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열사50주기준비위원위원회 활동을 시작하며

이용관
2019-11-26
조회수 1699

2020년 전태일 열사가 당시에 청계천 봉제 공장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싸우다 온몸으로 항거하며 돌아가신 지 50주년 되는 해입니다. 미력하지만 이 시대에 전태일 정신을 계승하고 실현하기 위한 전태일50주기준비위원회 준비위원으로 활동하게 되어 영광으로 생각하며 미력하지만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습니다.

전태일은 신분이 보장됐던 미싱사에서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가기 위해 재단보조로,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갔습니다. 그 당시 임금에서 반 이상 깎이는 자기희생이 필요했습니다. 재단사가 되면 노임을 결정하는 데 참여할 수 있고, 어린 직공(시다)들 편에서 정당한 보상을 해 줄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한석호 노동운동가)

이렇듯 전태일의 보장된 자신의 안위를 마다하고 열악한 노동자들을 위해 싸우다가 산화한 진정한 평등과 연대의 정신을 온몸으로 실천한 삶을 보여준 진정한 노동자로 살다가셨습니다.

그 이후 우리 사회에서는 수 많은 전태일이 태어나고 죽어 갔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노동자들의 삶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1970년대와 별반 차이가 없는 노동현장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현장이 방송 촬영현장입니다. 아직도 전태일이 외쳤던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노동의 4각지대’에 있는 방송 촬영현장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입니다.

이와 같은 방송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전태일열사처럼 평등과 연대를 온몸으로 실천한 노동자로 살다간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 아름다운 청년이 바로 저의 아들 이한빛PD입니다. 이한빛PD는 자신은 정규직PD로서 드라마 촬영현장의 95%가 넘는 비정규직 스태프들을 잠도 재우지 않고 하루에 20시간이 넘는 장시간 노동으로 이끌어 내고, 파리 목숨보다 쉽게 해고시켜야 하는 말단 관리자의 역할을 고통스러워하며 비정규직 방송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인권을 위해 싸우다가 죽음으로 항거한 진정한 연대를 실천한 노동자로 살다간 이 시대의 전태일이었습니다.

이한빛PD는 전태일 열사가 산화하신 지 46년이 지난 2016년 tvN의 ‘혼술남녀’ 조연출로 일하다가 비정규직 스태프들을 위해 싸우다가 죽음으로 항거하며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는 전태일열사와 이한빛PD를 기억하며 그 뜻을 실현하는 길에 끝까지 동지들과 함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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