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가족회의

관리자
2018-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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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 김혜영


가족회의 


늘 푸른 사랑 가족의 차내 특별 가족 회의 

  


   우리 집은 한 달에 한두 번 가족회의를 한다시작한 지 6개월 밖에 되지 않았지만 어느 새 두터워진 가족 회의록을 보면 가슴이 뿌듯해진다우리집의 역사와 그때그때의 우리집의문제점을 알 수 있어 회의록을 보고 있노라면 많은 반성도 되고또 당시는 심각하게 생각되어 고쳐졌던 문제들이 어느 새 잊혀져 되풀이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깜짝 놀라기도 한다.

   맞벌이여서 아이들과 함께 할 시간이 적다보니 아이들과의 대화시간도 적고 퇴근해 들어오면 잔소리만 많아져 갈등이 컸었다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간 후부터는 부딪히는 일들이 더 많아져 불안해하던 중 4학년 학급회장이던 큰애가 어느 날 불쑥 가족회의를 하자는 의견을 냈다. ‘가족회의?’ 뜻밖의 말이긴 했지만 어떻게 보면 필요할 듯도 해 일단 시작해 보기로 했다.

  그 주 일요일 저녁 9첫 번째 가족회의가 열렸다아빠가 사회를 보고 큰 아이를 서기로 정해 앞으로 어떻게 가족회의를 이끌어 가야할 지에 대해 토의를 했다한 달에 한 번씩 하되 필요할 때는 임시회의를 열 수 있도록 하고 역할 분담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는데 2회부터는 간식 준비와 안건 제출자도 정해 네 식구 모두가 회의의 주인이 되자고 했다

  그동안의 회의 안건을 훑어보니 가족 이름 정할 때가 시간이 가장 오래 걸렸다. ‘늘 푸른 우리집’ ‘맑고 깨끗한 우리집’ ‘사랑가족’ 등등 여러 의견이 나왔는데 최종적으로 늘 푸른 사랑 가족으로 결정되었다

  막내가 가족 암호도 정하자고 해서 우리 아빠는 절구통이라는말라깽이인 아빠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을 만들어 냈다현관벨이 울리면 안에서 아빠 엉덩이는하면 밖에서 절구통해야만 문을 열어 주자는 것이다그때 일을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회의록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웃음도 나오고 뿌듯하기도 했다그 가운데 지난번에 있었던 회의는 정말 특별했다일요일 친정에 갔다 오는데 고속도로에서 차가 무척 밀렸다모두들 지루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데 큰애가 이따 밤에 할 가족회의를 미리 하자고 제안했다. ‘차내 특별 가족회의가 열린 것이다

  아빠가 운전중임을 고려해 큰 주제를 설정하지 않고 한 명씩 돌아가며 서로의 칭찬할 점고쳤으면 하는 점을 이야기하기로 했다

  먼저 아빠주로 밤늦게 들어오는 것에 대한 가족들의 불만이 많았는데 그래도 큰애나 작은애는 아빠의 좋은 점을 의외로 세심하게 말해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했다막내는 항상 그랬듯 또 몸을 비비 꼬고 말해 우리 모두의 지적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건의 사항 순서가 되었다큰애는 이제 5학년이 되니 용돈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했다결국 용돈 때문에 가족회의를 하자고 한 게 아니냐며 나와 남편이 핀잔을 주었지만 용돈 문제는 우리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회의에 붙였다많은 대화가 오간 후 용돈 기록장만 착실하게 쓰면 계속 용돈을 주기로 하고 다른 조건을 달거나 간섭은 하지 않기로 했다아울러 동생도 형의 반을 주기로 했다.

  막내는 엄마와 함께 잘 수 있게 해 달라는 건의를 또 어리광을 부리며 말했다엄마랑 자는 게 막내의 건의 사항이라니우리는 난감했다. ‘된다안 된다’ 심각하게 의견이 오가다가 평소에는 침대가 좁으니 함께 잘 수는 없고 아빠가 출장가시는 날만 엄마랑 침대에서 자기로 하고 대신 매주 화요일을 함께 자는 날로 정해 거실에다 이불을 깔고 네 식구가 함께 자기로 했다그 절충안에 결국 막내도 고개를 끄덕이고 그 다음부터는 침대에 와서 자는 일은 없어졌다

  몇 번 가족회의가 미뤄지기는 했지만 결과는 참 좋은 것 같다한 때 아이들이 가족회의에서 결정된 것이 잘 지켜지지 않고 엄마 아빠가 원하는 쪽으로만 이끌어 간다고 불만을 말하기도 하고 또 우리는 우리대로 아이들의 건의 사항이 일방적인 요구만 많아 회의에 젖기도 했지만 그래도 시작하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아이들의 주장도 뚜렷해지고 생각도 엿볼 수 있음은 물론 가정이 민주적으로 되니 맞벌이인 우리에겐 매우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이다앞으로도 계속 잘 이끌어 모든 가정일이 잘되고 우리 가족의 이름만큼 늘 푸르고 사랑이 넘치는 우리집이 되었으면 한다. (1999년 56호 / J 사외보에 게재)

  


  한 달 전부터 짬짬이 내 물건들을 정리했다주로 책과 옷들이다책은 터무니없이 많지만 한빛을 보낸 후서재로 쓰던 그 방에는 들어가지도 않아 냉골이고 낯설었다발이 시려웠다장롱도 열어 보았다옷은 별로 없지만 2년동안 하루하루 삭아서 가루가 된 것 같아 만지기가 두려웠다하루에 후다닥 하고 싶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정리하는 내내 슬펐다하다가 멈추고 하다가 울고 그랬다한빛도 없는데 이 모든 게 의미가 없었다다 무거운 짐으로 보여 조급하다가도 기운이 빠지며 손을 놓곤 했다손과 마음이 따로 놀았다

  처음으로 잡지 <학원>에 내 글이 실린 게 중학교 2학년때였다. 1972년도 잡지가 누렇게 삭아서 자기네끼리 붙어있어 페이지를 열기가 힘들었다읍내 서점에 가서 가슴 두근거리며 잡지에 박혀있는 내 이름을 확인하고는 기뻐서 큰 소리를 질렀던 기억이 난다잠깐 읽다가 폐휴지함에 던졌다끌어안고 있을 의미를 못 느꼈다그렇게 한 권 한 권 버려나가다가 이 J사외보를 발견했다

  그래기억난다한빛한솔이가 어렸을 때 가족회의를 했었다정기적으로 하자고 약속했는데 남편이 번번이 늦게 들어와 많이 다투었다지금 생각해보니 번번이가 아니고 어쩔 수 없이였는데 남편을 많이 다구쳤었다시민단체 일이라는 게 지금도 밤낮이 없듯이 전교조 일도 그런데 내가 생각이 부족했었다두 아들에게도 아빠를 이해시키지 않았던 것이 많이 후회스럽다

  그립다한빛이가 똘망똘망 사회를 보고 한솔이가 삐뚤빼뚤 회의록을 적었다참 엉뚱한 주제로 회의가 진행되기도 했지만 네 명이 거실에서 손을 들어 의견을 말하고 결정을 해야 할 때는 다수결로 정하던 기억들이 풍경처럼 스쳐간다그때도 아빠는 항상 코너에 몰렸고 아빠의 의견은 매번 다수결에서 밀렸다무조건 아들들 의견에 동의하는 나의 비민주적인(?) 의사결정 때문이었다그래도 아빠는 두 아들의 말도 안 되는 제안들을 수용했다

  어딘가 이 책더미 속에 그 가족 회의록이 있겠구나그동안 잘 정리하면서 살았으면 한빛한테도 보여주며 한바탕 웃었을 텐데... 참 따듯한 기억이지만 이제는 한빛과 공유할 수가 없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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