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했습니다!

관리자
2019-07-16
조회수 1114

- 노경호


지난 4개월간 센터에서 근무하며 작은 힘이라도 보탤 수 있었던 것은 여러 모로 큰 행운이었습니다이제 유학을 떠나며 센터 역시 잠시 떠납니다이용관 이사장님을 비롯한 동료 이사님들한빛센터 사무국 상근자분들그리고 김혜영 어머님께 이 지면을 빌어 인사를 올립니다.


17년 4월 대책위가 처음으로 한빛PD의 죽음을 공론화했을 때몇몇 친구들과 함께 한빛PD 추모공간을 학교에 마련한 것이 한빛PD와 인연을 맺게 된 시작이었습니다우리는 한빛PD가 무엇을 겪었고무엇을 고민하다 죽었는지 분명히 하기 위해단지 친구의 형의 죽음을 위로하는 것만으로 이 공간의 의미를 설명하고 싶지 않았습니다그것이 온 힘을 다해 싸움에 임했던 나의 친구 이한솔과 부모님의 뜻일 것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그렇게 싸우기를 두 달카메라 뒤에 숨겨진 참혹한 진실을 밝혀내고 한빛PD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라는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싸움이 결국 CJ ENM의 사과로 끝이 났습니다그 끝이란 동시에 새로운 시작을 의미했고곧 한빛추모법인 결성이 분주하게 이어졌습니다그리고 한빛PD의 이름을 딴 노동인권센터가 만들어져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대단히 뜻깊은 일들의 연속이었다고 하겠습니다.


2년의 시간이 지나 이제 많은 사람들은 방송제작현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노동자들이 스스로 문제 있다고 외치기 시작했고한빛센터가 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곧 방송스태프들의 노조도 세워졌습니다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다고 말하며 보낸 시간 끝에이제 방송제작현장에아직은 지상파 방송사에 국한되긴 하지만표준근로계약서가 도입되는 데까지 왔습니다모든 게 해결되었다고 말하긴 이르다고 하겠지만이 몇 걸음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노력해왔는지를 멀리서나마 지켜봐온 저로서는 그 하나하나의 무게가 결코 가볍게 느껴지지 않습니다그 분들에게 아낌없는 찬사와 응원을 보냅니다.


사실 한빛추모법인준비모임에서 썼던 혼술남녀 조연출 사망 사건의 그 해결이라는 단어가 늘 아팠습니다. ‘한빛센터가 잘 되고 있다고 여러 사람들에게 뿌듯함을 실어 자랑할 때마다 무언가 걸리기도 했습니다분명 잘 된 일인데그 이유는 바로 한빛PD를 떠나보낸 가족들입니다한빛센터를 통해 이전에는 보지 않았던 수많은 유가족의 아픔을 비로소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그에 비해 우리 서로가 얼마나 슬픔을 위로하는 법을 잊고(혹은 배우지 못하고살아왔는지도 함께 깨닫게 되었습니다세월호 유가족들이 어떤 모욕과 고통을 당하며 버티고 있는지 전국민이 화면으로 전부 다 지켜본 우리였습니다죽음을 의미있게 여기고 그 슬픔을 함께 나누려 시도함으로써 인간이 인간답게 존재하는 법이기에지금까지 우리는 반쯤만 인간이었던 셈입니다이제 똑바로 위로하는 일이야말로 남겨진 우리 모두에게 아마도 삶을 건 숙제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한빛PD의 부모님은 가톨릭 신자이십니다. 성당을 다니다가 다니지 않았다가 했다는 한빛PD가 어려웠던 때에 신에게 기도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지금 한빛PD는 그가 다녔던 본당에 착한 마음의 신앙인들이 믿는 영원한 안식을 누리며 잠들어 있습니다사실 유일하며 선한 신의 존재를 가르치는 종교는 늘 왜 선한 신이 존재하는 이 세상에 이렇게나 끔찍한 악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마주하게 됩니다이른바 이 악의 문제에 근거해 한빛PD의 죽음을 전능한 신의 어떤 신비로 남겨두었을 가족들의 고뇌를 듣고 읽은 일이 있어이 문제는 신학적일 뿐 아니라 실존적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여기에 조심스럽게 또 하나의 위로를 보탭니다. 17년 4월 대책위가 한창 활동하던 때 학위논문을 쓰고 있던 나에게 문득 제가 공부하는 고전의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죽음을 목전에 둔 소크라테스가 동료 시민들 앞에서 자신의 확신을 밝히는 대목입니다이 구절에는 삶은 선이고 죽음은 악이라는 이분법을 벗어나죽음을 통해 삶에 더 주목할 줄 아는 어떤 정신이 담겨 있습니다이미 이한솔에게 전한 적이 있는 이 구절을 여기에 옮깁니다.

 


훌륭한 사람에게는 살아서든 삶을 마치고 나서든

어떤 나쁜 것도 없으며,

신들이 그의 일들을 소홀히 하지 않습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33D1-3

 


비록 한빛PD를 생전에 만난 적은 없지만부모님이 존경하고 존중했던 아들이자 그를 기억하는 모든 사람들특히 한빛PD 없이는 설명되지 않을(왜냐하면 모든 동생은 형 없이는 설명될 수 없는 존재이므로나의 친구 이한솔을 보며 알게 된 바에 따르면한빛PD는 참 훌륭한 사람으로서 삶을 살다가 마쳤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그렇기에 나는 이 말이 먼 훗날 부활에 대한 약속만큼이나 남겨진 우리를 위로해줄 수 있으리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한빛센터가 앞으로 맡겨진 것을 모두 해내어더 이상 할 일이 없어지는 때가 어서 오기를 기대하겠습니다.

모두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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