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 김혜영
아빠 (2)
남편은 자신이 자랑질을 많이 해서 한빛을 일찍 데려간 거라며 자책하며 울었다. 은근 슬쩍 아니 노골적으로 한빛 자랑을 많이 했다고 했다. 그러나 남들이 뭐라 하든 한빛자랑을 한 남편이 부럽다. 나는 그러질 못했다. 나도 한빛을 자랑하고 싶었다. 노골적으로 동네방네 자랑질하고 싶었다. 겨울방학 근무 중 ‘서울대 합격! 엄마 감사합니다!’ 문자를 받은 순간. 얼마나 기뻤겠는가? 야호!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웬 잘난 척인지 나는 “우리 한빛 서울대 합격했대요”하면서 작은 교무실에 있던 두 분의 선생님께 일상처럼 말했다. 위선을 떨었던 거다. 자축하는 떡을 돌릴 때도 중고병설학교라 한 울타리에 있는 고등학교까지 소문내도 되건만 또 위선을 떨었다. 속으로는 다 돌리고 싶었으면서도 자랑질이라고 할까봐 억눌렀다. 그리고는 다 알아주기를, 축하해주기를 은근히 바랐던 것 같다. 물론 명분은 교사 자녀 중에서도 이번에 수능 본 자녀가 있는데 혹시 그들에게 상처가 되면 안 되지 하는 생각으로 내 마음을 다스렸다.
한빛이 군입대 중에 토익 성적을 말했을 때도 나는 그 점수가 대단한 건지도 몰랐다. 그냥 원하는 성적이 나왔다고 해서 수고했다 하며 지나가는 말로 칭찬만 했다. 나중에 우연히 같이 근무하는 영어교사와 말하다가 그 성적이 대단히 높은 성적이라는 것을 알고 또 아차 했다. 아. 군대에서 시간을 쪼개 힘들게 공부해 얻은 성적이니 얼마나 대단하냐고? 아무한테라도 막 자랑할 걸. 과장해서 칭찬해도 모자랄 텐데 나는 솔직히 한빛이가, 아니 지금 이 시대 청년들이 모두 이렇게 군대에 가서까지 열심히 살아야 하나 하는 안쓰러움에 마음이 더 쓰렸다. 그래서 호들갑을 떨기도 불편했다. 사회적 저명인사도 아니면서 별 걱정을 다하고 정작 한빛에게는 무심했던 나자신이 너무나 후회스럽다. 졸업 전 PD공채에 합격했을 때도 제대 후 얼마나 성실하고 열심히 노력했는가를 알기에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했다. 취준생이란 단어도 생소했고 2월에 대학 졸업하고 3월에 곧바로 교단에 섰던 그 옛날만 생각하고 있던 나였으니 한빛이가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몰라도 너무 몰랐었다. 그저 ‘한빛이 저렇게 노력하고 있는데 좌절하지 않게만 해 주세요’하는 기도 밖에 할 게 없었다. 게다가 세상은 모든 게 다 순리대로 되지도 않고 노력해도 안 될 때가 있다는 것을 알기에 소심한 나는 한빛을 보면서 불안하기만 했다. 그래서 좋은 결과에도 애써 침착한 척 하려고 했던 것 같다.
한빛은 많이 서운했을 것 같다. 자식인데 자랑질 좀 하면 어때서? 엄마의 잘난 척, 이중적인 위선 때문이었다. 그래서 카톡에 있는 한빛 대학졸업식 사진을 볼 때마다 미안하고 미안하다. 엄마 아빠하고만 찍은 조촐한 사진들. 할아버지 할머니 등 대가족들이 왁자지껄 사진 찍는 다른 졸업생을 보면서 요즘 대학 졸업식이 뭐 대단하냐며 에둘러 말했지만 또 아차 했다. 한빛에게 미안했다. 그냥 세상 돌아가는 대로 따라가는 건데 이 무슨 우아함의 극치인가? 쓸쓸한 사진들은 이 순간도 단 한 번밖에 없다는 것을 가슴 서리게 말해주고 있었다. 한빛이 가고 난 후 가슴을 쳤다. 나는 앞으로 즐거울 일이, 축하할 일이, 격려할 일이 무궁무진하게 펼쳐질 줄 알았다.
남편이 그동안 한빛 자랑을 하고 다니는 지는 정말 몰랐다. 한빛이 그런 아빠를 너무 싫어했기 때문이다. 한빛이 대학합격 후 구정을 맞아 시골에 갔을 때였다. 남편은 엄청 한빛을 자랑하고 싶었을 것이다. 나도 밥을 먹지 않아도 배부르다는 말이 무엇인지 실감하며 들떠 있었으니까. 남편 고향은 버스가 하루 두 번 밖에 안 들어오는 아주 시골이었다. 요새 말로 인서울 즉 서울에 있는 대학만 들어가도 다 서울대 들어간 것으로 아는 시골이라고 했다. 마을회관에 가서 남편은 한빛이 서울대 합격했다고 자랑을 했지만 마을 어르신들의 반응은 어땠을지 그려졌다. 남편은 분명 다급해했을 것이고 그런 상황을 한빛은 견디기 싫었을 것이다. 결국 그날 남편과 한빛은 크게 부딪쳤다. 눈치 빠른 나는 한빛 앞에서 절대 한빛 자랑질을 안 했는데 남편은 이후에도 친척모임에서 꼭 한빛이야기를 꺼냈다. 한빛의 표정이 굳어지는 것을 보고 그때서야 멈추곤 했다. 그랬기에 남편이 밖에서 그렇게 한빛 자랑을 하고 다니리라고는 생각도 안했다. 속마음을 억누르고 속이며 위선적이었던 나에 비하면 남편은 정말 순수하고 솔직했던 것이다. 그만큼 한빛을 사랑했고 자랑으로 보배로 여겼다. 한빛이가 너무 자기 자신에게 엄격해서 아빠와 갈등을 빚었지만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한빛도 지금은 아빠를 고마워할 것 같다. 나도 남편에게 고맙다. 한빛이 받아야 했던 당연한 칭찬과 자랑을 남편덕분에 그만큼이라도 받았으니까.
남편은 이렇게 한빛을 자랑스러워하면서도 애정표현을 못했다며 울었다. “한빛은 정말 검색창이야. 뭐든 클릭하면 참 쉽게 설명을 해 주니! 정말 대단해! 참 잘 생겼네! 키가 크니까 어떤 옷을 입어도 멋지네!” 하며 말끝마다 칭찬하는 내가 부러웠다고 했다. 나를 보면서 용기를 내보지만 애정표현이 서투른 자신은 어색해서 한빛에게 특별하게 칭찬 한 번 하지 못한 게 미안하다고 울었다. 그러나 한빛은 알 거다. 아빠가 한빛을 얼마나 자랑스러워 했고 아빠 자신보다 한빛을 더 사랑했는지를.
한빛한테 미처 말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한빛이 태어난 지 몇 개월 안 되었을 때다. 나랑 같이 누워있는데 한빛을 한참 들여다보던 남편이 뜬금없이 “한빛이가 정말 참 잘 생겼지?”했다. “응. 내 아들이라서가 아니고 정말 잘 생겼어. 왜 새삼스레?” 하니 “아니, 우리한테 어떻게 이렇게 잘 생긴 아이가 태어났나 신기해서” 듣다 보니 뭔가 애매모호해 나는 벌떡 일어났다. “그게 무슨 말이야? 왜 우리 한빛이 잘 생기면 안 돼?”하니 “아니, 나는 대머리에 얼굴도 길어 나를 닮을까봐 걱정했거든. 당신도 예쁜 스타일은 아니라서” 하는 게 아닌가? 내가 발끈해서 “내가 어떻다고? 연애할 때 예쁘다고 하지 않았어?” 하며 이불속으로 숨은 남편을 막 두들겼던 적이 있다. 한빛이 있다면 이 상황을 깔깔거리며 이야기할 텐데 이제는 웃음이 사라진 개그일 뿐이다. 나중에 한빛의 아기때 사진을 보니까 다른 아기들과 같은 평범한 아기의 모습이던데 내 눈에도 남편 눈에도 정말 특별했었다. 남편은 이렇게 순진했다.
개그같은 이야기가 또 있다. 한빛이가 서른 살이 되면, 결혼한다고 하면 웃으면서 들려주고 싶었다. 남편과 사귄지 얼마 안 되어 선배교사와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담소도 잘 나누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 계산하는 남편을 기다리며 먼저 나갔는데 선배교사가 낙망스런 표정으로 “대머리에 노총각이잖아. 결혼조건 중 제일 악조건이야. 유전도 되고. 다시 생각해”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나이까지도 외모나 경제적 조건 같은 그런 개념이 없었기에 선배교사의 충고가 이해가 안 되었다. 생각이 비슷하고 만났을 때 가슴이 설레고 서로 사랑하면 결혼하는 줄 알았다. 둘만 있을 때 남편에게 물어보았다. 남편은 어렸을 때 장티푸스를 앓아 머리카락이 많이 빠져서 하며 횡설수설했는데 나는 그것도 곧이 믿었다. 왜 당황하면서 말할까 하면서. 결혼식날 어린 조카가 “이모, 이모부같은 아저씨들이 엄청 많이 오셨어. 머리가 다 똑같아”했을 때 그때서야 현실을 인지했다. 남편은 그때서야 “우리 아들세대에는 안 나타나. 다음 세대에 나타나니까 걱정하지 마” 하며 또 내 눈을 피했다. 한빛에게 이 얘기도 웃으며 해주고 싶었다.
아빠는 그만큼 순진했고 엄마도 그런 것에 의미를 두지 않았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러면 서 결혼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엄마는 절대 시어머니 역할 안 할게. 너만 행복하게 잘 살면 되니까.”하며 다짐하려고 했었다. 한빛한테 지금까지 받은 게 너무나 많고 과분해서 한빛 때문에 내가 행복했기에 나는 한빛의 삶에 절대 부담을 주지 않으리라 결심도 했었다.
아직 이 말을 못 했는데 한빛은 지금 내 곁에 없다.
- 엄마 김혜영
아빠 (2)
남편은 자신이 자랑질을 많이 해서 한빛을 일찍 데려간 거라며 자책하며 울었다. 은근 슬쩍 아니 노골적으로 한빛 자랑을 많이 했다고 했다. 그러나 남들이 뭐라 하든 한빛자랑을 한 남편이 부럽다. 나는 그러질 못했다. 나도 한빛을 자랑하고 싶었다. 노골적으로 동네방네 자랑질하고 싶었다. 겨울방학 근무 중 ‘서울대 합격! 엄마 감사합니다!’ 문자를 받은 순간. 얼마나 기뻤겠는가? 야호!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웬 잘난 척인지 나는 “우리 한빛 서울대 합격했대요”하면서 작은 교무실에 있던 두 분의 선생님께 일상처럼 말했다. 위선을 떨었던 거다. 자축하는 떡을 돌릴 때도 중고병설학교라 한 울타리에 있는 고등학교까지 소문내도 되건만 또 위선을 떨었다. 속으로는 다 돌리고 싶었으면서도 자랑질이라고 할까봐 억눌렀다. 그리고는 다 알아주기를, 축하해주기를 은근히 바랐던 것 같다. 물론 명분은 교사 자녀 중에서도 이번에 수능 본 자녀가 있는데 혹시 그들에게 상처가 되면 안 되지 하는 생각으로 내 마음을 다스렸다.
한빛이 군입대 중에 토익 성적을 말했을 때도 나는 그 점수가 대단한 건지도 몰랐다. 그냥 원하는 성적이 나왔다고 해서 수고했다 하며 지나가는 말로 칭찬만 했다. 나중에 우연히 같이 근무하는 영어교사와 말하다가 그 성적이 대단히 높은 성적이라는 것을 알고 또 아차 했다. 아. 군대에서 시간을 쪼개 힘들게 공부해 얻은 성적이니 얼마나 대단하냐고? 아무한테라도 막 자랑할 걸. 과장해서 칭찬해도 모자랄 텐데 나는 솔직히 한빛이가, 아니 지금 이 시대 청년들이 모두 이렇게 군대에 가서까지 열심히 살아야 하나 하는 안쓰러움에 마음이 더 쓰렸다. 그래서 호들갑을 떨기도 불편했다. 사회적 저명인사도 아니면서 별 걱정을 다하고 정작 한빛에게는 무심했던 나자신이 너무나 후회스럽다. 졸업 전 PD공채에 합격했을 때도 제대 후 얼마나 성실하고 열심히 노력했는가를 알기에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했다. 취준생이란 단어도 생소했고 2월에 대학 졸업하고 3월에 곧바로 교단에 섰던 그 옛날만 생각하고 있던 나였으니 한빛이가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몰라도 너무 몰랐었다. 그저 ‘한빛이 저렇게 노력하고 있는데 좌절하지 않게만 해 주세요’하는 기도 밖에 할 게 없었다. 게다가 세상은 모든 게 다 순리대로 되지도 않고 노력해도 안 될 때가 있다는 것을 알기에 소심한 나는 한빛을 보면서 불안하기만 했다. 그래서 좋은 결과에도 애써 침착한 척 하려고 했던 것 같다.
한빛은 많이 서운했을 것 같다. 자식인데 자랑질 좀 하면 어때서? 엄마의 잘난 척, 이중적인 위선 때문이었다. 그래서 카톡에 있는 한빛 대학졸업식 사진을 볼 때마다 미안하고 미안하다. 엄마 아빠하고만 찍은 조촐한 사진들. 할아버지 할머니 등 대가족들이 왁자지껄 사진 찍는 다른 졸업생을 보면서 요즘 대학 졸업식이 뭐 대단하냐며 에둘러 말했지만 또 아차 했다. 한빛에게 미안했다. 그냥 세상 돌아가는 대로 따라가는 건데 이 무슨 우아함의 극치인가? 쓸쓸한 사진들은 이 순간도 단 한 번밖에 없다는 것을 가슴 서리게 말해주고 있었다. 한빛이 가고 난 후 가슴을 쳤다. 나는 앞으로 즐거울 일이, 축하할 일이, 격려할 일이 무궁무진하게 펼쳐질 줄 알았다.
남편이 그동안 한빛 자랑을 하고 다니는 지는 정말 몰랐다. 한빛이 그런 아빠를 너무 싫어했기 때문이다. 한빛이 대학합격 후 구정을 맞아 시골에 갔을 때였다. 남편은 엄청 한빛을 자랑하고 싶었을 것이다. 나도 밥을 먹지 않아도 배부르다는 말이 무엇인지 실감하며 들떠 있었으니까. 남편 고향은 버스가 하루 두 번 밖에 안 들어오는 아주 시골이었다. 요새 말로 인서울 즉 서울에 있는 대학만 들어가도 다 서울대 들어간 것으로 아는 시골이라고 했다. 마을회관에 가서 남편은 한빛이 서울대 합격했다고 자랑을 했지만 마을 어르신들의 반응은 어땠을지 그려졌다. 남편은 분명 다급해했을 것이고 그런 상황을 한빛은 견디기 싫었을 것이다. 결국 그날 남편과 한빛은 크게 부딪쳤다. 눈치 빠른 나는 한빛 앞에서 절대 한빛 자랑질을 안 했는데 남편은 이후에도 친척모임에서 꼭 한빛이야기를 꺼냈다. 한빛의 표정이 굳어지는 것을 보고 그때서야 멈추곤 했다. 그랬기에 남편이 밖에서 그렇게 한빛 자랑을 하고 다니리라고는 생각도 안했다. 속마음을 억누르고 속이며 위선적이었던 나에 비하면 남편은 정말 순수하고 솔직했던 것이다. 그만큼 한빛을 사랑했고 자랑으로 보배로 여겼다. 한빛이가 너무 자기 자신에게 엄격해서 아빠와 갈등을 빚었지만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한빛도 지금은 아빠를 고마워할 것 같다. 나도 남편에게 고맙다. 한빛이 받아야 했던 당연한 칭찬과 자랑을 남편덕분에 그만큼이라도 받았으니까.
남편은 이렇게 한빛을 자랑스러워하면서도 애정표현을 못했다며 울었다. “한빛은 정말 검색창이야. 뭐든 클릭하면 참 쉽게 설명을 해 주니! 정말 대단해! 참 잘 생겼네! 키가 크니까 어떤 옷을 입어도 멋지네!” 하며 말끝마다 칭찬하는 내가 부러웠다고 했다. 나를 보면서 용기를 내보지만 애정표현이 서투른 자신은 어색해서 한빛에게 특별하게 칭찬 한 번 하지 못한 게 미안하다고 울었다. 그러나 한빛은 알 거다. 아빠가 한빛을 얼마나 자랑스러워 했고 아빠 자신보다 한빛을 더 사랑했는지를.
한빛한테 미처 말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한빛이 태어난 지 몇 개월 안 되었을 때다. 나랑 같이 누워있는데 한빛을 한참 들여다보던 남편이 뜬금없이 “한빛이가 정말 참 잘 생겼지?”했다. “응. 내 아들이라서가 아니고 정말 잘 생겼어. 왜 새삼스레?” 하니 “아니, 우리한테 어떻게 이렇게 잘 생긴 아이가 태어났나 신기해서” 듣다 보니 뭔가 애매모호해 나는 벌떡 일어났다. “그게 무슨 말이야? 왜 우리 한빛이 잘 생기면 안 돼?”하니 “아니, 나는 대머리에 얼굴도 길어 나를 닮을까봐 걱정했거든. 당신도 예쁜 스타일은 아니라서” 하는 게 아닌가? 내가 발끈해서 “내가 어떻다고? 연애할 때 예쁘다고 하지 않았어?” 하며 이불속으로 숨은 남편을 막 두들겼던 적이 있다. 한빛이 있다면 이 상황을 깔깔거리며 이야기할 텐데 이제는 웃음이 사라진 개그일 뿐이다. 나중에 한빛의 아기때 사진을 보니까 다른 아기들과 같은 평범한 아기의 모습이던데 내 눈에도 남편 눈에도 정말 특별했었다. 남편은 이렇게 순진했다.
개그같은 이야기가 또 있다. 한빛이가 서른 살이 되면, 결혼한다고 하면 웃으면서 들려주고 싶었다. 남편과 사귄지 얼마 안 되어 선배교사와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담소도 잘 나누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 계산하는 남편을 기다리며 먼저 나갔는데 선배교사가 낙망스런 표정으로 “대머리에 노총각이잖아. 결혼조건 중 제일 악조건이야. 유전도 되고. 다시 생각해”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나이까지도 외모나 경제적 조건 같은 그런 개념이 없었기에 선배교사의 충고가 이해가 안 되었다. 생각이 비슷하고 만났을 때 가슴이 설레고 서로 사랑하면 결혼하는 줄 알았다. 둘만 있을 때 남편에게 물어보았다. 남편은 어렸을 때 장티푸스를 앓아 머리카락이 많이 빠져서 하며 횡설수설했는데 나는 그것도 곧이 믿었다. 왜 당황하면서 말할까 하면서. 결혼식날 어린 조카가 “이모, 이모부같은 아저씨들이 엄청 많이 오셨어. 머리가 다 똑같아”했을 때 그때서야 현실을 인지했다. 남편은 그때서야 “우리 아들세대에는 안 나타나. 다음 세대에 나타나니까 걱정하지 마” 하며 또 내 눈을 피했다. 한빛에게 이 얘기도 웃으며 해주고 싶었다.
아빠는 그만큼 순진했고 엄마도 그런 것에 의미를 두지 않았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러면 서 결혼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엄마는 절대 시어머니 역할 안 할게. 너만 행복하게 잘 살면 되니까.”하며 다짐하려고 했었다. 한빛한테 지금까지 받은 게 너무나 많고 과분해서 한빛 때문에 내가 행복했기에 나는 한빛의 삶에 절대 부담을 주지 않으리라 결심도 했었다.
아직 이 말을 못 했는데 한빛은 지금 내 곁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