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자
2019-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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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 김혜영


아빠(4)

  


  한빛아빠가 한 달 전부터 새벽에 국선도를 다닌다한참 전부터 어깨가 아파 팔 올리기를 힘들어 하더니 얼마 전부터는 허리가 아파 조심조심 걸어야 했다체력에 대해서는 자신만만하던 한빛아빠였는데 MRI를 찍고 의사의 수술권유를 듣고는 덜컥 겁이 났나보다스스로 국선도를 나가기 시작했다사실 그동안 마음도 힘든데 센터 일에 집중하느라 자신을 돌보지 않는 생활이 불안불안했었다그래서 국선도를 끝내고 들어오는 한빛아빠를 보며 나는 감사한다한빛아빠가 조금씩 자신을 돌아보는 것 같아서이다

  나는 작년(2018)에 예수회에서 하는 자녀사별자모임(하늘마음모임)에 나갔다전문적인 상담센터는 아니지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 신청했다. 10회 모임에 나가면서 그나마 숨을 쉴 수 있었다한빛이 떠난 그 해 가을 이후 나는 모든 감정을 다 버렸다문을 닫아걸었다관계를 먼저 차단시켰다아무렇지도 않은 듯 출근하고 퇴근했다철저한 이중적인 삶에 나스스로 놀랐다어느 날은 진짜 나는 어디에 있나 허둥대며 찾기도 했다나는 날마다 삭아가고 낡아갔지만 당연하게 받아들였다한빛이 없는데 이까짓 내 삶과 감정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한빛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 외에는 나에겐 아무것도 없었다아무리 애를 써도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나도 한빛 아빠도 안다한빛아빠 해직시절 거리에서 그렇게 피터지게 외쳤던 해직교사 원상복직의 원상이란 단어가 실은 대단한 희망의 언어였음을 새삼 몸으로 깨달았다

  어느 날 한빛아빠가 나도 이번에 하늘마음모임에 나가려구지난 주 주보에 나왔는데 다음 주에 사전모임을 한다고 하네.” 나는 깜짝 놀랐다잘못 들었나 했다내가 가졌던 하늘마음모임 단체 카톡방에 이 소식을 알리니 모두들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어떻게 그런 결정을 하게 되었냐고 하니 자신이 살아야지 한빛도 살릴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신앙적으로 맞는 말인지는 모르나 구원받고 싶다고 했다나는 가슴이 뭉클했다작년에 그렇게 같이 가자고 설득했지만 끝까지 안 가고 버텼는데

  그 이유를 1년이 지나서 이야기 했다그동안 한빛아빠의 삶의 목표는 오직 한 가지였다고 했다한빛 죽음의 의미를 살리는 일오직 하나 뿐이었다고 했다아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으로 괴로워하는 것도 사치였고 상담을 받으며 슬픔을 승화시키는 것도 개인적인 욕심이라고 했다자신이 어떻게 살아남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고 했다한빛에게사랑하는 귀한 아들 한빛에게 너무 미안했다고 했다아빠로서 한빛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은 한빛이 고민했던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 한빛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는 것만이라고 했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를 세우고 한빛이 이루고자 했던 일방송노동현장을 개선하기 위해 온 힘을 다 쏟아야 했기에 자신의 몸을 돌보고 마음을 추스를 시간은 버렸다고 했다

  그랬구나나는 그것도 모르고 한빛 아빠가 나보다는 하루라도 오래 살아야 한빛이 남긴 숙제도 하고 한솔한테도 짐이 안 되리란 생각에 건강 챙기라고 잔소리만 했다나는 한빛아빠가 한빛을 자기 목숨보다 더 사랑했고 소중하게 여겼다는 것을 인정한다한빛아빠는 한빛에게 너는 이렇게 살았으면 좋겠다하며 자기의 소망을 얘기하고 강요하고 싶어했다그러나 한 번 핀잔을 받은 뒤로는 속으로만 안타까워했지 두 번을 한빛한테 말하지 않았다그에 비하면 엄마인 나는 현명했다아니 영악했다한빛의 눈치를 살피며 할 말 안 할 말을 가렸다그러니 한빛한테 엄마는 항상 100점이었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한빛도 아빠의 진심을 알고 있었고 아빠가 엄마보다 훨씬 멋지고 자신을 정말 사랑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을내가 기죽고 삐칠 까봐 배려했다는 것을 안다한빛이 남기고 간 고양이 푸리를 보면 분명하게 드러난다아침저녁마다 푸리가 좋아하는 통조림을 주는 집사는 나니까 푸리가 나만 졸졸 따라다닐 것 같은데 아니다한빛아빠한테만 냥냥대며 말도 걸고 간식을 달라고 애교 부린다한빛아빠 발소리가 들리면 현관 문 앞에 예쁘게 앉아 기다리기도 한다화장실청소 등 아빠집사가 엄마집사보다 굳은 일을 하기도 하지만 속마음이 누가 깊은 지를 이미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고양이 푸리가 이런데 한빛이 아빠의 사랑을 몰랐으랴한빛아, “엄마 기 살려줘서 고마워하고 말할 걸또 미뤘구나

  냉온욕을 혼자서도 즐기던 한빛아빠가 요즘은 도고 시골집에 와서도 온천을 안 간다는 것을 알았다한빛과의 추억때문이었다일요일이면 아버지와 어린 아들 둘이 목욕탕에 가는 뒷모습은 얼마나 흐뭇한가성장해서도 나이 든 아버지와 함께 간 목욕탕 이야기는 언제나 가슴 뭉클하지 않은가그런데 한빛은 목욕탕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4학년때인가 셋이 나란히 목욕을 갔는데 한빛이 혼자서 금방 돌아왔다나중에 한빛이가 함께하는 목욕이 싫어 집에 두고 온 것이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알았다우리는 벌써 사춘기인가이건 뭐지하면서 한빛의 변화를 웃으면서 인정했다이후 아빠와 함께 목욕 갈 기회가 거의 없었고 서로 등을 밀어주는 아름다운 풍경도 가질 수 없었다

  한빛이가 하늘나라로 떠나기 전에 같이 도고온천에 갔었는데 등을 닦아주겠다고 하더랜다한빛아빠는 매번 혼자 하다가 아들의 손길이 닿는데 어찌나 다정한지 그 행복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했다아빠도 다 큰 성인이 된 한빛 등에 비누칠을 했던 마지막 기억이 지금까지도 따듯하게 남아있다고 했다한빛이 떠나고 1년 후제대한 한솔이가 형처럼 등을 닦아주었을 때 한빛생각이 나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고 했다다행히 목욕탕은 아무도 눈치 못 채게 마음껏 울 수 있어서 한참을 울었다고 했다

  한빛아빠는 가장 마음이 아프면서도 마음껏 울 수 있는 곳이 오산휴게소라고 했다한빛이 오산에서 군대생활을 할 때 오며 가며 들렀던 곳이기에 한빛생각이 가장 뚜렷하게 남아있다고 했다혼자 도고온천 집에 다녀올 때면 고속도로에서 마음껏 울고 오산휴게소에서 또 한바탕 운다고 한다. “길이 막히네오산휴게소야하면 나역시 가슴이 미어진다교통난을 핑계대는 한빛아빠의 감정이 어떨지를 알기 때문이다나는 매일 울고 징징대면서 한빛아빠는 당당하길 바라는 것이 어불성설인 줄 알면서도 힘들다

  그래서 한빛아빠가 술을 먹을 때 매우 불안하다한빛아빠는 나처럼 아무 때나 아무 곳에서나 울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이해하지만 마음이 아프다술에 취해 늦게 들어온 날이면 한빛아빠는 내가 잠들었는지를 확인하고 한빛 방에 들어가 한참을 운다. “한빛아 보고 싶다보고 싶다하며 운다울다가 지쳐 잠이 들어서도 한빛아 보고 싶다며 잠꼬대를 한다. “한빛아 엄마는 너 없이 어떻게 살지?”하고 우는 나는 항상 엄마가 먼저였다. ‘엄마가 어떻게 살지를 한빛에게 물었다그러나 한빛아빠는 항상 너가 먼저였다는 것 알지아빠에게 너한빛은 항상 아빠 자신보다 더 사랑스런 존재였고 귀한 아들이었단다

 아빠가 건강하시길 기도해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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