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경호
지난 4개월간 센터에서 근무하며 작은 힘이라도 보탤 수 있었던 것은 여러 모로 큰 행운이었습니다. 이제 유학을 떠나며 센터 역시 잠시 떠납니다. 이용관 이사장님을 비롯한 동료 이사님들, 한빛센터 사무국 상근자분들, 그리고 김혜영 어머님께 이 지면을 빌어 인사를 올립니다.
17년 4월 대책위가 처음으로 한빛PD의 죽음을 공론화했을 때, 몇몇 친구들과 함께 한빛PD 추모공간을 학교에 마련한 것이 한빛PD와 인연을 맺게 된 시작이었습니다. 우리는 한빛PD가 무엇을 겪었고, 무엇을 고민하다 죽었는지 분명히 하기 위해, 단지 ‘친구의 형’의 죽음을 위로하는 것만으로 이 공간의 의미를 설명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온 힘을 다해 싸움에 임했던 나의 친구 이한솔과 부모님의 뜻일 것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싸우기를 두 달, 카메라 뒤에 숨겨진 참혹한 진실을 밝혀내고 한빛PD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라는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싸움이 결국 CJ ENM의 사과로 끝이 났습니다. 그 끝이란 동시에 새로운 시작을 의미했고, 곧 한빛추모법인 결성이 분주하게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한빛PD의 이름을 딴 노동인권센터가 만들어져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대단히 뜻깊은 일들의 연속이었다고 하겠습니다.
2년의 시간이 지나 이제 많은 사람들은 방송제작현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노동자들이 스스로 ‘문제 있다’고 외치기 시작했고, 한빛센터가 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곧 방송스태프들의 노조도 세워졌습니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다고 말하며 보낸 시간 끝에, 이제 방송제작현장에, 아직은 지상파 방송사에 국한되긴 하지만, 표준근로계약서가 도입되는 데까지 왔습니다. 모든 게 해결되었다고 말하긴 이르다고 하겠지만, 이 몇 걸음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노력해왔는지를 멀리서나마 지켜봐온 저로서는 그 하나하나의 무게가 결코 가볍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 분들에게 아낌없는 찬사와 응원을 보냅니다.
사실 한빛추모법인준비모임에서 썼던 혼술남녀 조연출 사망 사건의 그 ‘해결’이라는 단어가 늘 아팠습니다. ‘한빛센터가 잘 되고 있다’고 여러 사람들에게 뿌듯함을 실어 자랑할 때마다 무언가 걸리기도 했습니다. 분명 잘 된 일인데! 그 이유는 바로 한빛PD를 떠나보낸 가족들입니다. 한빛센터를 통해 이전에는 보지 않았던 수많은 ‘유가족’의 아픔을 비로소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에 비해 우리 서로가 얼마나 슬픔을 위로하는 법을 잊고(혹은 배우지 못하고) 살아왔는지도 함께 깨닫게 되었습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어떤 모욕과 고통을 당하며 버티고 있는지 전국민이 화면으로 전부 다 지켜본 우리였습니다. 죽음을 의미있게 여기고 그 슬픔을 함께 나누려 시도함으로써 인간이 인간답게 존재하는 법이기에, 지금까지 우리는 반쯤만 인간이었던 셈입니다. 이제 똑바로 위로하는 일이야말로 남겨진 우리 모두에게 아마도 삶을 건 숙제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한빛PD의 부모님은 가톨릭 신자이십니다. 성당을 다니다가 다니지 않았다가 했다는 한빛PD가 어려웠던 때에 신에게 기도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 한빛PD는 그가 다녔던 본당에 착한 마음의 신앙인들이 믿는 영원한 안식을 누리며 잠들어 있습니다. 사실 유일하며 선한 신의 존재를 가르치는 종교는 늘 ‘왜 선한 신이 존재하는 이 세상에 이렇게나 끔찍한 악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른바 이 ‘악의 문제’에 근거해 한빛PD의 죽음을 전능한 신의 어떤 신비로 남겨두었을 가족들의 고뇌를 듣고 읽은 일이 있어, 이 문제는 신학적일 뿐 아니라 실존적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여기에 조심스럽게 또 하나의 위로를 보탭니다. 17년 4월 대책위가 한창 활동하던 때 학위논문을 쓰고 있던 나에게 문득 제가 공부하는 고전의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죽음을 목전에 둔 소크라테스가 동료 시민들 앞에서 자신의 확신을 밝히는 대목입니다. 이 구절에는 삶은 선이고 죽음은 악이라는 이분법을 벗어나, 죽음을 통해 삶에 더 주목할 줄 아는 어떤 정신이 담겨 있습니다. 이미 이한솔에게 전한 적이 있는 이 구절을 여기에 옮깁니다.
훌륭한 사람에게는 살아서든 삶을 마치고 나서든
어떤 나쁜 것도 없으며,
신들이 그의 일들을 소홀히 하지 않습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33D1-3
비록 한빛PD를 생전에 만난 적은 없지만, 부모님이 존경하고 존중했던 아들이자 그를 기억하는 모든 사람들, 특히 한빛PD 없이는 설명되지 않을(왜냐하면 모든 동생은 형 없이는 설명될 수 없는 존재이므로) 나의 친구 이한솔을 보며 알게 된 바에 따르면, 한빛PD는 참 훌륭한 사람으로서 삶을 살다가 마쳤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나는 이 말이 먼 훗날 부활에 대한 약속만큼이나 남겨진 우리를 위로해줄 수 있으리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한빛센터가 앞으로 맡겨진 것을 모두 해내어, 더 이상 할 일이 없어지는 때가 어서 오기를 기대하겠습니다.
모두 감사했습니다!
- 노경호
지난 4개월간 센터에서 근무하며 작은 힘이라도 보탤 수 있었던 것은 여러 모로 큰 행운이었습니다. 이제 유학을 떠나며 센터 역시 잠시 떠납니다. 이용관 이사장님을 비롯한 동료 이사님들, 한빛센터 사무국 상근자분들, 그리고 김혜영 어머님께 이 지면을 빌어 인사를 올립니다.
17년 4월 대책위가 처음으로 한빛PD의 죽음을 공론화했을 때, 몇몇 친구들과 함께 한빛PD 추모공간을 학교에 마련한 것이 한빛PD와 인연을 맺게 된 시작이었습니다. 우리는 한빛PD가 무엇을 겪었고, 무엇을 고민하다 죽었는지 분명히 하기 위해, 단지 ‘친구의 형’의 죽음을 위로하는 것만으로 이 공간의 의미를 설명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온 힘을 다해 싸움에 임했던 나의 친구 이한솔과 부모님의 뜻일 것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싸우기를 두 달, 카메라 뒤에 숨겨진 참혹한 진실을 밝혀내고 한빛PD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라는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싸움이 결국 CJ ENM의 사과로 끝이 났습니다. 그 끝이란 동시에 새로운 시작을 의미했고, 곧 한빛추모법인 결성이 분주하게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한빛PD의 이름을 딴 노동인권센터가 만들어져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대단히 뜻깊은 일들의 연속이었다고 하겠습니다.
2년의 시간이 지나 이제 많은 사람들은 방송제작현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노동자들이 스스로 ‘문제 있다’고 외치기 시작했고, 한빛센터가 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곧 방송스태프들의 노조도 세워졌습니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다고 말하며 보낸 시간 끝에, 이제 방송제작현장에, 아직은 지상파 방송사에 국한되긴 하지만, 표준근로계약서가 도입되는 데까지 왔습니다. 모든 게 해결되었다고 말하긴 이르다고 하겠지만, 이 몇 걸음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노력해왔는지를 멀리서나마 지켜봐온 저로서는 그 하나하나의 무게가 결코 가볍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 분들에게 아낌없는 찬사와 응원을 보냅니다.
사실 한빛추모법인준비모임에서 썼던 혼술남녀 조연출 사망 사건의 그 ‘해결’이라는 단어가 늘 아팠습니다. ‘한빛센터가 잘 되고 있다’고 여러 사람들에게 뿌듯함을 실어 자랑할 때마다 무언가 걸리기도 했습니다. 분명 잘 된 일인데! 그 이유는 바로 한빛PD를 떠나보낸 가족들입니다. 한빛센터를 통해 이전에는 보지 않았던 수많은 ‘유가족’의 아픔을 비로소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에 비해 우리 서로가 얼마나 슬픔을 위로하는 법을 잊고(혹은 배우지 못하고) 살아왔는지도 함께 깨닫게 되었습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어떤 모욕과 고통을 당하며 버티고 있는지 전국민이 화면으로 전부 다 지켜본 우리였습니다. 죽음을 의미있게 여기고 그 슬픔을 함께 나누려 시도함으로써 인간이 인간답게 존재하는 법이기에, 지금까지 우리는 반쯤만 인간이었던 셈입니다. 이제 똑바로 위로하는 일이야말로 남겨진 우리 모두에게 아마도 삶을 건 숙제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한빛PD의 부모님은 가톨릭 신자이십니다. 성당을 다니다가 다니지 않았다가 했다는 한빛PD가 어려웠던 때에 신에게 기도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 한빛PD는 그가 다녔던 본당에 착한 마음의 신앙인들이 믿는 영원한 안식을 누리며 잠들어 있습니다. 사실 유일하며 선한 신의 존재를 가르치는 종교는 늘 ‘왜 선한 신이 존재하는 이 세상에 이렇게나 끔찍한 악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른바 이 ‘악의 문제’에 근거해 한빛PD의 죽음을 전능한 신의 어떤 신비로 남겨두었을 가족들의 고뇌를 듣고 읽은 일이 있어, 이 문제는 신학적일 뿐 아니라 실존적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여기에 조심스럽게 또 하나의 위로를 보탭니다. 17년 4월 대책위가 한창 활동하던 때 학위논문을 쓰고 있던 나에게 문득 제가 공부하는 고전의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죽음을 목전에 둔 소크라테스가 동료 시민들 앞에서 자신의 확신을 밝히는 대목입니다. 이 구절에는 삶은 선이고 죽음은 악이라는 이분법을 벗어나, 죽음을 통해 삶에 더 주목할 줄 아는 어떤 정신이 담겨 있습니다. 이미 이한솔에게 전한 적이 있는 이 구절을 여기에 옮깁니다.
훌륭한 사람에게는 살아서든 삶을 마치고 나서든
어떤 나쁜 것도 없으며,
신들이 그의 일들을 소홀히 하지 않습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33D1-3
비록 한빛PD를 생전에 만난 적은 없지만, 부모님이 존경하고 존중했던 아들이자 그를 기억하는 모든 사람들, 특히 한빛PD 없이는 설명되지 않을(왜냐하면 모든 동생은 형 없이는 설명될 수 없는 존재이므로) 나의 친구 이한솔을 보며 알게 된 바에 따르면, 한빛PD는 참 훌륭한 사람으로서 삶을 살다가 마쳤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나는 이 말이 먼 훗날 부활에 대한 약속만큼이나 남겨진 우리를 위로해줄 수 있으리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한빛센터가 앞으로 맡겨진 것을 모두 해내어, 더 이상 할 일이 없어지는 때가 어서 오기를 기대하겠습니다.
모두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