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 김혜영
수험생 엄마
집에 수험생이 있으면 그 해는 온 가족이 긴장을 한다. 특히 수험생 엄마가 얼마나 힘든 지에 대해서도 많이 말한다. 나역시도 단단한 각오를 하고 수험생 엄마로서 최선을 다하고자 했으나 사실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아니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 미안했다.
한빛이 수험생일 때 나역시 다른 엄마들처럼 마음은 항상 무겁고 긴장됐다. 공부를 대신 해 줄 수도 없는 일이고 그저 아이가 무난하게 이 시기를 잘 넘기길 기도할 뿐이었다. 엄마가 교사라면 진학이나 대입 정보에 빠삭할 것 같지만 난 표준편차 같은 것조차 이해하지 못했다. 솔직히 서울대를 가려면 국사과목이 필수라는 것도 한빛한테 들어서 알 정도였다. 도대체 강남엄마들은 어떻게 정보를 잘 얻고 자녀들에게 적절하게 진학지도를 할까 부러웠고 부끄러웠다.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이 도시락 싸주는 것이었다. 한빛이가 재수할 때 매일 5시에 일어나 도시락을 쌌다. 아침잠이 많은 내가 5시에 일어났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엄청 기특한 사건이다. 한빛은 학원에서 도시락을 사먹겠다고 했는데 나는 집밥을 먹어야 한다며 우겼다. 도시락을 들고 다니는 게 귀찮아서였을지도 모르는데 내 생각만 강요했던 것 같아 미안하다. 디저트랍시고 과일을 챙겨주었는데 주로 사과였다. 수입과일 같은 것을 잘 몰랐고 사과가 무난했기 때문이다. 매일 사과만 내놓으니 같이 밥을 먹던 친구들이 사과 과수원집 아들이냐고 하더란다. 사과가 비타민 C가 많다고 해서 싸 준건데 창피했니? 하니까 “그건 아닌데요. 항상 갈색으로 변해 있으니까 우스개 말로 그런거지요.” 하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아, 나는 거기까지는 생각이 못 미쳤다. “왜 진작 말하지 다른 과일로 싸달라고.” 하니 “그래도 디저트까지 가져오는 사람은 저밖에 없어요.”했다. 나는 이렇게 매사 늦었다.
그래도 놓치지 않고 최선을 다했던 것은 기도였다. 하긴 기도가 제일 쉬웠다. 가톨릭에는 <수험생을 위한 기도>가 있는데 이것도 안하면 수험생 엄마라고 말할 수도 없지 하면서 매일 빼먹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목적은 수험생인 한빛을 위한 기도였지만 사실은 수험생 엄마로서의 평화와 위안을 얻기 위한 게 아니었나 싶다.
그래도 한 가지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서울대 면접일이다. 2008년 서울대 입시전형은 수능, 면접, 논술 3가지였다. 면접일 폭설이 내렸다. 서울대가 도봉동에서 워낙 멀기도 하고 교통대란이 일어날 것을 예상해 한빛과 아빠는 전철을 이용해 일찍 출발했다. 나는 따뜻한 도시락을 싸가기로 하고 집에 남았는데 한빛을 배웅하고 난 뒤부터 안절부절했다. 빨리 밥을 지어야 하는데 손이 떨리고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정성을 다해 도시락을 만들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 하다가 문득 밥물만이라도 약수물로 하고 싶었다. 그 정도라도 정성을 드려야 엄마로서 덜 미안할 것 같았다. 창밖에는 여전히 눈이 엄청 내리고 있었고 남은 시간도 애매해 갈팡질팡하고 있는데 라디오에서 서울대 면접이 한 시간 늦춰졌다는 소식이 들렸다. 시간 여유가 생김에 감사를 드리고 단단히 무장을 하고 바삐 약수터로 올라갔다. 눈보라까지 겹쳐 한 치 앞이 안보였다. 좁은 산길도 발목까지 눈이 쌓여 한 발 한 발 내딛기가 힘들었다.
온통 눈을 뒤집어쓰고 길어온 약수물로 간절함을 담아 밥을 지었다. 자꾸 눈물이 났다. 한빛이가 좋아하는 감자볶음, 계란말이, 된장국을 했다. 떨리는 손으로 소중하게 하나하나 보온도시락에 담았다.
사회대 앞에서 기다렸다. 소강상태에 들어가 눈은 그치고 있었지만 추웠다. 남편이 생활관식당에 들어가서 기다리자고 했다. 그동안 수험생 엄마로서 한 일이 없었던 게 새삼 미안해 추위 속에 서 있어야 할 것 같아 밖에서 기다리겠다고 억지를 부렸다. 점심시간에 한빛 앞에 이것 저것 반찬통을 늘어놓는데 바로 옆 식탁 수험생은 엄마가 방금 사온 따뜻한 전복죽을 먹고 있었다. 아차 했다. 소화부담이 없어 좋겠구나. 왜 이런 걸 몰랐을까? 한빛에게 미안했다. 사과도 먹으라고 내 놓으니 역시 갈변 상태. 아, 또 미안했다.
면접을 끝내고 나온 한빛에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잘 봤냐고 묻고 싶었지만 수고했어. 이제 푹 쉬어라고 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그렇게 속마음을 감추고 슬쩍 슬쩍 한빛의 표정을 살피는 게 엄마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훗날 면접 풍경이 궁금해 물어봤었다. 한빛은 면접 과정을 설명하면서 사실은 면접을 끝내고 나오면서 꼭 합격할 것 같은 자신감을 느꼈다고 했다. 질문지를 보면서 답이 그려졌고 교수님의 질문에 즉문즉설 하듯이 말이 터져 나오더라는 것이었다. 위기에 강한 것 같다며 스스로도 놀랐다고 했다. 면접날 한빛의 표정을 살피느라 속이 탔었던 기억이 있기에 그랬으면 엄마한테도 말해주지 하며 억울하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 말을 하면 엄마가 부정탄다고 할까봐 일부러 말을 안 했다며 살짝 웃었다.
꼭 합격하길 간절히 기도했었다. 사회대 16동 앞 작은 광장 아고라에서 하염없이 쌓이던 눈을 그대로 다 맞으며 한빛과 함께 한다는 생각으로 추위에 떨며 서 있던 기억이 난다. 한빛아 공부하느라 고생 많았다. 엄마는 정말 편한 수험생 엄마였구나. 한빛아 미안하다. 고맙다.
- 엄마 김혜영
수험생 엄마
집에 수험생이 있으면 그 해는 온 가족이 긴장을 한다. 특히 수험생 엄마가 얼마나 힘든 지에 대해서도 많이 말한다. 나역시도 단단한 각오를 하고 수험생 엄마로서 최선을 다하고자 했으나 사실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아니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 미안했다.
한빛이 수험생일 때 나역시 다른 엄마들처럼 마음은 항상 무겁고 긴장됐다. 공부를 대신 해 줄 수도 없는 일이고 그저 아이가 무난하게 이 시기를 잘 넘기길 기도할 뿐이었다. 엄마가 교사라면 진학이나 대입 정보에 빠삭할 것 같지만 난 표준편차 같은 것조차 이해하지 못했다. 솔직히 서울대를 가려면 국사과목이 필수라는 것도 한빛한테 들어서 알 정도였다. 도대체 강남엄마들은 어떻게 정보를 잘 얻고 자녀들에게 적절하게 진학지도를 할까 부러웠고 부끄러웠다.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이 도시락 싸주는 것이었다. 한빛이가 재수할 때 매일 5시에 일어나 도시락을 쌌다. 아침잠이 많은 내가 5시에 일어났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엄청 기특한 사건이다. 한빛은 학원에서 도시락을 사먹겠다고 했는데 나는 집밥을 먹어야 한다며 우겼다. 도시락을 들고 다니는 게 귀찮아서였을지도 모르는데 내 생각만 강요했던 것 같아 미안하다. 디저트랍시고 과일을 챙겨주었는데 주로 사과였다. 수입과일 같은 것을 잘 몰랐고 사과가 무난했기 때문이다. 매일 사과만 내놓으니 같이 밥을 먹던 친구들이 사과 과수원집 아들이냐고 하더란다. 사과가 비타민 C가 많다고 해서 싸 준건데 창피했니? 하니까 “그건 아닌데요. 항상 갈색으로 변해 있으니까 우스개 말로 그런거지요.” 하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아, 나는 거기까지는 생각이 못 미쳤다. “왜 진작 말하지 다른 과일로 싸달라고.” 하니 “그래도 디저트까지 가져오는 사람은 저밖에 없어요.”했다. 나는 이렇게 매사 늦었다.
그래도 놓치지 않고 최선을 다했던 것은 기도였다. 하긴 기도가 제일 쉬웠다. 가톨릭에는 <수험생을 위한 기도>가 있는데 이것도 안하면 수험생 엄마라고 말할 수도 없지 하면서 매일 빼먹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목적은 수험생인 한빛을 위한 기도였지만 사실은 수험생 엄마로서의 평화와 위안을 얻기 위한 게 아니었나 싶다.
그래도 한 가지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서울대 면접일이다. 2008년 서울대 입시전형은 수능, 면접, 논술 3가지였다. 면접일 폭설이 내렸다. 서울대가 도봉동에서 워낙 멀기도 하고 교통대란이 일어날 것을 예상해 한빛과 아빠는 전철을 이용해 일찍 출발했다. 나는 따뜻한 도시락을 싸가기로 하고 집에 남았는데 한빛을 배웅하고 난 뒤부터 안절부절했다. 빨리 밥을 지어야 하는데 손이 떨리고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정성을 다해 도시락을 만들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 하다가 문득 밥물만이라도 약수물로 하고 싶었다. 그 정도라도 정성을 드려야 엄마로서 덜 미안할 것 같았다. 창밖에는 여전히 눈이 엄청 내리고 있었고 남은 시간도 애매해 갈팡질팡하고 있는데 라디오에서 서울대 면접이 한 시간 늦춰졌다는 소식이 들렸다. 시간 여유가 생김에 감사를 드리고 단단히 무장을 하고 바삐 약수터로 올라갔다. 눈보라까지 겹쳐 한 치 앞이 안보였다. 좁은 산길도 발목까지 눈이 쌓여 한 발 한 발 내딛기가 힘들었다.
온통 눈을 뒤집어쓰고 길어온 약수물로 간절함을 담아 밥을 지었다. 자꾸 눈물이 났다. 한빛이가 좋아하는 감자볶음, 계란말이, 된장국을 했다. 떨리는 손으로 소중하게 하나하나 보온도시락에 담았다.
사회대 앞에서 기다렸다. 소강상태에 들어가 눈은 그치고 있었지만 추웠다. 남편이 생활관식당에 들어가서 기다리자고 했다. 그동안 수험생 엄마로서 한 일이 없었던 게 새삼 미안해 추위 속에 서 있어야 할 것 같아 밖에서 기다리겠다고 억지를 부렸다. 점심시간에 한빛 앞에 이것 저것 반찬통을 늘어놓는데 바로 옆 식탁 수험생은 엄마가 방금 사온 따뜻한 전복죽을 먹고 있었다. 아차 했다. 소화부담이 없어 좋겠구나. 왜 이런 걸 몰랐을까? 한빛에게 미안했다. 사과도 먹으라고 내 놓으니 역시 갈변 상태. 아, 또 미안했다.
면접을 끝내고 나온 한빛에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잘 봤냐고 묻고 싶었지만 수고했어. 이제 푹 쉬어라고 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그렇게 속마음을 감추고 슬쩍 슬쩍 한빛의 표정을 살피는 게 엄마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훗날 면접 풍경이 궁금해 물어봤었다. 한빛은 면접 과정을 설명하면서 사실은 면접을 끝내고 나오면서 꼭 합격할 것 같은 자신감을 느꼈다고 했다. 질문지를 보면서 답이 그려졌고 교수님의 질문에 즉문즉설 하듯이 말이 터져 나오더라는 것이었다. 위기에 강한 것 같다며 스스로도 놀랐다고 했다. 면접날 한빛의 표정을 살피느라 속이 탔었던 기억이 있기에 그랬으면 엄마한테도 말해주지 하며 억울하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 말을 하면 엄마가 부정탄다고 할까봐 일부러 말을 안 했다며 살짝 웃었다.
꼭 합격하길 간절히 기도했었다. 사회대 16동 앞 작은 광장 아고라에서 하염없이 쌓이던 눈을 그대로 다 맞으며 한빛과 함께 한다는 생각으로 추위에 떨며 서 있던 기억이 난다. 한빛아 공부하느라 고생 많았다. 엄마는 정말 편한 수험생 엄마였구나. 한빛아 미안하다.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