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아빠 (1)

관리자
2018-09-29
조회수 1106

- 엄마 김혜영


아빠 (1)

  


  한빛아 2018년 8월 30일 아빠 정년퇴임하셨어북서울중학교를 마지막으로 35년간의 교직생활을 마무리하셨단다아빠는 옛날부터 먼 훗날 정년퇴임하게 되면 퇴임식보다는 마지막 수업을 하고 싶다고 하셨었지재학생졸업생지인들을 초대해서 마지막 수업을 함께 하고 싶다고물론 엄마와 한빛 한솔 두 아들한테도 아빠의 마지막 수업을 꼭 보여주고 싶다고 하셨어사물놀이로 신명나게 수업을 열고 축제같이 교사생활을 정리하시고 싶다고 하셨단다그러나 너가 없는 지금아빠는 제대로 수업을 마무리 하셨을까얼마나 힘드셨을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파엄마도 한솔이도 아빠의 마지막 수업에 가지 않았어가고 싶었고 가야 한다고 당위성을 부여하면서도 울음을 주체하지 못할 것 같아 엄마는 가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렀어아빠는 마지막 수업 주제를 미래사회의 삶과 직업의 변화로 하셨대. ‘미래를 말할 때마다 아빠는 그 속에서 너를 만나기에 더 힘들다고 하셨는데

  아빠는 퇴임하시면서 <촛불시대혁신교육을 말하다. - 미완의 교육 실천 35못다 한 이야기책을 내셨어여는 글에 지금까지 살아온 삶과 이야기는 행복한 사회를 꿈꾸다가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 간 나의 희망이었던 아들 한빛에게 바친다고 쓰셨어너가 있었으면 책내용에 대해 명쾌한 사전 검증을 거칠 수 있었고 아빠한테도 든든한 격려가 되었을 텐데 너의 빈자리가 이렇게 크구나

  한빛아 너랑 아빠얘기를 하고 싶다그리고 아빠에 대해 너한테 못다 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남편은 아들을 자기 자신보다 더 사랑했다난 그 사실을 인정한다한빛이 떠난 후 남편은 6개월간 술과 수면제가 있어야 잠을 잘 수 있었다고 했다나는 이 사실을 한참 후에 알고 너무나 미안했다남편은 내 앞에서는 울지 않으려고 애썼다남편은 나보다 여린 면도 많고 외로움도 많이 타기에 감정을 억제하고 속이고 있다는 것을 짐작은 했었다순간 순간 위태위태한 남편을 보고 있는 나도 불안했다그래서 남편이 퇴근 후 회식이나 술자리가 있다고 하면 반갑기도 했다남편도 풀어야 하고 뱉어내야 하니까 고맙기도 했다그래도 나는 성당에 가서 예수님께 대들고 소리치고 울면서 한빛을 찾지만 남편은 그러지도 못했다.  견디기 어려운 통증을 술로 푸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천성적으로 어울리는 성격이니 이렇게 해서라도 속마음을 덜어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랬다

  늦게 들어오는 현관문 소리에 잠이 깨면 남편은 방문을 열고 내가 잠들었는지를 확인하고 한빛 방에 들어간다곧이어 한빛을 부르며 오열하는 소리가 들린다사람의 울음소리가 아니라 짐승의 절규아니 괴성이다남편의 애간장을 녹이는 고통을 들으며 나도 이불을 뒤집어 쓰고 엉엉 울었다나는 남편이 술이나 수면제를 먹어야 잠든다는 것을 한동안 몰랐다남편은 매일 내가 편안하게 잠들었는지 확인하고 나한테서 쌔근쌔근 숨소리가 들리면 가슴을 쓸어내리고 식탁에서 홀로 술을 먹고 수면제를 먹었다고 했다나중에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하는 말을 듣고 알았다결국 남편은 간에 무리가 왔고 간농양으로 2개월 입원치료를 받았다상황이 위급해져 응급실에서 중환자실로 옮겨갈 때 남편은 혼신의 힘을 다해 나한테 말했다한빛때문에 힘든데 자기까지 힘들게 해서 미안하다고 힘겹게 말하며 굵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남편의 뜻하지 않은 입원으로 며칠 후 남편이 나가기로 했던 2017년 4월 18한빛의 죽음을 처음으로 공론화하는 기자회견에 내가 유족 대표로 나서야 했다

  남편은 한빛이 태어나자 출산은 엄마의 몫이지만 육아는 아빠의 몫이라고 했다. 1989년 즈음에는 신데렐라콤플렉스라는 단어가 얘기되고 또 하나의 문화’ 같은 여성평등문화에 대한 사회활동이 일어나던 시기였다여성평등에 대해 특별한 의식이 없던 평범한 나는 이런 흐름은 일부 진보적인 여성들의 특별한 실천 운동이려니 했다이런 것을 페미니즘이라고 하는 것인지는 지금도 나는 잘 모른다페미니즘이란 말을 가까이서 접한 것은 한빛 대학 1학년 때였다한빛 책상 위에 있던 책들을 보고 한빛이가 페미니즘에 대해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페미니즘이 이렇게 공부까지 해야 하는 것인가 하며 자료집을 훑어보니 내용이 너무 어려웠다페미니즘이 이렇게 어려운 거니하면서 이론을 이렇게 힘들게 공부하느니 아빠의 삶을 학습하는 게 더 낫겠다 하며 말했던 기억이 난다

  한빛이 태어나던 당시 나는 교사로서 나름대로 만족하며 살고 있었기에 육아문제와 관련한 남편의 역할을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아이는 당연히 엄마가 키워야 한다고도 생각했다그런데 남편은 육아 문제에 정말 지극 정성을 다했다솔직히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는 한빛의 똥기저귀를 빨래한 기억이 거의 없다임신하면서 이상하게 똥이나 음식물 찌꺼기에 민감해지기도 했지만 남편이 알아서 척척 해주었기 때문이다한빛이 응가를 하면 나는 한빛아빠한빛 똥 싸” 하며 호들갑을 떨었다그러면 남편은 하던 일을 멈추고 얼른 와서 주저없이 똥기저귀를 갈았다나보다 더 능숙하고 자상하게 한빛의 응가를 치우는 모습은 가끔 나의 눈시울을 뜨겁게 하기도 했다남편이 한빛 엉덩이를 따뜻한 물로 다 씻기고 나면 그때서야 나는 요밑에 묻어두었던 따뜻한 새 기저귀를 갈아주고 마치 내가 다 한 것처럼 한빛에게 뽀뽀를 했다그리고 목욕탕에 가보면 남편은 어느 새 똥을 변기에 버린 후 기저귀를 애벌 빨래해서 뜨거운 물에 담가 놓았다내가 할 일은 그저 비누로 쓱쓱 문질러 행구기만 하면 됐다너무 쉬운 일이었다이렇게 남편을 부려먹어도 되나 하며 속으로 뜨끔하기도 했지만 남편에게는 일상처럼 정말 자연스러웠다나에게는 과분한 남편이라고 생각했고 존경스러웠다한빛한테 엄마는 아빠를 사랑하기도 했지만 존경해서 결혼했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존경의 구체적인 이야기를 말해주지는 못했다앞으로 시간이 많으니까 천천히 상황이 될 때 이야기해줘야지 했다한빛이 결혼할 나이가 되거나 아기가 생기면 꼭 그때 말하려고 했었다

  육아뿐만 아니라 남편은 집안일 흔히 말하는 가사노동도 일상적으로 했다친정어머니도 남편 잘 만난(?) 딸을 부러워하고 감탄할 정도였다이렇게 가정적인 남편은 한빛과 한솔한테도 좋은 아빠였다나는 이런 모든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그런데 남편 지인들이 1950년대 후반에 태어난 남편 세대나 비슷한 나이의 정서에서는 매우 진보적이라고 해서 남편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았다한빛을 키운 8할은 한빛 아빠임을 나는 인정한다

  독서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고 자란 자녀들은 강요하지 않아도 저절로 책을 읽는다고 한다우리 집은 아빠가 집안일을 스스럼없이 하니까 두 아들도 설거지 같은 것을 일상적으로 하려니 했는데 꼭 그렇지는 않았다일부러 일을 나누면서 부엌에 자주 들어가야 나중에 결혼해서도 힘들지 않아집안일도 습관이 안 되면 못 해아빠 보면서 느끼는 게 많지 않니?” 하고 가르쳤지만 두 아들은 의미있게 받아들이는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한빛이 대학생이 되고 도봉동에 오면 집안일을 잘 거들었다일요일이면 나는 일찍 성당에 가서 1시쯤 집에 오기에 해야 할 일이 항상 밀려 있었다세탁기를 우선 돌리면서 청소를 시작해야지 하고 부랴부랴 집에 들어서면 한빛이가 베란다에서 빨래를 널고 있을 때가 많았다우리 집에 들렀던 성당 교우가 그 모습을 보고 감탄하며 칭찬했다한빛이가 까칠하고 학구적인 줄 알았는데 키가 큰 청년이 빨래를 하나하나 널고 있는 모습이 참 자연스러워 보인다고 했다한빛이가 1학년때 페미니즘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서 많이 실천적으로 바뀌기도 했겠지만 아빠를 보고 자란 덕분이 아닐까 한다

  어제는 베란다에서 빨래를 널며 한참을 울었다한빛은 정말 착한 나의 아들이었다아니 한빛은 한빛을 자신보다 더 끔찍하게 사랑했던 아빠의 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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