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용산 참사

관리자
2018-08-05
조회수 1082

- 엄마 김혜영


용산 참사

  


  2009년 1월 용산참사 비극이 일어났다. 신문 사진을 보면서도 믿어지지 않았다. 다행히 정지된 흑백사진이라 아주 먼 과거의 역사 기록물로 간주하고 싶었다. 아니 내 돈내고 들어가 내내 공포감속에서 후회만 했던 재난영화의 한 장면이지 이런 상황이 실제로 벌어질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너무나 긴박하고 무서웠지만 속수무책이었을 그 좁은 공간에서 불에 휩싸여 죽어갈 수 밖에 없었을 그 공포는 실제 상황이었다. 기사를 읽으며 마음이 무척 무겁고 떨렸다. 진실규명을 위한 유가족들의 처절한 울음소리를 방송으로 지켜보면서도 나는 가까이 가지 못했다. 솔직히 나는 이런 상황들이 무섭다. 마음으로는 함께 울지만 행동으로까지는 쉽게 용기를 못 내는 게 나의 한계이다. 

  그래서 항상 마음이 무겁고 우울했다. 누군가 용산에 다녀와 SNS에 올린 글을 읽으면 그들의 용기가 부러웠다. 끊이지 않고 함께 하는 이들이 있어 이 세상은 살만하다 하면서도 정작 나는 한 번도 가지 못한 부담이 숙제처럼 남았다. 도봉역에서 1호선만 타면 갈 수 있는 곳인데 하면서. 

  그렇게 그렇게 긴 시간이 흐른 후. 용산참사 마지막 추모미사가 열린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 이번에도 안 가면 난 평생 부채감을 갖고 살 것 같아 꼭 가리라 결심했다. 그때는 겨울이었다. 마지막 추모미사가 있을 그날 남편이 시골에 가야 한다고 했다. 이상하게 한빛과 한솔이가 선뜻 대답을 안했다. 다른 일정이 있냐고 하니 마지못해 알겠다고 하더니 출발시간을 늦추면 안 되냐고 했다. 남편과 아들들의 대화를 들으며 나도 추모미사에 참석할 수 있겠다 싶어 선약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각자 늦은 밤기차시간에 맞춰 용산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일이 잘 되려고 한 건지 남편에게 일이 생겨 자연스럽게 다음 날 아침 일찍 떠나게 되었다. 

  서울의 환한 밤풍경과는 달리 주변은 깜깜했다. 조금은 두렵고 가슴 아픈 채 어디가 어딘지도 모른 채 그저 사람이 많이 모여 있을 듯한 곳을 찾았다. 좁고 긴 골목에서 미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골목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웅크린 채 길게 줄지어 앉아 있었다. 앞사람 뒷모습만 보고 주춤주춤 빈 자리를 찾아 앉았다. 추웠다. 맨 바닥에서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찬 기운에 뼈까지 얼어왔다. 추위에 워낙 약한 나는 미사를 드리는 건지 추위와 싸우는 건지 겨우 한 시간인데도 고통스러웠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었다. 겨우 단 하루 참석하고는 이러고 있는 내 자신이 많이 부끄러웠다. 여기서 처절하게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긴 나날을 살고 있는 유가족과 신부님, 시민단체에 미안했다. 

영성체를 하려고 줄을 섰는데 낯익은 뒷모습이 보였다. 저 앞에 한솔이가 서 있었다. 설마 했는데 진짜 한솔이였다. 한솔아 하고 조그맣게 부르니 한솔이도 뒤를 돌아보았다. 나를 보고는 머쓱해했다. 엄마가 소심한 걸 알기에, 엄마가 불안해 할까봐 말하지 않고 온 것이었다. 

  그런데 미사가 끝나고 나오다가 좁은 골목 끝에서 한빛을 만났다. 반가우면서도 묘했다. 송경동시인의 용산참사 관련 시집을 신부님의 강권(?)에 2권 샀는데 두 아들의 손에도 시집이 들려 있었다. 훗날 원룸 이사를 하면서 보니 책꽂이에 꽂힌 이 시집들과 <지금 내리실 역은 용산 참사역입니다> 등 용산참사 관련 책이 10권이 넘게 있었다. 한빛에게 친구들한테 나누어 주지 하니까 많이 주고 남은 거여요. 가지고 있는 친구들도 있고요. 한다.

나중에 친구들을 통해 한빛이가 용산 참사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많이 함께 했다는 것을 알았다. 이렇게 사는 게 잘못 사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상식적이고 건강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왜 이러한 삶을 살아온 한빛은 우리 곁을 빨리 떠났을까? 그리고 왜 나는 이런 장소에서 한빛과 한솔을 만난 것을 불편해했을까? 

  2017년 4월 18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한빛의 죽음을 처음 공론화하고 다음 날부터 CJ E&M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한빛 죽음에 대한 진실규명과 회사의 공식 사과, 방송노동현장의 문제해결을 위해서였다. 한솔이가 귀대 전날 1차로 나섰다. 나는 1인 시위도 해 본 적이 없고 누가 남의 일에 관심을 갖고 행동을 보태줄까 속으로 걱정했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1인시위에 함께 해 주셔서 예약(?)이 밀릴 정도였다. 그 중 전재숙어머님(용산 참사 고 이상림열사 부인)도 힘을 보태주셨다. 한빛이 용산 농성에 함께 했다는 것을 건너건너 전해 들으시고 1인 시위에 함께 하시겠다고 자청하셨다고 했다. 나중에 대책위로부터 그 말을 전해 듣고 가슴이 뭉클했다. 함께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이라는 글귀가 현실적으로 뜨겁게 다가왔다. 

 고맙습니다.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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