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고맙습니다(2) - 신부님, 신부님

관리자
2018-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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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 김혜영


고맙습니다(2) - 신부님신부님

  



  한빛 한솔이가 대학생이 된 후 의정부 신곡2동 성당에 꼭 가고 싶었다신곡2동 성당에 예수님이 특별히 따로 계신 것도 아닌데 덕분에 이렇게 잘 컸어요.’ 하고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싶었다의정부를 떠난 지 15년이나 지났기에 우리 가족을두 아이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없을 텐데도 이상하게 두 아이가 어린 시절을 보낸 이곳신곡2동 성당에는 꼭 들러야만 할 것 같은 부채감을 갖고 있었다인간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친정 부모 묘소를 가려면 신곡2동 성당 앞을 지나는데 그때마다 돌아올 때 꼭 들러야지 했다하지만 매번 무엇이 그리 바쁜지 시간에 쫓겨 다음으로 미루며 지나가곤 했다그렇게 미루고 미루었던 그곳을 한빛 유골함을 안고 찾아 갔다이걸 어떻게 받아들이라는 건가

  “사비나안 될 것 같아. <하늘의 문>에는 본당 신자만이 들어갈 수 있대저녁에 신부님과 협의해 본다니까 기도하며 기다려보자” 성당 자매님이 위로했지만 나는 아무 간절함이 없었다아들의 죽음 앞에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넋이 나갔는데 무슨 기도를아들이 이 세상에 없는데 장지가 어디가 되든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그러나 장례는 진행되었고 모든 절차는 현실을 무시할 수 없었다밤늦게 아들의 복사시절 얘기를 들으신 주임신부님께서 선뜻 <하늘의 문>을 허락하셨다는 연락이 왔다한빛은 첫영성체를 받았고 복사를 섰던 신곡2동 성당의 봉안당 <하늘의 문>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릴 수 있었다

  한빛의 죽음을 절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동안 분에 넘치게 모든 것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이 성당에 우선적으로 왔어야 했는데 나의 게으름으로 차일피일 미루어 벌 받은 것일까그동안 눈앞의 것에만 집착하고 세상의 욕심만 채우려고 해서 나의 교만함에 철퇴를 내렸나별별 자책감이 다 들었다그래도 아니지아무리 죄가 커도 엄마를 가르치기 위해 아들의 죽음으로 경고를 해서는 안 되지아들을 이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는 없지 않은가세상 이치가 그렇다면 무슨 자비의 하느님이고 사랑의 하느님이란 말인가

  오순절한빛이 하늘나라로 간 지 50일 되던 날그때까지도 나는 숨죽인 채 절망 속에서 한빛의 죽음을 끌어안고 있었다그러나 장례를 경황없이 치뤄 한빛에게 미안했기에 늦었지만 이제라도 한빛을 편안하게 보내고 싶었다그래야 나도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았다내생각만 하고 무작정 신곡2동 성당에서 오순절 추도식을 하고 싶다고 했다참 불편한 부탁이었을 텐데 신부님께서는 아무런 조건 없이 배려해주셨다. 30여년 넘게 학교에 근무해봐서 안다이런 배려가 얼마나 어려운 결정인가를연민이나 측은지심 갖고도 안 된다는 것을 알기에 그저 고마웠다

  한빛 죽음의 진상을 밝히고 회사측의 공식적인 사과를 받은 후 경과 발표 및 추모제-‘이한빛PD를 잊지 않겠습니다.(2017.7.2)를 위한 장소가 다시 논의 되었다또 성당에 부탁드리기에는 염치가 없었다천주교회 신자라서 성당의 구조를 알고 있기에 더 이상의 요구는 드릴 수가 없었다게다가 적절한 공간인 소성전에서는 그날 주임신부님 은경축일 행사가 있었다다른 대안이 없어 우왕좌왕하고 있는 우리에게 주임신부님께서 그럼 대성전에서 하세요.” 하셨다한 번도 아니고 정말 죄송했다내 생애에 이렇게 민폐를 끼치며 살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참 뻔뻔스럽게도 사는구나부끄러웠다그러나 엄마로서 한빛한테 더 이상 미안하지 않고 싶었다이제 정말 편안하게 보내고 싶었다결국 내 개인적인 생각에만 매몰되어 앞뒤 돌아보지 못하고 욕심을 낸 꼴이었는데도 신부님께서 따듯하게 안아주셨다.  추모제에는 약 450여명이 함께 해 주셨다버스 두 대로 서울에서 일부러 와 준 익명의 시민들과 청년들한빛 한솔 친구와 후배들그리고 지인들대성전이 아니었으면 힘들 뻔 했다이 모든 진행상황이 오묘했다한빛 장례를 치루고 무작정 성당문을 두드렸을 때 지푸라기를 잡게 해주신 협력신부님께서 추도사를 해주셨다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주신 주임신부님께서도 뒤에서 지켜보시며 힘을 주셨다덕분에 한빛은 편안하게 떠날 수 있었을 것이다

  노동사목위 J신부님과 L신부님늦게 알아 미안하다며 전화를 주시고 만나자고 하셨다매일 금방 해결될 수 없는 노동관련 사안에 시달리시며 바쁘실 텐데도 전철을 타고 멀리 도봉동까지 오셔서 우리 가족을 위로하셨다한빛을 위해 150단 기도를 하셨다며 그 귀한 묵주를 주신 B신부님가족이 진상규명을 온 몸으로 외쳐도 더욱 견고해지던 괴물 앞에서 아무 희망이 없어 가슴이 터질 것처럼 아팠을 때 횡설수설 면담요청을 받아주신 K신부님과 H신부님누구한테도 말할 수 없는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생명의 끈이었다성전에서 예수님을 바라보며 발버둥 칠 때 말없이 다가오셔서 건네주신 신부님의 신앙서적나에게 신부님이 안 계셨더라면 한빛 없는 세상을 어떻게 살아낼 수 있었을까견디어낼 수 있었을까

  신부님들은 공인이고 나만 생각해 줄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마음은 간절해도 다가가기가 어렵다한 신자의 고통이 아무리 커도 가족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받아주고 해결해줄 수도 없다는 것도 안다그랬기에 나에게는 신부님들이 모두 프란치스코 교황님이셨다. 2014년 교황님이 방한하셨을 때 노란 리본을 다신 것을 보고 중립을 지키기 위해 노란 리본을 떼라고 조언을 하자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엄청난 슬픔 앞에선 중립적이 될 수 없습니다.”라고 하셨다그 어느 누구도 고통과 불의에는 중립적이어서는 안 된다고 말이었다나는 울컥했었다내가 그 슬픔의 대상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그때나는 교황님의 그 말씀을 가슴 뜨겁게 새기고 나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결심했었다

 한빛이 월급을 세월호 등 고통 받는 곳에 기부한 것을 보고 한빛도 같은 생각을 했다는 것을 한빛이 떠난 후 알았다그때 한빛과 이 말을 하면서 서로에게 따듯한 위로를 할 걸세상은 그래도 살 만 하다고 말할 걸이 세상에는 아름다운 생각을 가진 고마운 사람들이 참 많다고 말해줄 걸나는 그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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