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함께 있을게

관리자
2019-05-29
조회수 1039

- 엄마 김혜영


함께 있을게 

  


  한빛이 떠난 후 한빛의 방을 정리하지 못했다아니 정리하지 않았다한빛이 일을 마치고 불쑥 들어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매일 아침마다 한빛 방에 들어가 창문을 열고 침대 위 이불을 정돈하는 게 출근 전 나의 첫 번째 일이었다한빛 아빠는 술에 취해 들어오는 날이면 한빛 방에 들어가  쓰러져 잠들었다그렇지 않은 날에는 어제 정리해놓은 그대로이지만 나는 매일 침대정리를 했다한빛이가 잠시라도 먼지가 쌓인 이불속으로 들어가는 게 싫었다땀이 많은 아이니 상쾌하지도 않을 것이다끈적끈적한 것보다는 아침의 상큼한 기운이 이불속에 가득 차게 하고 싶었다쾌적해할 한빛을 생각하며 매일 창문을 활짝 열고 펄썩펄썩 이불을 털어 먼지를 다 내보냈다그러나 한빛 침대는 항상 어제 그대로였다

  한빛이 살아있을 때도 이 일은 습관적으로 꼭 했다어쩌다 깜박 잊고 창문을 안 열었다는 것을 알면 밥 먹다가도 얼른 가서 열었다사소한 일이었지만 한빛아빠는 그 시간에 밥 한술 더 뜨지 하면서 질투했다어쩜 나는 한빛한테 잘 보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한빛 어린 시절 육아는 상당 부분 한빛아빠가 담당했기에 한빛이가 엄마는 뭐 했어요하고 물어볼까 조마조마했었는지도 모른다아니 미안하기도 했다그래서 이 정도라도 해야 엄마노릇을 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집착했는지도 모른다

  또 늦게 지쳐서 들어왔는데 침대가 어제 급하게 나간 그대로 어지러우면 한빛이가 순간이라도 씁쓸함을 느끼는 게 싫었다소확행이란 말처럼 한빛도 나처럼 작은 데서 행복을 느끼리라 믿었다그래서 한빛과 카톡을 주고 받을 때도 행복했다숱하게 포스트 잇에 작은 손편지를 쓰면서도 나는 행복했다한빛도 하늘이 아름답다고 답했고 교정의 나뭇잎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움직임이 예쁘다고도 답했다그런 한빛을 보면서 한빛이 소확행을 즐기고 있음에 나는 또 행복했었다.

  베란다에서 빨래를 널면서 한빛세탁기속에 양말 남아있는 것 좀 가져와엄마 손이 안 닿아” 하려다가 가슴이 먼저 출렁였다한빛 침대 옆에 텅 비어있는 충전기콘센트를 보는 데 한빛이는 없지하고 머리가 먼저 나를 일깨웠다몸은 일상속에서 태연하게 움직이는데 머리와 가슴에는 항상 한빛이가 있다문득 하루하루를 철저하게 이중적으로 살고 있는 내가 혐오스러웠다인간은 원래 이렇게 이중적인 생활이 가능한가아님 내가 미쳐가고 있는 건가겁도 났다

  올 3월부터 한빛의 와인색 백팩을 메고 출근하고 있다취업 축하한다고 함께 백화점에서 샀던 멋진 백팩어엿한 직장인이니 고급스런 가방을 사라고 하니 노트북이 들어가야 한다며 백팩을 골랐다검정이나 권색만 둘러보고 있는데 한빛이가 와인색을 골랐다. ‘뭐지저런 튀는 색상은 처음에는 맘에 들어도 금방 질릴 텐데무난한 게 좋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가만히 있었다선물이라는 것은 본인 마음에 들어야 하니까 하면서.

  내가 백팩을 메고 다니기로 한 진짜 이유는 어쩌면 한빛 어렸을 때 제대로 업어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인지도 모르겠다나는 지금도 그렇지만 뚱뚱해서 솔직히 한빛을 안거나 업기가 힘들었다출산용품을 살 때 친정엄마가 빨강색 포대기를 선물로 사주었다앙증맞은 자수가 빙 둘러 박힌 예쁜 포대기였다아이를 업어 키우면 안짱다리가 된다며 무슨 포대기냐며 핀잔 섞어 말했지만 어린 시절 빛바랜 포대기만 봤던 나는 빨리 아이를 업고 설거지를 하고 싶었다그러나 단 한 번도 사용을 못했다한빛을 업으면 포대기 끈이 한 바퀴 돌아와서 묶어져야 하는데 나의 복부비만에 포대기 끈이 모자랐다안는 것도 힘들었다앞이 안 보여 걸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 아이를 업고 안는 것은 다 한빛아빠 몫이었다특히 한빛아빠는 가사와 육아에 적극적이었기에 나는 이 모든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지금은 익숙하지만 당시 남자가 아이를 안고 다니는 경우는 일부 젊은 부부에 해당할 만큼 드문 풍경이었다한빛 아빠세대는 더더욱 어색한 풍경이었다그럼에도 한빛아빠는 한빛 한솔을 안고 다녔다기저귀가방을 들고 다니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해직시절에는 본부 사무실까지 혼자서 우유병까지 넣은 빵빵한 기저귀가방을 메고 한빛 한솔을 안고 걸려서 전철을 한 시간 넘게 다니기도 했다

  한빛이가 페미니즘을 공부할 때 나는 페미니즘이 스터디까지 해야 하는 지 이해가 안 갔다아빠가 페미니즘의 실천가인데 뭘 책에서 찾느냐고 했다그때 한빛이가 서른이 되면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 아랑곳없이 당당하셨던 아빠가 너의 아빠란다너는 대단하고 좋은 아빠한테서 잘 자랐단다.’ 하고 말해주려고 했었다그 말 아직 못했는데 한빛은 떠났다

  언젠가 한빛한테 아빠는 많이 업어주고 안아주었지만 엄마는 제대로’ 업어주지 못해 미안했다고 말하긴 했다. ‘한 번도였는데 제대로라고 슬쩍 눙쳤다대신 엄마가 너를 업어 키우지 않아서 너가 다리가 쭉쭉 길고 키가 185까지 큰 거라며 공치사를 했다한빛은 이 글을 읽으며 엄마가 자기한테 점수 따려고 부단히 노력하셨네 하고 웃을까?

  어느 날 40대 여교사가 교장선생님 중에 백팩 메고 다니시는 분은 처음 봤다고 했다내가 대단한 커리어 우먼이고 생각이 젊은 교사라고 했다그게 아닌데나는 한빛과 함께 있고 싶어서인데이제서라도 엄마노릇하고 싶어서 안간힘을 쓰는 건데매일 끌어안고 울었던 한빛의 백팩한빛이 마지막까지 갖고 있었던 이 와인색 백팩을 올해 용기를 내어 메면서 울지 않겠다고 한빛과 약속했다그리고 어제보다는 잘 살아갈 희망을 백팩 속에 꾸역꾸역 넣어 채웠다

  시간이 흘러도 그리움은 힘들다아무리 참으려 하지만 스치는 바람에도 마음이 아프다한빛의 모든 것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끌어안고 싶다계속 더하고 싶은데 하나씩 하나씩 옅어짐에 몸서리친다한빛의 백팩을 메면서 한빛과 함께 있는 것이 덜 힘들다는 것을 알았다한빛아 미안해사랑해항상 함께 있을게.

2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