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 김혜영
미안하다(2)
사랑하는 한빛. 지난 주에 거실 소파를 새 것으로 바꿨어. 사실 너가 취업하면서 원룸생활을 청산하고 집으로 돌아온다고 했을 때 엄마는 제일 먼저 소파를 바꿔주고 싶었단다. ‘바꾸고 싶었다’가 아니고 ‘바꿔주고 싶었어.’ 너에게 무언가 선물을 주고 싶은데 뭐가 좋을까 몇 날 며칠을 고민했는데 우습게도 소파가 생각났어. 그럼에도 엄마는 너가 떠난 이제서야 소파를 새로 들여놓았구나. 미안해. 한빛아. 낡은 갈색 소파에서 푸리를 어깨에 올리고 놀던 너가 생각나 옛날 소파를 내가는데 가슴이 울컥 했어. 이러면서 너와 함께 했던 시간과 기억들이 정리되는 것 같아 가슴이 시렸어. 새 소파는 흠집을 안 만드려고 온통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푸리가 후다닥하더니 콕콕콕콕 뜯었네.
갈색 소파는 이 아파트에 입주하면서 샀던 소파였다. 한빛이 중2때였으니까 15년도 더 넘었다. 헝겊 소파였는데 그동안 편하게 잘 썼다. 어느 날 보니 너무 낡아 있었고 푸리가 발톱으로 다 뜯어서 너덜너덜해 정말 흉했다. 한빛 아빠나 나는 집안 가구에 대해서 무신경한 편이라서 그냥저냥 생활했는데 한빛이가 집으로 들어온다니 신경이 쓰였다. 한빛이가 어느 날 갑자기 커서 어른이 된 것 같아서였다. 하긴 대학도 졸업하고 취업도 했고 20대 후반이니 어른 대접을 받아도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너무나 잘 자란 한빛을 존중하고 싶었다. 더 많이 다 해주고 싶었다. 무엇을 해 주어야 하나 며칠을 고민했다. 그렇게 혼자서 상상하고 조언도 많이 구했지만 결국 쾌적하고 깔끔한 한빛만의 방을 갖게 하기로 결정했다.
한빛이가 중학교때부터 사용하던 방을 둘러보니 왜 그리 작아 보이던지? 남편에게 한빛한테 안방을 주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남편은 황당해했다. 자식이 아무리 귀해도 안방을 주는 것은 좀 그렇다는 것이었다. 나는 실용적인 차원에서 이해를 구했다. 한빛도 이제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는데 한 쪽으로는 행거를 설치해 옷도 정리해 주고 싶고 책상, 책꽂이, 침대도 있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지금 방으로는 좁다고 했다. 잠만 자는 안방이 우리에게는 너무 크지 않냐고 했다. 그리고 이참에 벽지도 새로 하고 바닥도 다른 집처럼 나무 바닥으로 하자고 했다. 그제서야 남편은 동의를 했다. 입주 후 10년이 지나면서 남편이 도배 새로 해야 하지 않냐고 할 때도 못들은 척 넘겼던 나에게 아들 덕분에 새 집 되네 하며 질투를 했다.
한빛한테 벽지 색을 고르라고 했다. 파랑색계통을 선택했다. 다 발라놓고 보니 꼭 노래방 분위기 같았지만 참 좋네 하고 너가 블루계통을 좋아하는지 새삼 알았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침대 패드, 이불, 베개도 모두 파랑색으로 마련했다. 그리고 퇴근 후 고속터미널까지 가서 러그를 샀다. 복슬복슬한 털이 있는 부드러운 원형러그이다. 침대 끝에 반쯤 넣어 연출했다. 한빛한테는 말 안했지만 사실은 이 러그는 오래전부터 내가 갖고 싶었다. 여성잡지나 TV드라마에 소품으로 나올 때마다 살까? 하다가 뭔 우아를 떨겠다고? 하고 접었었다. 아침마다 애들한테 빨리 밥 먹어. 빨리 세수해야지 하면서 나는 침대에서 우아를 떨며 러그에 잠옷 드레스를 끌고 나온다고? 그럴 시간 있으면 애들한테 ‘빨리 빨리’를 덜 외쳐야하지 않나? 해서였다.
그러나 한빛 역시 엄마의 소망과는 달리 이 러그를 여유있게 밟지 못했다. 매일 새벽에 들어와 몇 시간 못 자고 다시 나가야 했으니 무슨 우아함을 누렸겠는가? 한빛은 나처럼 살지 말고 따뜻하고 부드럽게 살았으면 했는데 어줍잖은 욕심이었던가? 한빛이 떠난 후 몇 년째 아무도 밟지 않다보니 빈 방의 러그가 오히려 을씨년스럽다. 이제는 어느 정도 밝은 색으로 익숙해져 가던 파랑색 벽지도 한없이 춥고 썰렁하게 다가와 마음이 훵하다.
몇 해 전부터 여름이 무척 더웠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우리집에는 에어컨이 없었다. 내가 냉방병이 심하다 보니 더위를 잘 타는 남편과 두 아들은 에어컨 얘기도 못 꺼냈다. 한빛이 서울대입구역에서 출발한다고 한 지가 언제인데 항상 늦었고 대부분 자정때에나 들어왔다. 휴일에도 꼭 밖에 나갔다 들어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집이 너무 더워서 카페에서 공부하거나 책을 읽다가 오는 것이었다. 최근에는 카페에서 공부하는 게 흔한 풍경이지만 그 당시에는 낯선 모습이었다. 재수할 때도 집에 들어오기가 겁이 났었다고 했다. 그래서 집 가까이 와서도 일부러 카페에 들러 12시까지 있다가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훗날 그 말을 듣고 너무 미안했다. 내가 에어컨을 피해 다니든지 긴 옷을 입으면 되는데 에어컨 달아달라고 말하지. 남편과 두 아들이 착해도 너무 착한 것 아닌가? 아니 혹시 내 위주로만 살아온 것은 아닐까? 아들이라고 남자라고 너무 무심했던 것은 아닐까? 이런 내가 정말 싫어 그날로 한빛 방에 벽걸이 에어컨을 달아주었다. 너무나 쉬운 일인데 한빛은 왜 불평하지 않았을까?
그러고 보니 한빛은 엄마를 많이 배려했다. 아빠하고는 그렇게 논쟁을 벌이고 결국에는 아빠 결론에 따르더라도 표정은 아니란 것을 드러냈지만 엄마한테는 항상 순했다. 조곤조곤 이야기도 잘 했다. 어느 가을날. 하늘이 참 예뻐 한빛한테 “학교도 가을이 많이 깊어졌겠네? 가끔 하늘도 보렴” 하고 카톡을 보냈다. 답을 바라지도 않았고 그냥 내 감정을 표현했을 뿐인데 “네에. 물속에 비친 붉고 노란 나뭇잎들에 자하연도 온통 가을이여요. 엄마도 가을을 맘껏 누리세요.” 답이 왔다. 엄마가 잘 삐쳐서 미리 겁을 먹나? 엄마가 강한 것 같아도 상처를 잘 받는 다는 것을 알아서 안쓰럽나? 여하튼 한빛은 엄마를 많이 아껴주었다.
나는 한빛한테 받은 것이 너무 많다. 그러나 정작 한빛이 힘들 때 옆에 있어 주지 못했다. 언젠가 식사하면서 회사얘기를 조심스럽게 꺼냈는데 나는 눈치를 못 챘다. 사회 생활이란게 다 그래 하며 가볍게 넘겼던 것 같다. 한빛의 눈을 바라봤어야 했는데 밥상 차리느라 왔다갔다 했다. 차라리 “너의 꿈을 펼칠 곳이 거기 뿐이니? 나와서 새로 찾으면 되지. 더 좋은 곳도 엄청 많으니까 걱정 마. 엄마가 함께 해 줄게” 하며 호기라도 부렸어야 했는데 나는 아무 것도 해주지 못했다. 한빛은 엄마를 그렇게 배려하고 엄마를 항상 감쌌는데 엄마는 어리석었고 바보 같았다.
너를 보내고 미안하다는 말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러나 약속할게. 너가 채우고자 했던 내일. 엄마가 다 채우겠다고. 엄마가 다 갚을게. 나는 한.빛.엄.마.니까.
- 엄마 김혜영
미안하다(2)
사랑하는 한빛. 지난 주에 거실 소파를 새 것으로 바꿨어. 사실 너가 취업하면서 원룸생활을 청산하고 집으로 돌아온다고 했을 때 엄마는 제일 먼저 소파를 바꿔주고 싶었단다. ‘바꾸고 싶었다’가 아니고 ‘바꿔주고 싶었어.’ 너에게 무언가 선물을 주고 싶은데 뭐가 좋을까 몇 날 며칠을 고민했는데 우습게도 소파가 생각났어. 그럼에도 엄마는 너가 떠난 이제서야 소파를 새로 들여놓았구나. 미안해. 한빛아. 낡은 갈색 소파에서 푸리를 어깨에 올리고 놀던 너가 생각나 옛날 소파를 내가는데 가슴이 울컥 했어. 이러면서 너와 함께 했던 시간과 기억들이 정리되는 것 같아 가슴이 시렸어. 새 소파는 흠집을 안 만드려고 온통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푸리가 후다닥하더니 콕콕콕콕 뜯었네.
갈색 소파는 이 아파트에 입주하면서 샀던 소파였다. 한빛이 중2때였으니까 15년도 더 넘었다. 헝겊 소파였는데 그동안 편하게 잘 썼다. 어느 날 보니 너무 낡아 있었고 푸리가 발톱으로 다 뜯어서 너덜너덜해 정말 흉했다. 한빛 아빠나 나는 집안 가구에 대해서 무신경한 편이라서 그냥저냥 생활했는데 한빛이가 집으로 들어온다니 신경이 쓰였다. 한빛이가 어느 날 갑자기 커서 어른이 된 것 같아서였다. 하긴 대학도 졸업하고 취업도 했고 20대 후반이니 어른 대접을 받아도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너무나 잘 자란 한빛을 존중하고 싶었다. 더 많이 다 해주고 싶었다. 무엇을 해 주어야 하나 며칠을 고민했다. 그렇게 혼자서 상상하고 조언도 많이 구했지만 결국 쾌적하고 깔끔한 한빛만의 방을 갖게 하기로 결정했다.
한빛이가 중학교때부터 사용하던 방을 둘러보니 왜 그리 작아 보이던지? 남편에게 한빛한테 안방을 주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남편은 황당해했다. 자식이 아무리 귀해도 안방을 주는 것은 좀 그렇다는 것이었다. 나는 실용적인 차원에서 이해를 구했다. 한빛도 이제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는데 한 쪽으로는 행거를 설치해 옷도 정리해 주고 싶고 책상, 책꽂이, 침대도 있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지금 방으로는 좁다고 했다. 잠만 자는 안방이 우리에게는 너무 크지 않냐고 했다. 그리고 이참에 벽지도 새로 하고 바닥도 다른 집처럼 나무 바닥으로 하자고 했다. 그제서야 남편은 동의를 했다. 입주 후 10년이 지나면서 남편이 도배 새로 해야 하지 않냐고 할 때도 못들은 척 넘겼던 나에게 아들 덕분에 새 집 되네 하며 질투를 했다.
한빛한테 벽지 색을 고르라고 했다. 파랑색계통을 선택했다. 다 발라놓고 보니 꼭 노래방 분위기 같았지만 참 좋네 하고 너가 블루계통을 좋아하는지 새삼 알았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침대 패드, 이불, 베개도 모두 파랑색으로 마련했다. 그리고 퇴근 후 고속터미널까지 가서 러그를 샀다. 복슬복슬한 털이 있는 부드러운 원형러그이다. 침대 끝에 반쯤 넣어 연출했다. 한빛한테는 말 안했지만 사실은 이 러그는 오래전부터 내가 갖고 싶었다. 여성잡지나 TV드라마에 소품으로 나올 때마다 살까? 하다가 뭔 우아를 떨겠다고? 하고 접었었다. 아침마다 애들한테 빨리 밥 먹어. 빨리 세수해야지 하면서 나는 침대에서 우아를 떨며 러그에 잠옷 드레스를 끌고 나온다고? 그럴 시간 있으면 애들한테 ‘빨리 빨리’를 덜 외쳐야하지 않나? 해서였다.
그러나 한빛 역시 엄마의 소망과는 달리 이 러그를 여유있게 밟지 못했다. 매일 새벽에 들어와 몇 시간 못 자고 다시 나가야 했으니 무슨 우아함을 누렸겠는가? 한빛은 나처럼 살지 말고 따뜻하고 부드럽게 살았으면 했는데 어줍잖은 욕심이었던가? 한빛이 떠난 후 몇 년째 아무도 밟지 않다보니 빈 방의 러그가 오히려 을씨년스럽다. 이제는 어느 정도 밝은 색으로 익숙해져 가던 파랑색 벽지도 한없이 춥고 썰렁하게 다가와 마음이 훵하다.
몇 해 전부터 여름이 무척 더웠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우리집에는 에어컨이 없었다. 내가 냉방병이 심하다 보니 더위를 잘 타는 남편과 두 아들은 에어컨 얘기도 못 꺼냈다. 한빛이 서울대입구역에서 출발한다고 한 지가 언제인데 항상 늦었고 대부분 자정때에나 들어왔다. 휴일에도 꼭 밖에 나갔다 들어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집이 너무 더워서 카페에서 공부하거나 책을 읽다가 오는 것이었다. 최근에는 카페에서 공부하는 게 흔한 풍경이지만 그 당시에는 낯선 모습이었다. 재수할 때도 집에 들어오기가 겁이 났었다고 했다. 그래서 집 가까이 와서도 일부러 카페에 들러 12시까지 있다가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훗날 그 말을 듣고 너무 미안했다. 내가 에어컨을 피해 다니든지 긴 옷을 입으면 되는데 에어컨 달아달라고 말하지. 남편과 두 아들이 착해도 너무 착한 것 아닌가? 아니 혹시 내 위주로만 살아온 것은 아닐까? 아들이라고 남자라고 너무 무심했던 것은 아닐까? 이런 내가 정말 싫어 그날로 한빛 방에 벽걸이 에어컨을 달아주었다. 너무나 쉬운 일인데 한빛은 왜 불평하지 않았을까?
그러고 보니 한빛은 엄마를 많이 배려했다. 아빠하고는 그렇게 논쟁을 벌이고 결국에는 아빠 결론에 따르더라도 표정은 아니란 것을 드러냈지만 엄마한테는 항상 순했다. 조곤조곤 이야기도 잘 했다. 어느 가을날. 하늘이 참 예뻐 한빛한테 “학교도 가을이 많이 깊어졌겠네? 가끔 하늘도 보렴” 하고 카톡을 보냈다. 답을 바라지도 않았고 그냥 내 감정을 표현했을 뿐인데 “네에. 물속에 비친 붉고 노란 나뭇잎들에 자하연도 온통 가을이여요. 엄마도 가을을 맘껏 누리세요.” 답이 왔다. 엄마가 잘 삐쳐서 미리 겁을 먹나? 엄마가 강한 것 같아도 상처를 잘 받는 다는 것을 알아서 안쓰럽나? 여하튼 한빛은 엄마를 많이 아껴주었다.
나는 한빛한테 받은 것이 너무 많다. 그러나 정작 한빛이 힘들 때 옆에 있어 주지 못했다. 언젠가 식사하면서 회사얘기를 조심스럽게 꺼냈는데 나는 눈치를 못 챘다. 사회 생활이란게 다 그래 하며 가볍게 넘겼던 것 같다. 한빛의 눈을 바라봤어야 했는데 밥상 차리느라 왔다갔다 했다. 차라리 “너의 꿈을 펼칠 곳이 거기 뿐이니? 나와서 새로 찾으면 되지. 더 좋은 곳도 엄청 많으니까 걱정 마. 엄마가 함께 해 줄게” 하며 호기라도 부렸어야 했는데 나는 아무 것도 해주지 못했다. 한빛은 엄마를 그렇게 배려하고 엄마를 항상 감쌌는데 엄마는 어리석었고 바보 같았다.
너를 보내고 미안하다는 말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러나 약속할게. 너가 채우고자 했던 내일. 엄마가 다 채우겠다고. 엄마가 다 갚을게. 나는 한.빛.엄.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