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신앙에 관하여

관리자
2018-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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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 김혜영


신앙에 관하여

  


  한빛은 유아세례를 받았다. 세례명은 프란치스코이다. 초등학교 4학년때 첫영성체를 하고 6학년까지 복사를 했다. 한빛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부모가 선택한 신앙이었지만 스스럼없이 따라주어 기특했고 고마웠다. 지금은 자녀가 복사를 하려면 부모가 한 달간 새벽미사를 같이 다녀야 하고 함께 준비하는 과정이 매우 엄격하다. 나는 쉽게 복사엄마가 되었던 것이다. 아들이 복사가 되기를 바랐던 것도 신앙심을 키우고자 하는 기대도 있었겠지만 솔직히 나의 욕심도 있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아들이 복사가 된 것이 마치 내 노력인 양 어깨에 힘도 가졌다. 한빛이 복사서는 날이면 미사보다는 자랑스러운 내 아들의 저 거룩한 모습을 다른 신자들이 알아주기를 은근히 기대했다. 이런 나의 허욕을 한빛도 눈치챘을까?

 중2가 되면서 한빛이가 성당가는 것을 피하기 시작했다. 억지로 데려 가면 미사시간 내내 얼굴이 굳어 있었다. 나도 불편했다. 신앙이 강요로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내가 포기하기로 했다. 사춘기에 신앙이 참 큰 도움이 되는데 안타까웠고  그렇게 신앙생활을 잘 했던 아이가 왜 이렇게 변했을까 속상했다. 꼭 물어보고 싶었는데 시간이 많을 줄 알았다.  

 한빛이 초등학생 때. 추운 겨울 새벽미사를 갈 때도 나는 거의 함께 하지 못했다. 아니 안 했다는 말이 맞다. 나는 아침잠이 너무 많았다. 저녁에는 내일 같이 가자고 자신있게 말한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다. 아니 일어나기가 싫었다. 몸이 아픈 것 같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아픈 척을 했다. 한빛은 혼자 일어나 칠흑같은 새벽속으로 뛰어가곤 했었다. 그래도 마음이 불편해 베란다에서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어린 한빛을 보면서 ‘어이구 이러고도 내가 엄마냐? 무슨 복사엄마가 이런가?’ 미안하고 두려웠다. 한빛아 너는 어려서 잘 몰랐겠지만 엄마가 이랬단다. 미안하다는 말도 못했구나. 대견하고 기특했다는 칭찬도 못했고. 

  


기도의 힘

  


 졸업 한 학기를 남기고 큰애가 공군에 입대했다. 훈련소에 가보니 모두들 솜털이 보송보송하고 앳된데 우리 아이만 늙어 보여(?) 안쓰러웠다. 

 고등학교때 방황을 했지만 다행히 원하던 대학에 가 한시름 놓았는데 아프니까 청춘인지 대학 때 두 번이나 휴학을 했다. 그때마다 군대라도 가거나 사춘기때부터 안 나갔지만 성당이라도 열심히 다니면 좋으련만 강요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수료식 며칠 전. 아들한테서 전화가 왔다. “엄마. 저 오늘 미사드렸어요. 고해성사도 했고요.” 흥분된 아들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주일 종교참여시간에 성당에 갔는데 성가소리를 듣는 순간 감정이 복받치며 눈물이 막 쏟아지더란다. 퍼뜩 고해성사가 보고 싶었는데 성사안내를 해서 고해소에 들어갔는데 가슴이 벅차 아무 말도 못하겠더란다. 엄마가 고등학교 때부터 자기를 위해 기도하는 것을 몰래 보았다며 띄엄띄엄 고백하니 신부님께서 “엄마한테 미사드렸다고 전화하라”는 보석을 주셨다는 것이었다. 

 난 솔직히 신앙심이 깊지도 못하고 기도생활도 열심한 편이 못 된다. 그러나 아들이 방황할 때 불안하고 안타까운데 엄마로서 해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매달리는 심정으로 묵주기도를 시작했었다. 성모님 앞에서 무릎 꿇고 경건하게 하지도 못했는데 내 기도를 들어주셨다. 죄송했지만 너무 기뻤다. 우리를 주관하고 계시는 분은 바로 예수님이셨다. 내가 한 일은 주님의 뜻을 이루게 해 주십사고 기도하며 매달렸을 뿐이었다. 기도의 힘을 나도 체험했다. (2013.8 소금항아리 생활성서 별책부록 )

  


 공군에 입대해 성서공부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나는 정말 기뻤다. 나도 <창세기>를 공부했었기에 한빛과 긴 통화를 했고 격려했다. 평일 저녁에 부대 성당에 가서 성서공부한다고 했다. 저녁 자유시간에 일부러 시간을 쪼개 성서공부를 한다는 것이 대단했다. 성서공부과제는 온통 소감문 위주라 시간도 많이 내야 하고 글쓰기가 많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 기특했다.    

 역시 그 어린 시절 다져진 신앙이 한빛을 다시 깨웠구나 생각했다. 5명이 함께 성서공부를 한다고 했다. 자신이 고참이라 후배들을 잘 추수려 끝까지 낙오자없이 잘 했다고 했다. 마지막에 연수가 문제가 되었다고 했다. 성서공부가 끝나면 수원교구 주최 4박5일 창세기 연수를 해야 하는데 본인의 휴가기간에 해야 해서 모두들 갈등이 크다고 했다. 군인들에게 휴가가 얼마나 귀한지 알기에 고민이 이해됐다. 한빛도 고민하고 있길래 “사회에 나가면 여건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기회가 될 때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오히려 제일 멋진 휴가가 될지도 모르고 제일 큰 제대 선물이 될지도 몰라” 하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강요는 안 했다. 한빛의 선택을 항상 존중했으니까. 결국 한빛은 혼자 연수에 참석했다. 고마웠다. 정말 나무랄 데 없는 아들이었다. 제대 후 성서노트를 보니 참 열심히 사색하고 공부한 흔적이 느껴졌다. 성서를 공부한 만큼 신앙심이 커진 것은 아니겠지만 한빛의 노력이 존경스러웠다. 자신의 신앙을 고민하며 몇 권의 대학노트를 가득 채운 한빛의 소감문 한 줄 한 줄이 가슴 뜨겁게 다가왔다.

 한빛의 장례를 치룬 후. 편지 한 통을 받았다. 한빛이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창세기 연수 과정에 1년 후의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는 시간이 있었나보다. 낯익은 한빛 글씨체를 본 순간 엉엉 울었다. 신앙에 대한 한빛의 생각을 읽었다. 이렇게 잘 살려고 노력했는데 왜 그렇게 서둘러 갔을까? 그분은 한빛을 붙들어 줄 수는 없었을까? 

 한빛은 도봉동 집에 오면 시간을 쪼개 미사참례도 하려고 했다. 나는 성가대라서 일찍 성당을 갔는데 한빛은 그때 항상 곤하게 자고 있었다. 미사에 늦지 말아야 하는데 혼자 깰 수 있겠니하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푹 잤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못 깨면 어쩔 수 없지 뭐 했다. 그런데 주일미사가 끝나면 한빛은 “엄마”하며 내 자리를 찾아오곤 했었다. 미사참례를 한 것이다. 그 의지가 기특했다. 아름다운 마음이 고마웠다. 

 성전에서 본 한빛은 또다른 멋진 한빛이었다. 깔끔하고 단정한 옷차림의 키가 큰, 군대도 갔다 온 한빛이가 “엄마”하고 부를 때 정말 평화로웠다. 지금도 미사가 끝나면 뒤에서 “엄마”하고 한빛이가 부를 것 같아 금방 못 일어난다. 한빛이가 더 이상 날 찾아오지 않을거라는 것을 깨닫고는 가슴이 미어진다. 

 그래. 나는 한빛을 가슴에 묻었지만 분명 하늘은 한빛을 가슴에 품어주었을 거야. 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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