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 김혜영
아빠(4)
한빛아빠가 한 달 전부터 새벽에 국선도를 다닌다. 한참 전부터 어깨가 아파 팔 올리기를 힘들어 하더니 얼마 전부터는 허리가 아파 조심조심 걸어야 했다. 체력에 대해서는 자신만만하던 한빛아빠였는데 MRI를 찍고 의사의 수술권유를 듣고는 덜컥 겁이 났나보다. 스스로 국선도를 나가기 시작했다. 사실 그동안 마음도 힘든데 센터 일에 집중하느라 자신을 돌보지 않는 생활이 불안불안했었다. 그래서 국선도를 끝내고 들어오는 한빛아빠를 보며 나는 감사한다. 한빛아빠가 조금씩 자신을 돌아보는 것 같아서이다.
나는 작년(2018년)에 예수회에서 하는 자녀사별자모임(하늘마음모임)에 나갔다. 전문적인 상담센터는 아니지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 신청했다. 10회 모임에 나가면서 그나마 숨을 쉴 수 있었다. 한빛이 떠난 그 해 가을 이후 나는 모든 감정을 다 버렸다. 문을 닫아걸었다. 관계를 먼저 차단시켰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출근하고 퇴근했다. 철저한 이중적인 삶에 나스스로 놀랐다. 어느 날은 진짜 나는 어디에 있나 허둥대며 찾기도 했다. 나는 날마다 삭아가고 낡아갔지만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한빛이 없는데 이까짓 내 삶과 감정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한빛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 외에는 나에겐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나도 한빛 아빠도 안다. 한빛아빠 해직시절 거리에서 그렇게 피터지게 외쳤던 ‘해직교사 원상복직’의 ‘원상’이란 단어가 실은 대단한 희망의 언어였음을 새삼 몸으로 깨달았다.
어느 날 한빛아빠가 “나도 이번에 하늘마음모임에 나가려구. 지난 주 주보에 나왔는데 다음 주에 사전모임을 한다고 하네.” 나는 깜짝 놀랐다. 잘못 들었나 했다. 내가 가졌던 하늘마음모임 단체 카톡방에 이 소식을 알리니 모두들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어떻게 그런 결정을 하게 되었냐고 하니 자신이 살아야지 한빛도 살릴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신앙적으로 맞는 말인지는 모르나 구원받고 싶다고 했다. 나는 가슴이 뭉클했다. 작년에 그렇게 같이 가자고 설득했지만 끝까지 안 가고 버텼는데.
그 이유를 1년이 지나서 이야기 했다. 그동안 한빛아빠의 삶의 목표는 오직 한 가지였다고 했다. 한빛 죽음의 의미를 살리는 일. 오직 하나 뿐이었다고 했다. 아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으로 괴로워하는 것도 사치였고 상담을 받으며 슬픔을 승화시키는 것도 개인적인 욕심이라고 했다. 자신이 어떻게 살아남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고 했다. 한빛에게, 사랑하는 귀한 아들 한빛에게 너무 미안했다고 했다. 아빠로서 한빛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은 한빛이 고민했던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 한빛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는 것만이라고 했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를 세우고 한빛이 이루고자 했던 일, 방송노동현장을 개선하기 위해 온 힘을 다 쏟아야 했기에 자신의 몸을 돌보고 마음을 추스를 시간은 버렸다고 했다.
그랬구나. 나는 그것도 모르고 한빛 아빠가 나보다는 하루라도 오래 살아야 한빛이 남긴 숙제도 하고 한솔한테도 짐이 안 되리란 생각에 건강 챙기라고 잔소리만 했다. 나는 한빛아빠가 한빛을 자기 목숨보다 더 사랑했고 소중하게 여겼다는 것을 인정한다. 한빛아빠는 한빛에게 너는 이렇게 살았으면 좋겠다하며 자기의 소망을 얘기하고 강요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한 번 핀잔을 받은 뒤로는 속으로만 안타까워했지 두 번을 한빛한테 말하지 않았다. 그에 비하면 엄마인 나는 현명했다. 아니 영악했다. 한빛의 눈치를 살피며 할 말 안 할 말을 가렸다. 그러니 한빛한테 엄마는 항상 100점이었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한빛도 아빠의 진심을 알고 있었고 아빠가 엄마보다 훨씬 멋지고 자신을 정말 사랑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을. 내가 기죽고 삐칠 까봐 배려했다는 것을 안다. 한빛이 남기고 간 고양이 푸리를 보면 분명하게 드러난다. 아침저녁마다 푸리가 좋아하는 통조림을 주는 집사는 나니까 푸리가 나만 졸졸 따라다닐 것 같은데 아니다. 한빛아빠한테만 냥냥대며 말도 걸고 간식을 달라고 애교 부린다. 한빛아빠 발소리가 들리면 현관 문 앞에 예쁘게 앉아 기다리기도 한다. 화장실청소 등 아빠집사가 엄마집사보다 굳은 일을 하기도 하지만 속마음이 누가 깊은 지를 이미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고양이 푸리가 이런데 한빛이 아빠의 사랑을 몰랐으랴? 한빛아, “엄마 기 살려줘서 고마워”하고 말할 걸. 또 미뤘구나.
냉온욕을 혼자서도 즐기던 한빛아빠가 요즘은 도고 시골집에 와서도 온천을 안 간다는 것을 알았다. 한빛과의 추억때문이었다. 일요일이면 아버지와 어린 아들 둘이 목욕탕에 가는 뒷모습은 얼마나 흐뭇한가? 성장해서도 나이 든 아버지와 함께 간 목욕탕 이야기는 언제나 가슴 뭉클하지 않은가? 그런데 한빛은 목욕탕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4학년때인가 셋이 나란히 목욕을 갔는데 한빛이 혼자서 금방 돌아왔다. 나중에 한빛이가 함께하는 목욕이 싫어 집에 두고 온 것이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벌써 사춘기인가? 이건 뭐지? 하면서 한빛의 변화를 웃으면서 인정했다. 이후 아빠와 함께 목욕 갈 기회가 거의 없었고 서로 등을 밀어주는 아름다운 풍경도 가질 수 없었다.
한빛이가 하늘나라로 떠나기 전에 같이 도고온천에 갔었는데 등을 닦아주겠다고 하더랜다. 한빛아빠는 매번 혼자 하다가 아들의 손길이 닿는데 어찌나 다정한지 그 행복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했다. 아빠도 다 큰 성인이 된 한빛 등에 비누칠을 했던 마지막 기억이 지금까지도 따듯하게 남아있다고 했다. 한빛이 떠나고 1년 후. 제대한 한솔이가 형처럼 등을 닦아주었을 때 한빛생각이 나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고 했다. 다행히 목욕탕은 아무도 눈치 못 채게 마음껏 울 수 있어서 한참을 울었다고 했다.
한빛아빠는 가장 마음이 아프면서도 마음껏 울 수 있는 곳이 오산휴게소라고 했다. 한빛이 오산에서 군대생활을 할 때 오며 가며 들렀던 곳이기에 한빛생각이 가장 뚜렷하게 남아있다고 했다. 혼자 도고온천 집에 다녀올 때면 고속도로에서 마음껏 울고 오산휴게소에서 또 한바탕 운다고 한다. “길이 막히네. 오산휴게소야”하면 나역시 가슴이 미어진다. 교통난을 핑계대는 한빛아빠의 감정이 어떨지를 알기 때문이다. 나는 매일 울고 징징대면서 한빛아빠는 당당하길 바라는 것이 어불성설인 줄 알면서도 힘들다.
그래서 한빛아빠가 술을 먹을 때 매우 불안하다. 한빛아빠는 나처럼 아무 때나 아무 곳에서나 울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이해하지만 마음이 아프다. 술에 취해 늦게 들어온 날이면 한빛아빠는 내가 잠들었는지를 확인하고 한빛 방에 들어가 한참을 운다. “한빛아 보고 싶다. 보고 싶다”하며 운다. 울다가 지쳐 잠이 들어서도 “한빛아 보고 싶다”며 잠꼬대를 한다. “한빛아 엄마는 너 없이 어떻게 살지?”하고 우는 나는 항상 ‘엄마’가 먼저였다. ‘엄마가 어떻게 살지’를 한빛에게 물었다. 그러나 한빛, 아빠는 항상 너가 먼저였다는 것 알지? 아빠에게 너, 한빛은 항상 아빠 자신보다 더 사랑스런 존재였고 귀한 아들이었단다.
아빠가 건강하시길 기도해주렴.
- 엄마 김혜영
아빠(4)
한빛아빠가 한 달 전부터 새벽에 국선도를 다닌다. 한참 전부터 어깨가 아파 팔 올리기를 힘들어 하더니 얼마 전부터는 허리가 아파 조심조심 걸어야 했다. 체력에 대해서는 자신만만하던 한빛아빠였는데 MRI를 찍고 의사의 수술권유를 듣고는 덜컥 겁이 났나보다. 스스로 국선도를 나가기 시작했다. 사실 그동안 마음도 힘든데 센터 일에 집중하느라 자신을 돌보지 않는 생활이 불안불안했었다. 그래서 국선도를 끝내고 들어오는 한빛아빠를 보며 나는 감사한다. 한빛아빠가 조금씩 자신을 돌아보는 것 같아서이다.
나는 작년(2018년)에 예수회에서 하는 자녀사별자모임(하늘마음모임)에 나갔다. 전문적인 상담센터는 아니지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 신청했다. 10회 모임에 나가면서 그나마 숨을 쉴 수 있었다. 한빛이 떠난 그 해 가을 이후 나는 모든 감정을 다 버렸다. 문을 닫아걸었다. 관계를 먼저 차단시켰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출근하고 퇴근했다. 철저한 이중적인 삶에 나스스로 놀랐다. 어느 날은 진짜 나는 어디에 있나 허둥대며 찾기도 했다. 나는 날마다 삭아가고 낡아갔지만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한빛이 없는데 이까짓 내 삶과 감정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한빛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 외에는 나에겐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나도 한빛 아빠도 안다. 한빛아빠 해직시절 거리에서 그렇게 피터지게 외쳤던 ‘해직교사 원상복직’의 ‘원상’이란 단어가 실은 대단한 희망의 언어였음을 새삼 몸으로 깨달았다.
어느 날 한빛아빠가 “나도 이번에 하늘마음모임에 나가려구. 지난 주 주보에 나왔는데 다음 주에 사전모임을 한다고 하네.” 나는 깜짝 놀랐다. 잘못 들었나 했다. 내가 가졌던 하늘마음모임 단체 카톡방에 이 소식을 알리니 모두들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어떻게 그런 결정을 하게 되었냐고 하니 자신이 살아야지 한빛도 살릴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신앙적으로 맞는 말인지는 모르나 구원받고 싶다고 했다. 나는 가슴이 뭉클했다. 작년에 그렇게 같이 가자고 설득했지만 끝까지 안 가고 버텼는데.
그 이유를 1년이 지나서 이야기 했다. 그동안 한빛아빠의 삶의 목표는 오직 한 가지였다고 했다. 한빛 죽음의 의미를 살리는 일. 오직 하나 뿐이었다고 했다. 아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으로 괴로워하는 것도 사치였고 상담을 받으며 슬픔을 승화시키는 것도 개인적인 욕심이라고 했다. 자신이 어떻게 살아남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고 했다. 한빛에게, 사랑하는 귀한 아들 한빛에게 너무 미안했다고 했다. 아빠로서 한빛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은 한빛이 고민했던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 한빛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는 것만이라고 했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를 세우고 한빛이 이루고자 했던 일, 방송노동현장을 개선하기 위해 온 힘을 다 쏟아야 했기에 자신의 몸을 돌보고 마음을 추스를 시간은 버렸다고 했다.
그랬구나. 나는 그것도 모르고 한빛 아빠가 나보다는 하루라도 오래 살아야 한빛이 남긴 숙제도 하고 한솔한테도 짐이 안 되리란 생각에 건강 챙기라고 잔소리만 했다. 나는 한빛아빠가 한빛을 자기 목숨보다 더 사랑했고 소중하게 여겼다는 것을 인정한다. 한빛아빠는 한빛에게 너는 이렇게 살았으면 좋겠다하며 자기의 소망을 얘기하고 강요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한 번 핀잔을 받은 뒤로는 속으로만 안타까워했지 두 번을 한빛한테 말하지 않았다. 그에 비하면 엄마인 나는 현명했다. 아니 영악했다. 한빛의 눈치를 살피며 할 말 안 할 말을 가렸다. 그러니 한빛한테 엄마는 항상 100점이었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한빛도 아빠의 진심을 알고 있었고 아빠가 엄마보다 훨씬 멋지고 자신을 정말 사랑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을. 내가 기죽고 삐칠 까봐 배려했다는 것을 안다. 한빛이 남기고 간 고양이 푸리를 보면 분명하게 드러난다. 아침저녁마다 푸리가 좋아하는 통조림을 주는 집사는 나니까 푸리가 나만 졸졸 따라다닐 것 같은데 아니다. 한빛아빠한테만 냥냥대며 말도 걸고 간식을 달라고 애교 부린다. 한빛아빠 발소리가 들리면 현관 문 앞에 예쁘게 앉아 기다리기도 한다. 화장실청소 등 아빠집사가 엄마집사보다 굳은 일을 하기도 하지만 속마음이 누가 깊은 지를 이미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고양이 푸리가 이런데 한빛이 아빠의 사랑을 몰랐으랴? 한빛아, “엄마 기 살려줘서 고마워”하고 말할 걸. 또 미뤘구나.
냉온욕을 혼자서도 즐기던 한빛아빠가 요즘은 도고 시골집에 와서도 온천을 안 간다는 것을 알았다. 한빛과의 추억때문이었다. 일요일이면 아버지와 어린 아들 둘이 목욕탕에 가는 뒷모습은 얼마나 흐뭇한가? 성장해서도 나이 든 아버지와 함께 간 목욕탕 이야기는 언제나 가슴 뭉클하지 않은가? 그런데 한빛은 목욕탕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4학년때인가 셋이 나란히 목욕을 갔는데 한빛이 혼자서 금방 돌아왔다. 나중에 한빛이가 함께하는 목욕이 싫어 집에 두고 온 것이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벌써 사춘기인가? 이건 뭐지? 하면서 한빛의 변화를 웃으면서 인정했다. 이후 아빠와 함께 목욕 갈 기회가 거의 없었고 서로 등을 밀어주는 아름다운 풍경도 가질 수 없었다.
한빛이가 하늘나라로 떠나기 전에 같이 도고온천에 갔었는데 등을 닦아주겠다고 하더랜다. 한빛아빠는 매번 혼자 하다가 아들의 손길이 닿는데 어찌나 다정한지 그 행복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했다. 아빠도 다 큰 성인이 된 한빛 등에 비누칠을 했던 마지막 기억이 지금까지도 따듯하게 남아있다고 했다. 한빛이 떠나고 1년 후. 제대한 한솔이가 형처럼 등을 닦아주었을 때 한빛생각이 나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고 했다. 다행히 목욕탕은 아무도 눈치 못 채게 마음껏 울 수 있어서 한참을 울었다고 했다.
한빛아빠는 가장 마음이 아프면서도 마음껏 울 수 있는 곳이 오산휴게소라고 했다. 한빛이 오산에서 군대생활을 할 때 오며 가며 들렀던 곳이기에 한빛생각이 가장 뚜렷하게 남아있다고 했다. 혼자 도고온천 집에 다녀올 때면 고속도로에서 마음껏 울고 오산휴게소에서 또 한바탕 운다고 한다. “길이 막히네. 오산휴게소야”하면 나역시 가슴이 미어진다. 교통난을 핑계대는 한빛아빠의 감정이 어떨지를 알기 때문이다. 나는 매일 울고 징징대면서 한빛아빠는 당당하길 바라는 것이 어불성설인 줄 알면서도 힘들다.
그래서 한빛아빠가 술을 먹을 때 매우 불안하다. 한빛아빠는 나처럼 아무 때나 아무 곳에서나 울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이해하지만 마음이 아프다. 술에 취해 늦게 들어온 날이면 한빛아빠는 내가 잠들었는지를 확인하고 한빛 방에 들어가 한참을 운다. “한빛아 보고 싶다. 보고 싶다”하며 운다. 울다가 지쳐 잠이 들어서도 “한빛아 보고 싶다”며 잠꼬대를 한다. “한빛아 엄마는 너 없이 어떻게 살지?”하고 우는 나는 항상 ‘엄마’가 먼저였다. ‘엄마가 어떻게 살지’를 한빛에게 물었다. 그러나 한빛, 아빠는 항상 너가 먼저였다는 것 알지? 아빠에게 너, 한빛은 항상 아빠 자신보다 더 사랑스런 존재였고 귀한 아들이었단다.
아빠가 건강하시길 기도해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