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민속촌(2) - 엄마의 구석기

관리자
2019-06-12
조회수 1121

- 엄마 김혜영


민속촌(2) - 엄마의 구석기 

  


  친정동생은 우리집에 올 때마다 민속촌에 온 것 같다고 한다요즘 가전제품이 얼마나 예쁘고 다양하고 편리한지 아느냐며 답답해한다언니는 직장때문에 시간을 쪼개면서 살아야 하는데 구닥다리 짐을 끌어안고 있으니 시간도 그렇고 체력적으로 더 힘이 들지 않느냐며 제발 신제품으로 바꾸라고 한다그러나 나는 불편함을 못 느꼈기 때문에 구석기 유물을 모아놓았다 해도 바꾸고 싶거나 개선하고 싶은 생각이 없이 잘 살았다.

  그러나 아이들에게는 이런 내 생활습관이 마냥 긍정적인 것은 아니었다한빛 한솔이가 어렸을 때 친정에 가면 아버지는 외손자들을 데리고 꼭 유성온천에 갔다어린애들이 새벽에 눈을 비비며 따라가는 이유는 온천욕 때문이 아니었다온천욕이 끝나면 외할아버지께서 설탕이 듬뿍 묻은 팥도너츠꽈배기고로께를 한아름 사주시기 때문이다하루는 도너스를 먹으며 한빛이가 엄마미풍이 뭐여요?”했다뜬금없는 질문에 나는 유성온천과 미풍양속이 무슨 관련이 있나잠시 의아했다. “글쎄미풍이란 그 지방만이 갖고 있는 아름다운 풍속 같은 거를 말하는데 아마 유성이 충청도니까 여기에 양반의 풍속같은 좋은 전통이 있나보지?” 했다그러면서 어디서 그런 말을 봤냐고 하니 선풍기요선풍기에 써 있어요바람을 세게 할 때 누르는 곳에 미풍이 써 있어요역풍은 삼국지에 많이 나와서 알겠는데...” 미풍양속이 아니고 선풍기 바람 세기 조절 버튼을 말하는 거였다

  그때까지 우리집은 한빛이가 태어난 그 해 8아기가 땀띠가 나자 아빠가 급히 사왔던 선풍기를 쓰고 있었다당연히 버튼식 스위치가 아니었다바람단계도 순풍미풍역풍강풍 그런 게 아니었다손가락으로 스위치를 1,2,3단 숫자에 돌려 바람의 세기를 조절하는 것이었다. 10년 넘게 사용하다 보니 날개부분은 망가져서 틀어놓으면 어느새 방바닥을 향해 고개를 숙인 채 바람을 내고 있는 고물 선풍기였다바람이 나와 시원하게 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어 그대로 쓰고 있었다그러니 새로 나온 순풍미풍역풍강풍의 버튼식 누름스위치 선풍기를 모를 수 밖에 없었다우리는 온천탕 앞에서 한바탕 웃었다행복했던 시절이었다

  텔레비젼도 결혼 때 사서 한빛이 중3때 도봉동으로 이사오면서 새 것으로 장만했다새로 입주하는 아파트였기에 마당에는 집집마다 나온 가전제품 빈 박스가 항상 넘쳤다특히 약속이라도 한 양 대부분의 집 거실 중앙 벽에는 큰 텔레비전이 걸렸다텔레비전 화면이 너무 크고 선명해서 화면 속 인물들이 금방이라도 튀어 나올 것 같아 섬칫할 정도였다

  15년 넘게 정들고 익숙했던 우리집 텔레비젼은 새 아파트에서는 뜻밖에 왜소하고 초라했다호텔같은 인테리어 장식장 위에 놓인 텔레비젼은 마치 7~80년대 한국영화걸작선에 나오는 소품같았다그동안 한빛 한솔은 손으로 드드득 채널 숫자를 돌릴 때마다 리모콘을 노래불렀다나는 리모콘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위해 발명된 거라고 버텼다몸이 불편하셔서 누워계시거나 다리가 불편해 소파에서 마음대로 일어서기 힘드신 분들을 위해 리모콘이 필요한 거라고 했다초등학교때는 이런 내 말을 진짜로 알았을 것이다그러나 중학생이 되면서 한빛은 엄마의 억지를 이미 알고 있었을 거다다만 이해하려고 했을 것이다한빛은 그렇게 착한 아이였다미안하다

  초등학교 4학년때인가어느 날 한빛이 엄마줄이 없는 전화기도 있어요?”했다무슨 뜬금없는 질문인가 했다한빛은 친구와 온라인 게임을 하고 있었다당시 온라인 게임이 아이들 사이에 인기를 끌 때였다우리집은 컴퓨터는 한빛 방에유선전화기는 거실에 있었다한 번 좌판 누르고 거실로 나와 전화기로 얘기하고 다시 컴퓨터로 돌아가고 하니까 친구가 짜증을 내며 전화기를 컴퓨터 옆에 갖다놓으라고 했단다친구집에는 무선전화기가 있었던 것이다한빛은 전화기를 들고 다닌 다는 자체를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아이들의 게임문화를 알게 된 그날결혼 때 장만해 10년 넘게 사용했던 2천원인가 4천원에 샀던 흰 색 유선전화기를 무선전화기로 바꿨다함께 무선전화기를 사러갔는데 전자상가는 운동장같이 넓었다사방에서 번쩍번쩍하는 신기하고 다양한 전자제품을 보며 한빛 한솔이는 감탄을 자아냈다나도 놀랐다전자제품상가가 그렇게 넓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TV나 냉장고의 종류가 그렇게 다양한 지도 처음 알았다. “엄마진짜 내 방에서도 전화가 되.”하던 한빛의 들떠 있던 까만 눈망울많이 미안하다

  한빛이가 재수할 때 대학 들어가면 가장 하고 싶은 게 뭐야하고 물었었다해외여행이나 스키장가는 거라고 할 줄 알았다그런데 나온 대답이 우리집 텔레비전 채널을 늘려달라는 것이었다우리집은 그때까지 5개 채널만 나오고 있었다. KBS1(9) KBS2(7), MBC(11), SBS(6), EBS(13)였다내가 불편함을 몰랐기 때문에 한빛도 그런 줄 알았다. “미리 말하지 그랬어신청하면 되는데...”하고 미안해 하니 그냥 내년에 바꿔주세요.”하며 씩웃었다

  엄마의 무신경무감각과 구석기같은 생활습관때문에 한빛은 민속촌에서 사는 것 같지는 않았을까생각할수록 미안하다이제는 엄마를 떠나 자기 생각대로 자기 마음대로 살 수 있었는데 왜 서둘러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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