가 중요한 역할을 계속 해주시기를 기대해봅니다.


추모공연으로 중앙대 민주동문회 노래패 어울소리에서 노래 공연을 해주셨습니다. 노래 <친구2>와 <함께가자 우리 이 길을> 불러주셨습니다. 힘찬 노래가 파란 가을 하늘에 울려퍼졌습니다.

한빛PD의 아버지 이용관님이 유가족을 대표해서 감사의 인사를 전하였습니다. 모란공원으로 옮겨오면서 느낀 감회와 함께, 묘역을 새로 조성한 과정, 그리고 한빛이 남긴 뜻을 이어가겠다는 변함없는 마음에 대해서도 담담히 말씀해주셨습니다.

이어서 올해로 여섯 번째를 맞이하는 한빛미디어노동인권상 시상식이 있었습니다. 시상에는 심사위원으로 수고해주신 인권운동가 박래군님이 맡아주셨습니다. 올해 수상자는 MBC 고 오요안나 기상캐스터의 어머니 장연미 님입니다. 장연미 님은 27일에 걸친 단식 투쟁으로 MBC 측의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받아냈고 이러한 과정에서 방송사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알리는 역할을 하셨습니다. 장연미 님은 수상소감을 통해서 고 오요안나 기상캐스터가 겪었던 방송 산업의 현실과 한빛PD가 겪었던 현실이 다르지 않았음을 이야기하며, 노동 문제라는 것에 대해서 전혀 몰랐던 자신이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이런 싸움을 할 수 있었다는 감사의 뜻을 전했습니다.
시상식을 마친 후에는 한 분씩 헌화를 진행하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추모와 기억의 시간을 함께 해주셨습니다. 마지막 순서로는 노래패 어울소리와 함께 이한빛PD 추모가 <한 줄기 빛처럼>를 제창하였습니다. 처음 마석에서 진행하는 추모제여서 준비에 미숙한 부분이 많았지만, 많은 분들이 함께 자리를 빛내주신 덕분에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한빛센터도 이러한 마음과 기대에 응할 수 있도록, 방송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계속해서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는 후원회원 분들이 보태주시는 마음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한빛센터가 계속해서 다양한 방송미디어 제작현장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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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10월의 마지막 토요일, 마석모란공원에는 많은 분들이 자리해주셨습니다. 많은 열사 분들이 잠들어계시기에 새로운 곳에 잠들게 된 한빛PD가 외롭지 않을 것 같습니다. 모란공원을 들어오면 바로 오른쪽에 위치한 민족민주열사묘역입니다. 아직은 입구 표지판에 한빛PD 묘 위치가 표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조금만 길을 따라서 언덕을 올라오면 커다란 민족민주열사 추모비가 놓여있고, 그 바로 뒷 편에 한빛PD의 새 보금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추모제를 앞두고 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에서 추모미사를 집전해주셨습니다. 이른 시간 멀리서 진행되는 추모미사에도 적지 않은 분들이 함께해주셨습니다. 미사를 집전해주신 노동사목위원회 신부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추모제의 시작에 앞서 간단한 묘비제막식이 있었습니다. 한빛PD의 동생 이한솔님은 '생전의 형을 생각하면 사실 본인은 이렇게 열사 묘역에 묻히는 걸 바라지 않았을 것 같다'면서도 '하지만 이제는 형의 죽음이 사회적 의미를 기억하고 또 이어가는 의미라고 생각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한솔님의 말처럼, 이렇게 10월이 되면 함께 모이고 기억하는 것은 이제는 없는 한빛의 자리를 채우고 그리워하기 위함이고, 또 그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고뇌했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기 위한 노력이기도 합니다.
어머니 김혜영님과 아버지 이용관님, 동생 이한솔님이 함께 묘비를 덮은 흰 천을 당기면서 묘비제막식을 진행했습니다. 묘비 전면에는 "방송노동자의 한 줄기의 빛, 이한빛"이라는 문구와 함께, 생전에 한빛PD가 자주 썼던 문구 "연대의 두근거림으로 빛나는"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 문구들을 한빛PD의 중학교 시절 은사이신 나승인 선생님께서 직접 캘리그래피로 써주셨습니다. 묘비 후면에는 아들에게 남기고 싶은 어머니의 글이 새겨졌고, 측면에는 한빛PD가 생전에 썼던 글귀를 가져왔습니다. 묘역에는 한빛PD를 기억하는 물품을 보관할 상자와 방송노동을 상징하는 조형물도 추후에 갖춰질 예정입니다.
추모제의 첫 순서로 한빛PD의 대학 친구이자 여전히 방송 일을 하고 있는 지윤님의 추모사가 있었습니다.
이어서 두 번째 추모사는 전국언론노동조합 이호찬 위원장을 대신하여 조성은 수석부위원장님이 맡아주셨습니다. 방송산업의 여전한 노동현실과 최근 있었던 MBC 고 오요안나 기상캐스터 사건과 같은 문제들을 언급하며, 함께 싸워가겠다는 연대의 인사를 함께 담아주셨습니다. 9년이 지났지만, 아직 바뀌지 않은 방송산업의 불안정 노동자들의 문제에 대해서 언론노조가 중요한 역할을 계속 해주시기를 기대해봅니다.
추모공연으로 중앙대 민주동문회 노래패 어울소리에서 노래 공연을 해주셨습니다. 노래 <친구2>와 <함께가자 우리 이 길을> 불러주셨습니다. 힘찬 노래가 파란 가을 하늘에 울려퍼졌습니다.
한빛PD의 아버지 이용관님이 유가족을 대표해서 감사의 인사를 전하였습니다. 모란공원으로 옮겨오면서 느낀 감회와 함께, 묘역을 새로 조성한 과정, 그리고 한빛이 남긴 뜻을 이어가겠다는 변함없는 마음에 대해서도 담담히 말씀해주셨습니다.
이어서 올해로 여섯 번째를 맞이하는 한빛미디어노동인권상 시상식이 있었습니다. 시상에는 심사위원으로 수고해주신 인권운동가 박래군님이 맡아주셨습니다. 올해 수상자는 MBC 고 오요안나 기상캐스터의 어머니 장연미 님입니다. 장연미 님은 27일에 걸친 단식 투쟁으로 MBC 측의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받아냈고 이러한 과정에서 방송사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알리는 역할을 하셨습니다. 장연미 님은 수상소감을 통해서 고 오요안나 기상캐스터가 겪었던 방송 산업의 현실과 한빛PD가 겪었던 현실이 다르지 않았음을 이야기하며, 노동 문제라는 것에 대해서 전혀 몰랐던 자신이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이런 싸움을 할 수 있었다는 감사의 뜻을 전했습니다.
시상식을 마친 후에는 한 분씩 헌화를 진행하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추모와 기억의 시간을 함께 해주셨습니다. 마지막 순서로는 노래패 어울소리와 함께 이한빛PD 추모가 <한 줄기 빛처럼>를 제창하였습니다. 처음 마석에서 진행하는 추모제여서 준비에 미숙한 부분이 많았지만, 많은 분들이 함께 자리를 빛내주신 덕분에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한빛센터도 이러한 마음과 기대에 응할 수 있도록, 방송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계속해서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는 후원회원 분들이 보태주시는 마음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한빛센터가 계속해서 다양한 방송미디어 제작현장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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