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도고 2층집

관리자
2018-08-20
조회수 1131

- 엄마 김혜영


도고 2층집

  


  여름 방학을 맞아 도고에 왔다일주일을 머물 수 있어 여유가 있다보니 저절로 느긋해진다올여름은 111년만의 폭염이라고 한다평소 더위엔 강해서 에어컨 없이도 잘 살았는데 이번 더위는 나도 무섭다시골은 서울보다 났겠지 하면서 단숨에 내려왔는데 이곳도 역시 숨쉬기도 힘들 만큼 푹푹 찐다결국 한낮에는 책 한권 달랑 들고 도고온천지역의 유일한 카페로 피신갈 수밖에 없었다카페 창밖으로는 온천 사우나수영장 표지판이 걸려 있는 콘도가 보인다옆 스파에서는 여름 물놀이를 즐기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신나는 음악에 섞여 관광지라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한다평소에는 고속도로를 지나가다 보면 흔하게 만나는 농촌마을이라고만 생각했었다

  4년전 6월 여름밤자꾸 어둠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가도 가도 끝이 없을 것 같은 시골길이건 아닌데... 순간 잘못된 선택이었나와락 겁이 났다다왔다는 남편의 말을 듣고 뜨악해하며 차문을 열었는데 갑작스런 개구리 울음소리가 한꺼번에 몰려왔다개굴개굴 개굴개굴... 왁자지껄야단법석?이란 말이 딱 맞을 것 같았다정신이 번쩍 났다아니 가슴이 뛰었다이 소리얼마나 오랜만인가하늘을 보니 까만 밤하늘에는 별이 반짝이고 있었고 둥글고 흰 달이 구름 속을 유유히 지나가고 있었다어렸을 때 마당 평상에서 많이 보았던 그 여름밤 풍경이었다여기 도고 신유리에 있는 우리집과의 첫 만남이었다

  처음 이 집을 보고 무조건 마음이 간 것은 2층집이기 때문이었다어린 시절 읍내에 하나밖에 없던 2층집에 로망을 가졌던 것처럼 손자손녀들을 염두에 두었었다성급한 욕심이라는 핀잔을 받았지만 솔직한 꿈이었다스파를 보면서도 한빛 한솔이가 결혼해 아이들이 놀러오면 이곳에 꼭 데리고 올 거라고 약속했다그런 나를 보며 한빛은 별 대꾸 없이 웃었던 것 같다무슨 의미의 웃음일까 궁금했지만 나중에도 시간 많으니까 그때 물어봐야지 하고 미뤘다혼자 꿈꾸고 혼자 설렜다

도고에 우리집을 갖게 된 게 우연은 아닌 것 같다. ‘도고하면 도고온천을 떠올리게 되는데 도고온천을 처음 안 것은 한빛이 4살 때쯤이다우리 가족이 처음으로 승용차로 가족여행을 갔었기에 더욱 또렷하게 남아있다물론 우리 자가용은 아니었지만 최초의 승용차 여행이었기에 한빛 한솔은 참 신나했었다나는 한빛과 어린이집을 같이 다니던 J의 엄마와 같은 학교에 근무했었다우연히 겨울방학에 온양 온천과 대천으로 여행간다고 하니 자기네는 도고온천에 간다고 했다이 겨울에 어린 아이 둘을 데리고 어떻게 가냐며 온양까지 같이 가자고 했다당시 해직교사인 한빛 아빠에 대한 미안함이었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염치없이 그 제안을 덥썩 받았다궁색한 변명이지만 어쩜 여행비 절약도 고려했던 것 같다

차는 소형차 프라이드였다. J의 아빠가 운전하고 그쪽 세 식구우리 네 식구모두 일곱 명이 작은 차에 탔다겨울이라 옷은 두껍고 승용차로 간다고 짐을 많이 챙겨 여행가방을 꾸역꾸역 쑤셔 넣어야 했다지금 생각해도 참 미안하고 무안하다프라이드가 어느 정도 크기인 줄 알았더라면 그렇게 무리하지 않았을 것이다자가용을 타는 것에 대해 두 아이가 너무 좋아하니까 다른 생각을 미처 못 했다불편했을 텐데 기꺼이 온양까지 함께 해준 J부모님이 고맙다

  그때 도고온천은 온양에서 조금 더 간다는 것을 알았다원래는 온양이 온천으로 유명했는데 도고온천이 생기면서 도고온천이 신혼여행지로 각광을 받아 호텔도 많고 고급스럽게 개발되고 있다고 했다그런데 대중교통으로는 불편하다고 했다그때 두 아이에게 나중에 우리도 자가용을 가지게 되면 꼭 도고에 오자 하면서 온양에서 내렸다

  온양에서 온천욕을 하고 버스로 민속박물관 등 여러 곳을 갔다. 2살배기 한솔은 두꺼운 겨울 코트때문에 뒤뚱뒤뚱 걷기도 힘들어 남편이 거의 안고 다녔다한빛은 4살인데도 멀리 여행 온 것에 신나서 씩씩하게 걸어 다녔다장항선을 타고 대천 겨울바다로 갔다바닷바람이 매서웠다다시는 섣불리 겨울여행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무엇보다도 제일 힘들었던 것은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이었다시골버스 대합실은 무척 추웠고 어둡고 지저분해서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밖으로 나와도 버스가 시간을 지키지 않아 마냥 추위에 떨며 기다려야 했다두 아이는 점점 얼어갔고 칭얼대기 시작했다어린 아이들에게 대중교통을 이용한 겨울여행은 정말 고행이었다엄마의 욕심에 미안했다자가용을 타고 온 가족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대천버스정류장에서 우연히 친정이 대천인 동료교사 가족을 만났다그 가족도 겨울바다를 보러 나왔는데 우리 가족을 보고 무척 놀라는 눈치였다저 멀리 의정부에서 여기까지 어떻게 왔냐며 정말 대단하다고 했다우리는 2, 4살 아이들을 데리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여행하는 걸 일상으로 알았다장항선을 타고 서울로 돌아오는데 도고온천역이 있었다그런 도고였다

  퇴임 후시골에 살고 싶어 남편은 몇 곳을 돌아보다가 이 집을 보았다이곳과 아무 연고도 없었지만 아무런 망설임도 없었단다. 2층집이고 텃밭이 있는 것도 좋아 쉽게 빨리 결정할 수 있었다고 했다도고온천역도 있었다그 옛날 아이들과 여행을 왔을 때도 분명 이곳에서 기차가 섰을 것이다하긴 지금도 그렇지만 온천지역을 가려면 역에서 내려 조금 더 가야해서 도고온천은 자가용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겠다

  내가 그때 도고온천을 갈 수 없다는 것 때문에 너무 그림을 크게 그렸을까지금의 도고온천은 예전에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너무 다르다온천문화가 쇠락하기도 했지만 지극히 평범한 시골 마을이었다거미줄이 어수선한 문닫은 몇몇 콘도와 호텔 등이 한때 화려했던 성수기를 짐작하게 할 뿐 그렇게 막연히 부러워했던 도고온천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는 지금의 도고가 좋다마을 사람들을 일상적으로 만날 수 있고 약간은 한가한 그래서 넉넉한 온천욕장이 관광지 같지 않아 오히려 좋다온천탕 큰 창으로는 너른 들판이 펼쳐있다여름에는 온통 초록들판이 창을 가득 채운다가을에는 노랗게 익어가는 벼이삭 위로 바람이 머물다가는 풍경이 스크린 위로 펼쳐지듯 그려진다또 언덕위에 있는 도고 성당 뜰에서는 보는 일몰 역시 장관이다붉은 주황색의 크고 동그란 저녁해가 천천히 지평선 너머로 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겸손해진다아니 위로를 받는다옛날에도 이처럼 화려함과는 다른 그 무엇이 있었겠지 상상해 본다그 자연스러운 소박함이 도고온천을 빛나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퇴임 후 시골에서 살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솔직히 가장 큰 이유는 한빛 한솔이의 휴식을 위한 것이었다그리고 손자들이 생기면 잔디밭에 그네도 만들어 주고 흙에서 놀게 하고 싶었다한솔이가 추도식때 형도 저도 비혼주의자였다고 할 때 엄마인 나는 두 아이와 그런 얘기를 한 번도 한 적이 없어 충격이 컸었다요즘 젊은이들이 비혼주의자가 많다고 하지만 나는 내 아이들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줄은 몰랐다나이 먹으면 당연히 결혼하고 자녀 키우며 사는 것이 아닌가했다

그래서 남편을 닥달해 밭 한쪽에 과일나무를 심었다남편은 채소농사를 지으며 먹거리를 수확하자고 했지만 나는 아니었다몇 년 후 이건 앵두고 이 큰 나무는 살구나무야저것은 여름에 시원한 쥬스를 만드는 매실이고 이 예쁜 덩쿨은 포도야 하면서 손자손녀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열매를 맺으려면 시간이 지나야하기에 첫 해부터 과일나무를 열심히 심었다

  그러나 나무가 자라면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것을 볼 때마다 많이 슬프다한빛이가 무척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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