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 김혜영
브로콜리너마저
한겨레신문(2019.5.11) 토요일판에 4인조 밴드 브로콜리너마저 특집이 나왔다. 한빛 때문에 브로콜리너마저를 처음 알았기에 한빛을 만난 듯 반가웠다. 조금이라도 한빛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아 집중해서 읽었다.
내가 브로콜리너마저 노래를 처음 만난 것은 한빛이 떠난 지 오십일 되던 오순제 추모제였다. 미사 후 한빛 친구들이 만든 한빛 추모영상이 나왔다. 몸짓패 ‘골패’ 공연에서 한빛은 역동적인 몸짓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었다. 곳곳에서 한빛의 진지하고 결연한 모습을 봤다. 가슴이 서렸다. 내가 저녁마다 중랑천을 걸을 때 걸쳤던 후드자켓을 입은 한빛이가 뭐라고 외치고 있었다. 아, 저 녹색 후드자켓이 노동절 전야제때 입었던 옷이었구나. 또다른 장면에서는 한빛이 환하게 웃고 있었고 땀을 뻘뻘 흘리며 신나게 춤추고 있었다. 영상 속 한빛 뒤로 브로콜리너마저의 ‘졸업’노래가 흘러나왔다.
내 아들이지만 참 열심히 살았구나. 부끄럽지 않은 젊은 시절을 살았구나. 한빛이가 자랑스러웠다. 그 순간 아마도 내가 잠깐 딴 세상에 갔었던 것 같다. 영상 속 장면과 성당 안에 있는 추모객들이 뿌옇게 흐려지면서 다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그러다 ‘이 미친 세상에’에서 현실로 돌아왔다. 한빛을 생각하려면 과거형 ‘살았다’가 아니고 ‘살았구나’라고 과거완료형으로밖에 표현할 수 없음을 알았다. 기가 막히며 가슴이 턱 막혀왔다.
한빛이가 이 ‘졸업’노래를 좋아했다고 했다. 나에게는 ‘이 미친 세상에’만 반복되어 마음이 불편했다. 왜 한빛은 들으면 들을수록 ‘이 미친 세상에’만 읊조리는 이런 노래를 좋아했을까? 이 밴드는 왜 이런 가사를 썼을까? 국어수업시간에 시와 노래가 시대를 반영한다고 가르쳤으면서도 이 ‘졸업’ 노래는 별개로 들렸다. 아니 굳이 알고 싶지도 않았다.
기억난다. 한빛과 이 얘기 저 얘기 하다가 내가 홍대 앞 문화가 궁금하고 클럽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싶다고 했다. 해박한 지식을 소유하고 싶은 직업적 호기심과 나이 든 교사의 이미지를 조금이라도 벗고 싶었다. 그래서 한빛이 대학생이 되면 꼭 경험해 보리라 별렀다. 홍대 앞에 가면 젊은 문화가 특별나게 펼쳐져 있니? 궁금해 물었다. 나의 이런 유치한 상상에 한빛은 웃으며 별거 아니여요. 언제 한 번 같이 걸어봐요 했다. 얼른 그럼 클럽같은 데도 갈 수 있니? 물었다. 나이제한이 있어 엄마는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그냥 어떤 곳인지 구경만 할 건데 잠깐 들어가면 안 되니? 도대체 젊은 애들은 무엇하며 즐기는지 보고 싶은데 하며 끈질기게 부탁했다. 언저리라도 가보려고 했지만 한빛과 홍대 앞을 거니는 호사는 누리지 못했다.
그때 홍대 앞 문화를 말하면서 한빛은 브로콜리너마저를 얘기했다. 밴드이름이 특이했다. 아니 이상했다. 항암식품이라서 억지로 먹는 그 브로콜리? 뜨거운 물에 데쳐 초고추장 찍어먹는 그 맛없는 초록색 야채? 밴드이름이 왜 그래? 계속 물었다. 한빛은 그저 웃었던 것 같은데 하긴 어디서부터 설명하랴? 한빛은 인디밴드에 대해 설명했다. 하나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우선 경제적으로 가능한가가 걱정되었다. “돈은 어떻게 벌어? 노래도 돈이 있어야 하잖아. 임대료도 비쌀 텐데. 한때의 일탈로 노래가 취미생활이면 몰라도.” 그렇게 브로콜리너마저를 알게 되었다.
한빛을 보내고 결국 추모제에서 브로콜리너마저의 ‘졸업’을 온전하게 들었다. 한빛은 브로콜리너마저 노래가 서정적인 멜로디도 좋지만 가사가 감성적이어 좋다고 했는데 나는 불편했다. 이게 어떻게 서정적인가? 국어교과서에서는 이런 것을 서정적이라고 하지 않는데. 한빛은 왜 이렇게 상처를 후벼내는 노골적인 노래를 좋아했을까? 그런데 노래가 깊어질수록 가사 하나하나가 한빛이가 말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두 번째 브로콜리너마저를 만난 것은 서울대 사회대에서 있었던 1주기 추모문화제(2017.10.26)였다. 브로콜리너마저를 배경음악이 아니고 실제로 만났다. 브로콜리너마저가 추모문화제에서 노래를 했다. 한빛을 위해 기꺼이 왔고 추모노래를 불렀다. 아니 ‘와 주었고’ ‘불러 주었다’가 맞는 표현이다.
진짜로 브로콜리너마저가 와 준대? 그렇게 착한 사람들도 있어? 의구심을 가지면서도 마음 깊이 고마웠다. 한빛을 추모하는 자리에 한빛이 좋아했던 밴드가 함께 해준다는 것은 엄마에게는 가장 큰 선물이었다. 그 정도 밴드가 초청되려면 얼마나 큰 금액이 든다는 것도 알고 있는데 한빛추모문화제의 의의에 따듯하게 손잡아 준 것이다. 노래를 통해 보듬어주기 위해 기꺼이 와 주었다. 슬픔과 따뜻함이 담긴 메시지로 그들은 추모문화제를 더욱 의미있게 해 주었다. 한빛이 본부스탁을 기획할 때 초청했던 인연을 기억하며 덕원님은 우리를 위로했다. 우리 가족과 추모문화제에 왔던 우리 모두에게 슬픔을 추스릴 힘을 주었다.
한겨레신문에서 그들은 말했다. “음악은 일... 계속 하려면 돈, 돈을 벌어야 해요” “음악 위해 모든 걸 걸어야 한다? 건강하고 꾸준하게 하는 게 진짜” “청춘들이여, 나 지키는 연습을 하세요”. 그들은 내가 갖고 있던 고정관념을 흔들었다. 나에게 솔직하라고 남에게 보이기 위해 살지 말라고 했다. 당당하라고 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들이 따듯한 사람들이란 것을 안다. 경제적 손익과 관람객 숫자만 계산하면 도저히 올 수 없는 추모문화제에 그들은 기꺼이 와 주지 않았나? 그들은 나에게 계속 행복하라고 말하고 잊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마치 한빛이 추모문화제에 모인 우리에게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들을수록 위로가 되었다.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야 해. 넌 행복해야 해 행복해야 해.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잊지 않을게. 잊지 않을게 널 잊지 않을게”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로 나선 30대 초입에 선 청춘은 이 노래를 부르며 서로를 위로할 수도 있음을 한빛을 보내고 알았다. 한빛이 브로콜리너마저를 좋아한 이유를 알겠다. 여전히 나는 덕원, 잔디, 향기, 류지를 구별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브로콜리너마저 노래를 들으면서 위로를 받는다. 한빛과 함께 있음을 확인하고 그리워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한빛아 신곡 앨범 ‘속물들’이 나왔어. 이젠 엄마가 너한테 들려줄게. 같이 듣자.
- 엄마 김혜영
브로콜리너마저
한겨레신문(2019.5.11) 토요일판에 4인조 밴드 브로콜리너마저 특집이 나왔다. 한빛 때문에 브로콜리너마저를 처음 알았기에 한빛을 만난 듯 반가웠다. 조금이라도 한빛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아 집중해서 읽었다.
내가 브로콜리너마저 노래를 처음 만난 것은 한빛이 떠난 지 오십일 되던 오순제 추모제였다. 미사 후 한빛 친구들이 만든 한빛 추모영상이 나왔다. 몸짓패 ‘골패’ 공연에서 한빛은 역동적인 몸짓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었다. 곳곳에서 한빛의 진지하고 결연한 모습을 봤다. 가슴이 서렸다. 내가 저녁마다 중랑천을 걸을 때 걸쳤던 후드자켓을 입은 한빛이가 뭐라고 외치고 있었다. 아, 저 녹색 후드자켓이 노동절 전야제때 입었던 옷이었구나. 또다른 장면에서는 한빛이 환하게 웃고 있었고 땀을 뻘뻘 흘리며 신나게 춤추고 있었다. 영상 속 한빛 뒤로 브로콜리너마저의 ‘졸업’노래가 흘러나왔다.
내 아들이지만 참 열심히 살았구나. 부끄럽지 않은 젊은 시절을 살았구나. 한빛이가 자랑스러웠다. 그 순간 아마도 내가 잠깐 딴 세상에 갔었던 것 같다. 영상 속 장면과 성당 안에 있는 추모객들이 뿌옇게 흐려지면서 다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그러다 ‘이 미친 세상에’에서 현실로 돌아왔다. 한빛을 생각하려면 과거형 ‘살았다’가 아니고 ‘살았구나’라고 과거완료형으로밖에 표현할 수 없음을 알았다. 기가 막히며 가슴이 턱 막혀왔다.
한빛이가 이 ‘졸업’노래를 좋아했다고 했다. 나에게는 ‘이 미친 세상에’만 반복되어 마음이 불편했다. 왜 한빛은 들으면 들을수록 ‘이 미친 세상에’만 읊조리는 이런 노래를 좋아했을까? 이 밴드는 왜 이런 가사를 썼을까? 국어수업시간에 시와 노래가 시대를 반영한다고 가르쳤으면서도 이 ‘졸업’ 노래는 별개로 들렸다. 아니 굳이 알고 싶지도 않았다.
기억난다. 한빛과 이 얘기 저 얘기 하다가 내가 홍대 앞 문화가 궁금하고 클럽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싶다고 했다. 해박한 지식을 소유하고 싶은 직업적 호기심과 나이 든 교사의 이미지를 조금이라도 벗고 싶었다. 그래서 한빛이 대학생이 되면 꼭 경험해 보리라 별렀다. 홍대 앞에 가면 젊은 문화가 특별나게 펼쳐져 있니? 궁금해 물었다. 나의 이런 유치한 상상에 한빛은 웃으며 별거 아니여요. 언제 한 번 같이 걸어봐요 했다. 얼른 그럼 클럽같은 데도 갈 수 있니? 물었다. 나이제한이 있어 엄마는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그냥 어떤 곳인지 구경만 할 건데 잠깐 들어가면 안 되니? 도대체 젊은 애들은 무엇하며 즐기는지 보고 싶은데 하며 끈질기게 부탁했다. 언저리라도 가보려고 했지만 한빛과 홍대 앞을 거니는 호사는 누리지 못했다.
그때 홍대 앞 문화를 말하면서 한빛은 브로콜리너마저를 얘기했다. 밴드이름이 특이했다. 아니 이상했다. 항암식품이라서 억지로 먹는 그 브로콜리? 뜨거운 물에 데쳐 초고추장 찍어먹는 그 맛없는 초록색 야채? 밴드이름이 왜 그래? 계속 물었다. 한빛은 그저 웃었던 것 같은데 하긴 어디서부터 설명하랴? 한빛은 인디밴드에 대해 설명했다. 하나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우선 경제적으로 가능한가가 걱정되었다. “돈은 어떻게 벌어? 노래도 돈이 있어야 하잖아. 임대료도 비쌀 텐데. 한때의 일탈로 노래가 취미생활이면 몰라도.” 그렇게 브로콜리너마저를 알게 되었다.
한빛을 보내고 결국 추모제에서 브로콜리너마저의 ‘졸업’을 온전하게 들었다. 한빛은 브로콜리너마저 노래가 서정적인 멜로디도 좋지만 가사가 감성적이어 좋다고 했는데 나는 불편했다. 이게 어떻게 서정적인가? 국어교과서에서는 이런 것을 서정적이라고 하지 않는데. 한빛은 왜 이렇게 상처를 후벼내는 노골적인 노래를 좋아했을까? 그런데 노래가 깊어질수록 가사 하나하나가 한빛이가 말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두 번째 브로콜리너마저를 만난 것은 서울대 사회대에서 있었던 1주기 추모문화제(2017.10.26)였다. 브로콜리너마저를 배경음악이 아니고 실제로 만났다. 브로콜리너마저가 추모문화제에서 노래를 했다. 한빛을 위해 기꺼이 왔고 추모노래를 불렀다. 아니 ‘와 주었고’ ‘불러 주었다’가 맞는 표현이다.
진짜로 브로콜리너마저가 와 준대? 그렇게 착한 사람들도 있어? 의구심을 가지면서도 마음 깊이 고마웠다. 한빛을 추모하는 자리에 한빛이 좋아했던 밴드가 함께 해준다는 것은 엄마에게는 가장 큰 선물이었다. 그 정도 밴드가 초청되려면 얼마나 큰 금액이 든다는 것도 알고 있는데 한빛추모문화제의 의의에 따듯하게 손잡아 준 것이다. 노래를 통해 보듬어주기 위해 기꺼이 와 주었다. 슬픔과 따뜻함이 담긴 메시지로 그들은 추모문화제를 더욱 의미있게 해 주었다. 한빛이 본부스탁을 기획할 때 초청했던 인연을 기억하며 덕원님은 우리를 위로했다. 우리 가족과 추모문화제에 왔던 우리 모두에게 슬픔을 추스릴 힘을 주었다.
한겨레신문에서 그들은 말했다. “음악은 일... 계속 하려면 돈, 돈을 벌어야 해요” “음악 위해 모든 걸 걸어야 한다? 건강하고 꾸준하게 하는 게 진짜” “청춘들이여, 나 지키는 연습을 하세요”. 그들은 내가 갖고 있던 고정관념을 흔들었다. 나에게 솔직하라고 남에게 보이기 위해 살지 말라고 했다. 당당하라고 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들이 따듯한 사람들이란 것을 안다. 경제적 손익과 관람객 숫자만 계산하면 도저히 올 수 없는 추모문화제에 그들은 기꺼이 와 주지 않았나? 그들은 나에게 계속 행복하라고 말하고 잊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마치 한빛이 추모문화제에 모인 우리에게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들을수록 위로가 되었다.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야 해. 넌 행복해야 해 행복해야 해.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잊지 않을게. 잊지 않을게 널 잊지 않을게”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로 나선 30대 초입에 선 청춘은 이 노래를 부르며 서로를 위로할 수도 있음을 한빛을 보내고 알았다. 한빛이 브로콜리너마저를 좋아한 이유를 알겠다. 여전히 나는 덕원, 잔디, 향기, 류지를 구별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브로콜리너마저 노래를 들으면서 위로를 받는다. 한빛과 함께 있음을 확인하고 그리워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한빛아 신곡 앨범 ‘속물들’이 나왔어. 이젠 엄마가 너한테 들려줄게. 같이 듣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