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뻐꾸기 시계

관리자
2018-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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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 김혜영


뻐꾸기 시계

  


 신유리집 2층 작은 마루에는 뻐꾸기시계가 있다. 시간과 관계없이 아무 때나 뻐꾸기가 우는 작은 시계이다. 소리 역시 작지만 마치 먼 산에서 진짜 뻐꾸기가 우는 것 같다. 신유리를 방문한 지인들이 “어머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나요?” 하면 “아니여요. 저 시계 틀려요. 아무 때나 울어요.”하고 말한다. 맞지도 않는 시계를 왜 걸어놓았냐고 의아해하는 그들에게 “골동품같아 집 분위기를 돋보이게 하려고요” 하며 둘러댄다.

 1990년대 초반 대부분의 아파트에는 뻐꾸기시계가 있었다. 분당, 일산 신도시 입주가 맞물려서인가 여하튼 집들이선물로 당시 인기가 가장 높았다. 새 아파트 입주자들도 넓은 거실에 우선 순위로 장식하고 싶어하는 것이 큰 뻐꾸기 벽걸이시계였다. 어쩌다 정시에 아파트계단을 올라갈 때면 울려 퍼지는 뻐꾸기시계 소리가 무슨 돌림노래처럼 들리곤 했다. 

 우리도 94년도에 의정부에 처음 아파트를 장만했다. 남편 해직기간 동안 어렵게 마련한 집이어서 그 자체만으로도 감격스러워 집들이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인가 우리집만 그 흔한 뻐꾸기시계가 없었다. 기존에 사용하던 시계가 버젓이 있어 실용성과 경제성면에서도 필요성을 못 느꼈다. 

 그런데 5살, 7살인 한빛과 한솔이를 옆집에 맡겨야 할 때가 있었다. 딸만 셋인 옆집에서 두 남자아이가 천방지축 뛰어놀아 정신이 없지는 않았을까 아래층에서 올라오지는 않았을까 항상 미안했다. 옆집 엄마가 칭찬인지 안쓰러움인지 애들이 시간관념이 꽤 철저하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방에서 놀다가도 태권도 학원 갈 시간이 되었나 수시로 거실로 나와 시간을 확인한다는 것이었다. “엄마가 직장에 나가도 걱정이 안 되시겠어요. 저렇게 아이들 본인이 알아서 시간 관리를 잘 하니. 습관이 된 것 같아요. 우리 아이들은 일일이 시간을 챙겨줘야 하는데.” 했다. 아이들이 어린 데도 자기주도적인 게 참 기특하고 부럽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빛이네도 뻐꾸기시계 사야겠어요 한다. 두 아이가 뻐꾸기가 울면 놀던 것도 멈추고 잽싸게 거실로 나와 뻐꾸기시계 앞에 서 있는다는 것이었다. 어떤 때는 뻐꾸기가 나올 시간을 누가 더 정확히 맞추나 시합도 한다는 것이었다. 뻐꾸기가 나오길 기다리며 카운트 다운을 하기도 하고 뻐꾸기가 나오면 박수치며 같이 호흡을 맞춰 뻐꾹뻐꾹 흉내낸다는 것이었다. 뻐꾸기한테 꾸벅꾸벅 같이 인사하며 뻐꾸기시계를 무척 신기해하고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뻐꾸기시계가 일상적이었던 세 딸아이에게는 한빛 한솔의 그 모습이 오히려 새롭고 이상하게 보여졌다고 했다. 

 가격을 물어보니 20만원이 넘는다고 했다. 깜짝 놀랐다. 어느 집에나 흔하게 있는 뻐꾸기시계가 그렇게 고가인 줄 몰랐다. 이것도 유행일텐데 이제와서 흉내내듯이 뻐꾸기 시계를 달아야 하나? 그러나 두 아이가 그렇게 좋아한다니까 마음에 걸렸다. 한빛이가 혹시 뻐꾸기시계를 사 달라고 했는데 내가 무시하지는 않았을까? 아이들 정서를 읽는데 무심했던 건 아닐까? 시계는 정확하게 맞기만 하면 된다는 효용성과 경제적 논리를 앞세웠던 건 아닐까? 

 남편과 남대문시장에 갔다. 여전히 뻐꾸기시계가 많았다. 작지만 원목으로 된 예쁜 뻐꾸기시계를 3만원인가에 샀다. 크지도 않고 고급원목으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두 아이는 뻐꾸기시계가 있다는 것에 신나했다. 아이들이 좋아하니 나도 행복했고 거실에 뻐꾸기소리가 들리니 나름대로 숲 속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여고시절 학교 숲에서 들었던 뻐꾸기소리 같았다. 학교 뒤에는 논이 길게 펼쳐 있었다. 토요일 오후. 중간고사를 끝내고 집에 가다가 친구와 숲에 갔었다. 초여름 모내기 즈음이었다. 농부아저씨와 황소가 논을 가는 사이로 뻐꾸기소리가 들렸었다. 이랴~하며 철썩 황소 등을 치면 느릿느릿 황소가 움직였다. 황소걸음을 따라 찰랑거리던 논물소리와 앞산에서 들리던 뻐꾸기소리가 참 조화로웠다. 고즈넉하면서도 아늑했다. 그 아련한 기억을 뻐꾸기시계를 샀을 때 한빛 한솔에게도 말했었는데 두 아이는 이해하지 못 했겠지. 

 시계는 금방 고장 났고 약을 바꾸면 처음에는 잘 가다가도 매일 조금씩 늦어졌다. 뻐꾸기소리도 자기 마음대로 울렸고 태엽 풀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답답하고 힘겹게 돌아갔다. 나중에는 시계문도 안 열렸고 뻐꾸기도 아예 안 나왔다. 한빛 한솔도 커가면서 뻐꾸기시계에 별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래도 이사를 다니면서 버리지 않았다. 신유리에도 일착으로 가져와 2층 마루에 걸었다. 남편은 시간도 안 맞는데 버리자고 했지만 싫다고 했다. 

 두 아이와 함께 한 어린 시절의 추억이 이 뻐꾸기시계에만 있는 것도 아니건만 난 간직하고 싶었다. 뻐꾸기가 울면 거실로 뛰어 나와 뻐꾸기가 나오고 들어가는 호흡에 맞춰 박수를 치며 같이 뻐꾹~뻐꾹 했다던 풍경이 나에게는 그리 아름다운 기억은 아니다. 조금은 서글프고 안쓰럽다. 나는 직장생활을 하는 것에 대해 당연하게 생각했었다. 어린 시절부터 교사가 되고 싶었기에 결혼해서도 학교생활에 만족하며 참 행복했다. 두 아이가 자립적이라는 말이 칭찬일 수도 있으나 엄마가 직장에 나갔기 때문에 어린 두 아이가 스스로 체득해야만 했을 의무감 같아 마음이 스산하다. 육아휴직 제도가 나중에 생기긴 했지만 두 아이의 어린 시절 따뜻하게 엄마로서 챙겨주지 못한 것에 마음이 많이 아프다. 그래서 나름대로 이 미안함과 두 아이가 씩씩하게 잘 자란 고마운 시간을 나는 간직하고 싶었던 것이다. 고장난 뻐꾸기시계를 버릴 수 없는 나의 애착이다. 

오늘도 신유리에서는 시간과 상관없이 뻐꾸기가 운다. 나의 마음을 안 한빛 아빠도 주기적으로 시계 약을 간다. 그러나 뻐꾸기 소리를 들을 어린 한빛도, 청년 한빛도 지금 내곁에는 없다. 주변의 모든 것은 다 지워지고 한빛이만 정지된 풍경으로 다가오는 저 그림을 나는 어떻게 간직할 수 있을까? 이겨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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