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 김혜영
특별한 날
5월 8일은 어버이날이면서 내 생일이다. 내가 몇 살인가? 헤아려보지 않았다. 의미가 없어서다. 한빛 없이는 많은 것이 아니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의미가 없다. 한빛은 엄마가 이렇게 살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까? 엄마는 슬픔을 딛고 씩씩하게 살아가리라고 생각했을까?
한빛한테 뭐라고 하는 게 아니다. 야속해서가 아니다. 한빛한테 너무 미안해서이다. 이 모든 상황을 예측하고도 죽음을 택할 만큼 한빛은 고통스럽고 힘들었을 테니까. 무섭기도 했을 것이다. 엄마는, 엄마는 너의 그 처절한 아픔을 손톱만큼도 눈치 채지 못했고 헤아려주지도 못했다. 한빛은 얼마나 외롭고 무서웠을까? 그래서 특별한 날이면 내 고통과 슬픔때문이 아니고 한빛을 지켜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다.
나는 한빛에게 갚아야 할 것이 많다. 한빛은 스물 일곱 해 동안 나에게 행복과 자랑스러움을 주었고 나는 한빛을 아들인데도 존중했다. 한빛은 엄마 아빠나 한솔이가 자기 때문에 고통스러워 하는 것을 견디기 힘들어 할 것이다. 그래서 너는 없는데 엄마는 살아있다는 고통으로 매일 살.아.내.고. 견.디.어. 내.고. 있는 내 일상이 한빛에게 미안하다.
퇴근 무렵 한빛아빠가 교문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럴 때면 팔랑팔랑 한빛아빠한테로 뛰어가던 지난 시간들이 후루룩 서리게 밀려온다. 오늘도 5시 즈음의 5월 햇살은 환하고 눈부셨다. 한빛이 없는데도 5월 햇살은 여전히 화려하다. 한빛이 있건 없건 그대로다.
내 생일이건만 마땅히 가고 싶은 곳도 하고 싶은 일도 없었다. 다시 가슴 밑바닥이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어디로든 빨리 떠나야 할 것 같았다. 지난 번 회식때 갔다가 상차림이 특이해서 한솔이와 셋이 가려고 했던 벌교꼬막집을 갔다. 한빛아빠라도 맛있으면 되니까 하면서. 식당은 어버이날이라 노부모를 모시고 온 가족들로 북적댔다.
먹음직스런 꼬막이 나왔는데 갑자기 침묵이 돌았다. 한빛아빠가 울고 있었다. 굵은 눈물이 주르르 흐르고 있었다. “미안해. 당신한테 한빛 몫까지 더 잘 해 주어야 하는데 내가 못해서. 미안해. 그런데 한빛이가 너무 보고 싶다. 정말 한빛을 볼 수 없나?”하면서 울었다.
나는 잠시 멍했다. 나는 한빛을 잊고 있었나? 분명 오늘 학교생활을 일상적으로 했다. 회의도 하고 결재도 하고 업무 보고도 받고 교내 순회도 했다. 그 일상 속에 한빛은 없었나? 아니었다. 운동장으로 쏟아지는 5월 햇살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한빛아 이 아름다운 계절을 왜 버렸니? 엄마만 느끼고 있구나. 미안해’ 하고 읊조렸다. 급식실을 나오면서 줄 서서 떠들고 있는 중학생들의 건강한 소음속에서도 한빛이 생각나 가슴이 저렸다. 운동장가에 눈송이처럼 하얗게 피어있는 이팝나무를 보는 데도 눈물이 났다. 한.빛.아. 또다시 봄이구나. 아무리 참으려 해도 스쳐가는 봄바람에도 칼날에 에인 듯 아프다. 어떤 때는 해일처럼 밀려와 화장실로 숨을 때도 있다.
오늘 같은 날 애써 아무 생각도 안 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아무런 무게감 없이 견디어내려고 했다. 종일 가슴이 답답했고 허허로웠다. 한빛이가 없기 때문임을 한빛아빠가 확인해 주었다. 갖은 양념에 울긋불긋 버무린 벌교꼬막을 앞에 두고 우리는 한참을 소리죽여 울었다.
덕분에 ‘진공’같은 하루 삶을 조금은 덜어낼 수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명절이나 생일 같은 특별한 날이 즐겁고 행복한 날이지만 자식을 먼저 보낸 가족에게는 무척 힘든 날이다. 나는 한빛이 없는데 무슨 명절이냐며 다 의미 없다고 했다. 제사음식도 안 하겠다고 했다. 남편이 혼자 묵묵히 한빛이 상을 차렸다. 나는 그런 한빛아빠한테 소리를 지르며 울부짖었다. “자식 제사상을 그렇게 차리고 싶어? 부모가 자식제사상을 차린다는 게 말이 되? 무슨 신바람이 난다고 음식을 만들고 있어?”
한빛아빠는 내 손을 잡고 우리 살아있는 동안만이라도 한빛한테 밥 한 그릇 차려주자고 했다. 우리 죽으면 한빛한테 따뜻한 밥 차려줄 사람 없는데 우리는 부모니까 살아있는 동안이라도 따뜻한 밥 먹게 해주자며 울었다.
세월호에서 교사였던 딸을 잃은 엄마가 생각났다. 과거의 행복한 시절로 완벽하게 돌아갈 수는 없지만 생명이 남아 있는 한 슬픔과 친구가 되어 하루하루 아픔을 딛고 살아가겠다고 했다.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읽으려고 애썼다.
한빛이 없는 내 여생에는 더 이상의 근심도 기쁨도 없겠지. 감동이나 감수성이란 단어도 낯설어지겠지. 그러나 앞으로 스물 일곱 해 이상은 살고 싶다. 한빛이와 함께 했던 스물 일곱 해 시간보다 단 하루만이라도 더 길게 살아서 한빛을 그리워하고 한빛을 위해 기도하고 싶다. 생일이나 명절 때 따듯한 밥도 차려주리라. 비록 ‘진공’의 삶일지라도 그리움을 계속 안고 가려면 강해져야 하리라.
‘특별한 날’이 갖고 있는 축하의 말들, 즐거운 웃음소리, 함께 하는 행복한 모습들은 이미 나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이다. 특별한 날 울지 않으려고 애쓴다. 어제와 똑같이 진공상태로 아무렇지도 않게 보내려고 노력한다.
한빛아 특별한 날 오늘도 진공같이 산 것은 널 잊어서가 아니다. 엄마는 약속했듯이 너를 부활시켜 항상 함께 있단다. 너는 분명 또 다른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 있으니까.
- 엄마 김혜영
특별한 날
5월 8일은 어버이날이면서 내 생일이다. 내가 몇 살인가? 헤아려보지 않았다. 의미가 없어서다. 한빛 없이는 많은 것이 아니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의미가 없다. 한빛은 엄마가 이렇게 살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까? 엄마는 슬픔을 딛고 씩씩하게 살아가리라고 생각했을까?
한빛한테 뭐라고 하는 게 아니다. 야속해서가 아니다. 한빛한테 너무 미안해서이다. 이 모든 상황을 예측하고도 죽음을 택할 만큼 한빛은 고통스럽고 힘들었을 테니까. 무섭기도 했을 것이다. 엄마는, 엄마는 너의 그 처절한 아픔을 손톱만큼도 눈치 채지 못했고 헤아려주지도 못했다. 한빛은 얼마나 외롭고 무서웠을까? 그래서 특별한 날이면 내 고통과 슬픔때문이 아니고 한빛을 지켜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다.
나는 한빛에게 갚아야 할 것이 많다. 한빛은 스물 일곱 해 동안 나에게 행복과 자랑스러움을 주었고 나는 한빛을 아들인데도 존중했다. 한빛은 엄마 아빠나 한솔이가 자기 때문에 고통스러워 하는 것을 견디기 힘들어 할 것이다. 그래서 너는 없는데 엄마는 살아있다는 고통으로 매일 살.아.내.고. 견.디.어. 내.고. 있는 내 일상이 한빛에게 미안하다.
퇴근 무렵 한빛아빠가 교문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럴 때면 팔랑팔랑 한빛아빠한테로 뛰어가던 지난 시간들이 후루룩 서리게 밀려온다. 오늘도 5시 즈음의 5월 햇살은 환하고 눈부셨다. 한빛이 없는데도 5월 햇살은 여전히 화려하다. 한빛이 있건 없건 그대로다.
내 생일이건만 마땅히 가고 싶은 곳도 하고 싶은 일도 없었다. 다시 가슴 밑바닥이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어디로든 빨리 떠나야 할 것 같았다. 지난 번 회식때 갔다가 상차림이 특이해서 한솔이와 셋이 가려고 했던 벌교꼬막집을 갔다. 한빛아빠라도 맛있으면 되니까 하면서. 식당은 어버이날이라 노부모를 모시고 온 가족들로 북적댔다.
먹음직스런 꼬막이 나왔는데 갑자기 침묵이 돌았다. 한빛아빠가 울고 있었다. 굵은 눈물이 주르르 흐르고 있었다. “미안해. 당신한테 한빛 몫까지 더 잘 해 주어야 하는데 내가 못해서. 미안해. 그런데 한빛이가 너무 보고 싶다. 정말 한빛을 볼 수 없나?”하면서 울었다.
나는 잠시 멍했다. 나는 한빛을 잊고 있었나? 분명 오늘 학교생활을 일상적으로 했다. 회의도 하고 결재도 하고 업무 보고도 받고 교내 순회도 했다. 그 일상 속에 한빛은 없었나? 아니었다. 운동장으로 쏟아지는 5월 햇살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한빛아 이 아름다운 계절을 왜 버렸니? 엄마만 느끼고 있구나. 미안해’ 하고 읊조렸다. 급식실을 나오면서 줄 서서 떠들고 있는 중학생들의 건강한 소음속에서도 한빛이 생각나 가슴이 저렸다. 운동장가에 눈송이처럼 하얗게 피어있는 이팝나무를 보는 데도 눈물이 났다. 한.빛.아. 또다시 봄이구나. 아무리 참으려 해도 스쳐가는 봄바람에도 칼날에 에인 듯 아프다. 어떤 때는 해일처럼 밀려와 화장실로 숨을 때도 있다.
오늘 같은 날 애써 아무 생각도 안 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아무런 무게감 없이 견디어내려고 했다. 종일 가슴이 답답했고 허허로웠다. 한빛이가 없기 때문임을 한빛아빠가 확인해 주었다. 갖은 양념에 울긋불긋 버무린 벌교꼬막을 앞에 두고 우리는 한참을 소리죽여 울었다.
덕분에 ‘진공’같은 하루 삶을 조금은 덜어낼 수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명절이나 생일 같은 특별한 날이 즐겁고 행복한 날이지만 자식을 먼저 보낸 가족에게는 무척 힘든 날이다. 나는 한빛이 없는데 무슨 명절이냐며 다 의미 없다고 했다. 제사음식도 안 하겠다고 했다. 남편이 혼자 묵묵히 한빛이 상을 차렸다. 나는 그런 한빛아빠한테 소리를 지르며 울부짖었다. “자식 제사상을 그렇게 차리고 싶어? 부모가 자식제사상을 차린다는 게 말이 되? 무슨 신바람이 난다고 음식을 만들고 있어?”
한빛아빠는 내 손을 잡고 우리 살아있는 동안만이라도 한빛한테 밥 한 그릇 차려주자고 했다. 우리 죽으면 한빛한테 따뜻한 밥 차려줄 사람 없는데 우리는 부모니까 살아있는 동안이라도 따뜻한 밥 먹게 해주자며 울었다.
세월호에서 교사였던 딸을 잃은 엄마가 생각났다. 과거의 행복한 시절로 완벽하게 돌아갈 수는 없지만 생명이 남아 있는 한 슬픔과 친구가 되어 하루하루 아픔을 딛고 살아가겠다고 했다.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읽으려고 애썼다.
한빛이 없는 내 여생에는 더 이상의 근심도 기쁨도 없겠지. 감동이나 감수성이란 단어도 낯설어지겠지. 그러나 앞으로 스물 일곱 해 이상은 살고 싶다. 한빛이와 함께 했던 스물 일곱 해 시간보다 단 하루만이라도 더 길게 살아서 한빛을 그리워하고 한빛을 위해 기도하고 싶다. 생일이나 명절 때 따듯한 밥도 차려주리라. 비록 ‘진공’의 삶일지라도 그리움을 계속 안고 가려면 강해져야 하리라.
‘특별한 날’이 갖고 있는 축하의 말들, 즐거운 웃음소리, 함께 하는 행복한 모습들은 이미 나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이다. 특별한 날 울지 않으려고 애쓴다. 어제와 똑같이 진공상태로 아무렇지도 않게 보내려고 노력한다.
한빛아 특별한 날 오늘도 진공같이 산 것은 널 잊어서가 아니다. 엄마는 약속했듯이 너를 부활시켜 항상 함께 있단다. 너는 분명 또 다른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