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 김혜영
미안하다 (1)
남편은 한빛과 많이 부딪쳤다. 특히 한빛이 대학생이 된 후 더 자주 논쟁을 했다. 이해는 되지만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는 게 불편했다. 식사를 하다가 TV를 보다가 어떤 사안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보면 항상 의견이 팽팽했다. 세대가 다르니 해석도 다르겠지 하며 절충하길 바라는데 계속 평행선이었다. 나는 그런 사안에 관심도 없고 잘 모르니 어느 편을 들 수도 없어 언제 저 논쟁이 끝나나 기다려야만 했다. 가족이지만 같이 있는 시간이 많은 것도 아닌데 그냥 일상적인 이야기나 하지 왜 저럴까 속상했다. 남편도 한빛도 찝찝한 것 같았다.
한빛이가 중학교 3학년 2학기때. 중간고사 기간에 집 앞의 사설도서실을 끊어달라고 했다. 중학생이 얼마나 공부한다고 도서실까지 가나 하면서도 스스로 공부하겠다니 기특했다. 그런데 우연히 한빛이가 책가방만 놓아두고 도서실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12시가 넘어서 공부하다 온 것처럼 들어왔기 때문에 추호도 그런 의심은 하지 않았다. 내 아이는 착실하게 도서실에서 시험공부를 하리라 생각했다. 아이를 관리하고도 싶었지만 한빛이가 눈치 채면 반항적으로 나올까봐 애써 무심하려고 했다. 교양있는 부모가 되고 싶기도 했고 학교에서 부모의 극성 때문에 무너지는 아이들을 봤기 때문에 순간순간 올라오는 불안을 꾹꾹 눌렀다. 그런데 가방만 팽겨쳐진 도서실 빈 책상을 보면서 한 방 맞은 것 같았다. 한빛은 특성화고(실업계고)에 합격한 아이들과 중랑천을 몰려다니며 폭죽을 쏘고 PC방을 드나들고 있었다. 시험기간은 일찍 끝나기 때문에 긴 시간 아주 합법적으로 신나게 놀 수 있었던 것이다. 외고를 가겠다고 한 것을 우리가 반대해서였을까? 반항이었을까 일탈이었을까?
다른 부모도 그랬을까? 나는 아이를 키우면서 많이 갈팡질팡했다. 부모의 흔들리는 기준에 아이는 얼마나 헷갈리고 어른이 싫었을까? 그럼에도 부모로서 깊이 고민하지 않았고 성찰의 과정을 갖지 않았다. 아이는 어리고 자식이니까 내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맞벌이라고 해도 나나 남편이나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들에게 무심했던 것 같아 미안하다. 철저하게 관리를 못해서가 아니고 대화나 다른 방법으로 풀어갈 수도 있었는데 일부러 시간을 만들려고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내 아이는 ‘절대로’ 길을 벗어날 리가 없다고 교만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절대로’란 말을 이제는 믿지 않는다.
한빛이 3학년이 되면서 학원을 보내달라고 해 3월부터 노원구에 있는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성적에 따라 외고반에 들어갔다고 했다. 당시 외고는 대학입학성적순으로 암암리에 등급이 있었는데 학원의 외고반도 역시 그 등급에 따라 반이 구성된다고 했다. 한빛은 배치고사 성적에 따라 최하위 외고반이라고 했다. 학원비를 내러 갔다가 나는 깜짝 놀랐다. 학원이 너무 컸다. 거대한 기업이었다. 10여층이 넘는 건물이 하나의 학원이었다. 하긴 반이 25개반이 넘는다고 했다. 그것도 주 3일이니 곱하기 2개반 하면 50반이 넘는 거였다. 작은 보습학원만 상상했던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교실안을 슬쩍 들여다보니 15명도 안되는 아이들이 수업을 하고 있었다. 학원선전지에서 보던 소수정예란 말을 처음 실감했다. 내가 가르치고 있는 교실의 아이들이 떠올랐다. 너무나 조용하게 집중하고 있는 아이들이 학교 교실만큼 발랄해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 마음은 씁쓸했다. 마침 수업종료 종이 울리면서 아이들이 몰려나오는데 좁은 복도가 발디딜 틈도 없었다. 만약 불이 나면 이 아이들이 어디로 피신해야 하나 괜한 걱정까지 했다.
2학기가 되자 한빛이 학원에서 가져온 동의서를 내 놓았다. 2학기에는 외고 입시에 맞춰 올인하는데 학원수업이 12시에 끝나 교통수단이 없으니 부모가 데리러 올 수 있나 여부를 표시하는 것이었다. “12시까지 학원에 있으면 다음 날 학교수업은 어떻게 해? 집에 와 씻고 나면 1시가 넘을 텐데” 하니 한빛이가 “학교에서는 자면 되요. 어차피 2학기 시험성적은 외고입시에 반영이 안 되니까요.” 이건 또 무슨 소리? 하면서 “그게 말이 되냐?” 하니 “다른 애들도 다 그렇게 해요. 어차피 2학기 학교성적은 외고입시에 반영이 안 돼요. 학원에서 입시에 맞춰서 다 해준대요. 여태까지 다 그렇게 했대요.” (당시에는 1학기 성적까지만 외고입시에 반영되었다.) 듣고 있던 한빛아빠가 “그렇게까지 해서 외고 가서 뭐 하려고? 학교교육이 그렇게 우스워?” 하며 한빛 보는 앞에서 동의서를 빡빡 찢어버렸다. 한빛은 그 이후로 엄마 아빠와 각을 세웠던 것 같다. 그렇게 푸는 게 아니었는데... 지금껏 많이 미안하다. 미숙한 부모... 부모도 자식을 이해하는 공부를 했어야 했다.
그 후에도 무슨 일인가 남편이 한빛과 의견충돌이 있을 때 도서실 얘기를 꺼냈다. ‘양아치같은 애들이랑 몰려다니며’ 운운했다. 그때 한빛이가 “아빠, 아빠는 교사이시면서 어떻게 학생들한테 양아치라는 말을 하세요? 교육자가 그래도 되는 거여요? 걔네들 다 좋은 친구들이여요.” 하며 울면서 아빠한테 박박 대들었다. 결국 아빠가 사과하는 것으로 끝났고 한빛의 그 분노는 우리 부부에게는 이후 교사로 살아가면서 많은 성찰을 하게 했다. 한빛아 고맙다.
한겨레신문 칼럼 <힘들게 쓴 답장(2010.4.15/김규항)>을 읽는데 내가 당시 고민했던 지점을 이야기하고 있어 일기책에 붙여 놓았었다. 그리고 한빛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슬쩍 엿보고 싶었다. ‘나는 너가 이렇게 대학생활을 했으면, 청년시절을 보냈으면 해’ 하고 솔직하게 말하지는 못했다. 그 길이 어떨지 알기에 한빛이 그렇기 살기를 바라지는 않으면서도 그렇다고 한빛이 부모가 원하는 대로 대학생활을 보내지는 않을 것 같아 애매하게 물었다. 한빛에 대한 기대도 컸고 한빛이가 잘 살아가기를 바랐다면 그냥 노골적으로 물어보거나 너는 이렇게 살았으면 해 하고 엄마의 소망을 강제적으로 말해도 되는데 왜 나는 핵심을 말하지 않고 빙빙 돌렸을까? 아들을 존중해서였을까? 아들한테 부담을 느꼈을까? 스물 두살이 뭘 안다고 어른이라고 생각했나? 혹시 괜찮은 엄마가 되기 위해 자식을 지켜보는 것으로 포장한 것은 아니었을까? 이런 엄마의 속마음을 한빛은 이미 다 꿰뚫고 있어 오히려 삶이 무겁지는 않았을까? 결국 이 문제도 한빛과 허심탄회하게 얘기해 보지 못했다. 차일피일 미루다 한빛을 보냈다.
칼럼 내용은 이랬다. 고등학생의 고민 편지로 시작된 글인데 그의 아버지는 진보진영의 교수여서 중학생때까지는 공부에 시달리지도 않고 참 잘 살았고 아버지의 사회활동을 자세히 알게 되면서 아버지를 존경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랬는데 고등학생이 되자 아버지가 무거운 얼굴로 대학입시를 위해 강남으로 이사가자고 하셨다. 아들은 아버지가 자신을 위해 그러셨다는 것을 알지만 더 이상 아버지를 존경할 수 없게 되었다고 했다. 칼럼에서는 이렇게 답했다. ‘아마도 그 아버지는 아이가 스펙을 쌓아 자본의 시장에서 비싼 가격으로 팔리길 기대하는 게 아니라 진보적 엘리트로 성장하여 자신처럼 사회에 기여하길 기대할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어떤 삶의 방식을 좇는 건 그 삶이 옳아서만은 아니다. 그런 삶이 멋지게 느껴지고 존경심이 들 때 비로소 그 삶을 좇게 된다. 그런데 그는 이제 아버지를 비롯한 진보지식인들의 말을 ‘입으로만 저러지’ 냉소부터 하게 되어 버렸으니 어떻게 그게 가능하겠는가. 아니할 말로, 차라리 그 아버지가 막돼먹은 극우 꼴통이었다면 그는 반항심에서라도 힘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나 또한 한 아버지로서 아버지를 존경할 수 없다는 말이 참 아프네요. 그러나 그보다 더 슬픈 일은 님이 이 일을 통해 고작 아버지를 비롯한 진보 지식인들에 대해 냉소적인 태도만을 얻게 되는 걸 거예요. 나는 이 일이 님으로 하여금 우리를 지배하는 시스템, 즉 자본주의라는 괴물이 대체 얼마나 강력한 것이기에 아버지 같은 분도 흔들리는 걸까, 질문하는 계기가 되길 더 깊이 공부하는 계기가 되길 바래요. 괴물이 강력한 만큼 괴물의 정체를 밝히고 그 괴물을 넘어서는 행로 또한 길겠죠. 그 긴 행로에서 아버지에 대한 존경도 회복되길 기도할게요.’
한빛에게는 부모의 삶을 좇고 싶을 만큼 부모의 삶이 멋지게 느껴지고 존경심이 들었을까? 자본주의라는 괴물에 흔들리면서 갈팡질팡하는 부모를 보면서 이 고등학생처럼 냉소적이었을까? 한빛이가 진보적 엘리트로 성장하여 사회에 기여하기를 바랐던 아빠, 엄마의 욕심이 버거웠을까? 아빠는 나름 열심히 살아왔지만 나는 매일 그 언저리에서 주저주저했다. 갈팡질팡할 때마다 한빛은 얼마나 헷갈렸을까? 그러나 나는 확신한다. 대학을 졸업해 어엿한 청년이 되었을 이 고등학생도 긴 행로를 넘어서 지금은 아빠를 이해하고 존경할 것이라고.
한빛은 부모님을 존경하고 자신이 엄마 아빠의 사랑을 넘치게 받았음을 마지막 글에서 말하고 갔다. 한빛은 끝까지 철저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한빛아 미안하다.
- 엄마 김혜영
미안하다 (1)
남편은 한빛과 많이 부딪쳤다. 특히 한빛이 대학생이 된 후 더 자주 논쟁을 했다. 이해는 되지만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는 게 불편했다. 식사를 하다가 TV를 보다가 어떤 사안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보면 항상 의견이 팽팽했다. 세대가 다르니 해석도 다르겠지 하며 절충하길 바라는데 계속 평행선이었다. 나는 그런 사안에 관심도 없고 잘 모르니 어느 편을 들 수도 없어 언제 저 논쟁이 끝나나 기다려야만 했다. 가족이지만 같이 있는 시간이 많은 것도 아닌데 그냥 일상적인 이야기나 하지 왜 저럴까 속상했다. 남편도 한빛도 찝찝한 것 같았다.
한빛이가 중학교 3학년 2학기때. 중간고사 기간에 집 앞의 사설도서실을 끊어달라고 했다. 중학생이 얼마나 공부한다고 도서실까지 가나 하면서도 스스로 공부하겠다니 기특했다. 그런데 우연히 한빛이가 책가방만 놓아두고 도서실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12시가 넘어서 공부하다 온 것처럼 들어왔기 때문에 추호도 그런 의심은 하지 않았다. 내 아이는 착실하게 도서실에서 시험공부를 하리라 생각했다. 아이를 관리하고도 싶었지만 한빛이가 눈치 채면 반항적으로 나올까봐 애써 무심하려고 했다. 교양있는 부모가 되고 싶기도 했고 학교에서 부모의 극성 때문에 무너지는 아이들을 봤기 때문에 순간순간 올라오는 불안을 꾹꾹 눌렀다. 그런데 가방만 팽겨쳐진 도서실 빈 책상을 보면서 한 방 맞은 것 같았다. 한빛은 특성화고(실업계고)에 합격한 아이들과 중랑천을 몰려다니며 폭죽을 쏘고 PC방을 드나들고 있었다. 시험기간은 일찍 끝나기 때문에 긴 시간 아주 합법적으로 신나게 놀 수 있었던 것이다. 외고를 가겠다고 한 것을 우리가 반대해서였을까? 반항이었을까 일탈이었을까?
다른 부모도 그랬을까? 나는 아이를 키우면서 많이 갈팡질팡했다. 부모의 흔들리는 기준에 아이는 얼마나 헷갈리고 어른이 싫었을까? 그럼에도 부모로서 깊이 고민하지 않았고 성찰의 과정을 갖지 않았다. 아이는 어리고 자식이니까 내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맞벌이라고 해도 나나 남편이나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들에게 무심했던 것 같아 미안하다. 철저하게 관리를 못해서가 아니고 대화나 다른 방법으로 풀어갈 수도 있었는데 일부러 시간을 만들려고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내 아이는 ‘절대로’ 길을 벗어날 리가 없다고 교만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절대로’란 말을 이제는 믿지 않는다.
한빛이 3학년이 되면서 학원을 보내달라고 해 3월부터 노원구에 있는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성적에 따라 외고반에 들어갔다고 했다. 당시 외고는 대학입학성적순으로 암암리에 등급이 있었는데 학원의 외고반도 역시 그 등급에 따라 반이 구성된다고 했다. 한빛은 배치고사 성적에 따라 최하위 외고반이라고 했다. 학원비를 내러 갔다가 나는 깜짝 놀랐다. 학원이 너무 컸다. 거대한 기업이었다. 10여층이 넘는 건물이 하나의 학원이었다. 하긴 반이 25개반이 넘는다고 했다. 그것도 주 3일이니 곱하기 2개반 하면 50반이 넘는 거였다. 작은 보습학원만 상상했던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교실안을 슬쩍 들여다보니 15명도 안되는 아이들이 수업을 하고 있었다. 학원선전지에서 보던 소수정예란 말을 처음 실감했다. 내가 가르치고 있는 교실의 아이들이 떠올랐다. 너무나 조용하게 집중하고 있는 아이들이 학교 교실만큼 발랄해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 마음은 씁쓸했다. 마침 수업종료 종이 울리면서 아이들이 몰려나오는데 좁은 복도가 발디딜 틈도 없었다. 만약 불이 나면 이 아이들이 어디로 피신해야 하나 괜한 걱정까지 했다.
2학기가 되자 한빛이 학원에서 가져온 동의서를 내 놓았다. 2학기에는 외고 입시에 맞춰 올인하는데 학원수업이 12시에 끝나 교통수단이 없으니 부모가 데리러 올 수 있나 여부를 표시하는 것이었다. “12시까지 학원에 있으면 다음 날 학교수업은 어떻게 해? 집에 와 씻고 나면 1시가 넘을 텐데” 하니 한빛이가 “학교에서는 자면 되요. 어차피 2학기 시험성적은 외고입시에 반영이 안 되니까요.” 이건 또 무슨 소리? 하면서 “그게 말이 되냐?” 하니 “다른 애들도 다 그렇게 해요. 어차피 2학기 학교성적은 외고입시에 반영이 안 돼요. 학원에서 입시에 맞춰서 다 해준대요. 여태까지 다 그렇게 했대요.” (당시에는 1학기 성적까지만 외고입시에 반영되었다.) 듣고 있던 한빛아빠가 “그렇게까지 해서 외고 가서 뭐 하려고? 학교교육이 그렇게 우스워?” 하며 한빛 보는 앞에서 동의서를 빡빡 찢어버렸다. 한빛은 그 이후로 엄마 아빠와 각을 세웠던 것 같다. 그렇게 푸는 게 아니었는데... 지금껏 많이 미안하다. 미숙한 부모... 부모도 자식을 이해하는 공부를 했어야 했다.
그 후에도 무슨 일인가 남편이 한빛과 의견충돌이 있을 때 도서실 얘기를 꺼냈다. ‘양아치같은 애들이랑 몰려다니며’ 운운했다. 그때 한빛이가 “아빠, 아빠는 교사이시면서 어떻게 학생들한테 양아치라는 말을 하세요? 교육자가 그래도 되는 거여요? 걔네들 다 좋은 친구들이여요.” 하며 울면서 아빠한테 박박 대들었다. 결국 아빠가 사과하는 것으로 끝났고 한빛의 그 분노는 우리 부부에게는 이후 교사로 살아가면서 많은 성찰을 하게 했다. 한빛아 고맙다.
한겨레신문 칼럼 <힘들게 쓴 답장(2010.4.15/김규항)>을 읽는데 내가 당시 고민했던 지점을 이야기하고 있어 일기책에 붙여 놓았었다. 그리고 한빛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슬쩍 엿보고 싶었다. ‘나는 너가 이렇게 대학생활을 했으면, 청년시절을 보냈으면 해’ 하고 솔직하게 말하지는 못했다. 그 길이 어떨지 알기에 한빛이 그렇기 살기를 바라지는 않으면서도 그렇다고 한빛이 부모가 원하는 대로 대학생활을 보내지는 않을 것 같아 애매하게 물었다. 한빛에 대한 기대도 컸고 한빛이가 잘 살아가기를 바랐다면 그냥 노골적으로 물어보거나 너는 이렇게 살았으면 해 하고 엄마의 소망을 강제적으로 말해도 되는데 왜 나는 핵심을 말하지 않고 빙빙 돌렸을까? 아들을 존중해서였을까? 아들한테 부담을 느꼈을까? 스물 두살이 뭘 안다고 어른이라고 생각했나? 혹시 괜찮은 엄마가 되기 위해 자식을 지켜보는 것으로 포장한 것은 아니었을까? 이런 엄마의 속마음을 한빛은 이미 다 꿰뚫고 있어 오히려 삶이 무겁지는 않았을까? 결국 이 문제도 한빛과 허심탄회하게 얘기해 보지 못했다. 차일피일 미루다 한빛을 보냈다.
칼럼 내용은 이랬다. 고등학생의 고민 편지로 시작된 글인데 그의 아버지는 진보진영의 교수여서 중학생때까지는 공부에 시달리지도 않고 참 잘 살았고 아버지의 사회활동을 자세히 알게 되면서 아버지를 존경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랬는데 고등학생이 되자 아버지가 무거운 얼굴로 대학입시를 위해 강남으로 이사가자고 하셨다. 아들은 아버지가 자신을 위해 그러셨다는 것을 알지만 더 이상 아버지를 존경할 수 없게 되었다고 했다. 칼럼에서는 이렇게 답했다. ‘아마도 그 아버지는 아이가 스펙을 쌓아 자본의 시장에서 비싼 가격으로 팔리길 기대하는 게 아니라 진보적 엘리트로 성장하여 자신처럼 사회에 기여하길 기대할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어떤 삶의 방식을 좇는 건 그 삶이 옳아서만은 아니다. 그런 삶이 멋지게 느껴지고 존경심이 들 때 비로소 그 삶을 좇게 된다. 그런데 그는 이제 아버지를 비롯한 진보지식인들의 말을 ‘입으로만 저러지’ 냉소부터 하게 되어 버렸으니 어떻게 그게 가능하겠는가. 아니할 말로, 차라리 그 아버지가 막돼먹은 극우 꼴통이었다면 그는 반항심에서라도 힘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나 또한 한 아버지로서 아버지를 존경할 수 없다는 말이 참 아프네요. 그러나 그보다 더 슬픈 일은 님이 이 일을 통해 고작 아버지를 비롯한 진보 지식인들에 대해 냉소적인 태도만을 얻게 되는 걸 거예요. 나는 이 일이 님으로 하여금 우리를 지배하는 시스템, 즉 자본주의라는 괴물이 대체 얼마나 강력한 것이기에 아버지 같은 분도 흔들리는 걸까, 질문하는 계기가 되길 더 깊이 공부하는 계기가 되길 바래요. 괴물이 강력한 만큼 괴물의 정체를 밝히고 그 괴물을 넘어서는 행로 또한 길겠죠. 그 긴 행로에서 아버지에 대한 존경도 회복되길 기도할게요.’
한빛에게는 부모의 삶을 좇고 싶을 만큼 부모의 삶이 멋지게 느껴지고 존경심이 들었을까? 자본주의라는 괴물에 흔들리면서 갈팡질팡하는 부모를 보면서 이 고등학생처럼 냉소적이었을까? 한빛이가 진보적 엘리트로 성장하여 사회에 기여하기를 바랐던 아빠, 엄마의 욕심이 버거웠을까? 아빠는 나름 열심히 살아왔지만 나는 매일 그 언저리에서 주저주저했다. 갈팡질팡할 때마다 한빛은 얼마나 헷갈렸을까? 그러나 나는 확신한다. 대학을 졸업해 어엿한 청년이 되었을 이 고등학생도 긴 행로를 넘어서 지금은 아빠를 이해하고 존경할 것이라고.
한빛은 부모님을 존경하고 자신이 엄마 아빠의 사랑을 넘치게 받았음을 마지막 글에서 말하고 갔다. 한빛은 끝까지 철저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한빛아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