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가장 보통의 드라마(2)- 한솔아 고생했다.

관리자
2019-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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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 김혜영


가장 보통의 드라마(2) - 한솔아 고생했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한솔이보다 더 힘드랴 하면서 <가장 보통의 드라마>를 펼쳤다.역시 힘들고 아팠던 기억들이 줄줄이 떠올랐다소름이 돋았다무방비상태의 온 몸이 날카로운 칼로 찔리는 것 같았다한빛이 살아 돌아올 수만 있다면 이 아픈 기억들이 가슴을 찌르는 게 무슨 대수랴

  2017년 6월 회사대표의 사과를 받을 때도 같은 생각이었다한빛이 살아 돌아올 수만 있다면 이런 자리죽어도 오고 싶지 않은 이 자리백번이라도 오겠다고그러나 한빛은 돌아오지 않았다이런 사과 필요 없다고한빛을 살려내라고 울부짖고 싶었다아니 살려달라고 내가 거꾸로 그들에게 무릎이라도 꿇고 싶었다한빛만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온다면 진실이 뒤집히더라도 못할 게 없었다그럼에도 엄마인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가장 보통의 드라마>는 그 해 가을을 이야기하고 있었다그 해 가을나는 한빛을 두 번 힘들게 할 수는 없었다한빛이 너무 가엾고 한빛에게 미안해서이다한빛이 잘 자라주었고 사랑스런 아들임을 엄마인 나는 확신한다그랬기에 엄마로서 한빛에게 갚아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한빛의 죽음을 진상규명도 못하고 그들의 시나리오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정신을 똑바로 차렸다

  기자간담회부터 분명하다고 확신할 수 있어도 내 느낌이면 과감히 잘라냈다분노해도 보고 싶지 않으면 눈을 감았다. 

 진실이 왜곡될 때 받을  상처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이다스스로 운신의 폭을 좁히는 내 모습이 불쌍해 가슴을 마구 쳤다아들의 죽음 앞에서도 여전히 눈치를 보고 있는 내가 가증스러웠다

  그러나 많은 시민들과 청년들은 행간을 읽어주었다놀라웠다감사했다힘을 얻을 수 있었다주저앉지 않을 수 있었다그들의 소리없는 응원으로 나는 조금씩 조금씩 한빛한테 진 빚을 갚아나갈 수 있었다

  짐작대로 한솔에게는 형을 잃은 슬픔을 가눌 시간도 없었다그때 한솔은 군대에 있었다어렵게 모은 휴가기간에도 진상규명을 위해 정신없이 뛰어 다니다 새벽에야 들어왔다또 이 책을 쓰기 위해 평생 만나고 싶지 않은 tvN과 직면해야 했다. tvN에서 나온 모든 드라마를 이를 갈며 꾸역꾸역 모니터링했던 악착같던 오기그 과정들이 어땠을 지는 너무나 뻔하다

  형을 만나기 위해 가슴이 찢어지는 것을 부둥켜 안고 사람들을 만나고 TV를 보았을 한솔방송노동자에게 희망을 가져다주길 바랐던 형 한빛PD의 유지를 이어나가기 위해 설립된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는 저절로 된 것이 아니었다한솔의 피땀 어린 눈물이 있었던 것이다한솔아 미안하다고생했다

  가슴이 아팠다더욱이 이 책에는 한솔이의 실천적 삶이 그대로 녹아 있었다그래서 더 가슴이 아프다한솔이가 형을 이해하기 위해 드라마 제작현장에 들어갔다는 것도 나는 이 책을 통해 알았다엄마한테 말할 리가 없음을 이해하면서도 혼자 감당했을 상황이 그려졌다나는 안다형의 죽음을 확인하는 것 이상으로 정작 한솔이를 괴롭힌 건 그들이 던진 말이란 것을세월호 유가족들에게 던진 보상금 얼마나 받았냐” “시체팔이 하냐와 똑같은 공격을 그들은 거침없이 던졌다그 참담함을 한솔은 혼자서 어떻게 견뎌냈을까

  나는 그 가을 이후로 TV를 못 보고 있다아니 안 본다한빛아빠가 뉴스를 켜는 것에도 진저리를 친다어쩌다 한빛아빠가 한빛 관련 뉴스를 기다릴 때도 나는 안방으로 들어갔다신문에 tvN기사가 나와도 숨이 멎고 아파트 마당에 CJ택배차가 보이면 얼른 눈을 감는다. CJ상표가 섬칫해 슈퍼마켓도 거의 안 간다. 3년이 흘렀건만 여전히 공포로 다가온다

  국어교사일 때는 일요일 저녁이면 두 아이와 함께 개그콘서트를 봤다원래 저렇게 잘 웃는 아이였나할 정도로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두 아이는 엄청 잘 웃었다나는 별 흥미를 못 느껴 수업에 활용할 의무감으로 개콘만 봤는데 개콘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았다저 말이 무슨 뜻이야저 장면이 왜 웃기는 거야설명을 들어야 이해가 되고 속뜻을 알 수 있었다그때마다 한빛은 참 명쾌하게 숨은 의미까지 요즘의 트랜드를 곁들여 설명해줬다

  나는 다음 날 수업시간에 레알로 내 생각인 양 잘난 척을 했다한빛이가 좌르륵 훑어준 젊은 감각 그대로 설명하면 중학생들은 나이 많은 국어선생님의 현란하고 앞서가는 정보감각에 놀라워했다한빛한테 수업 받은 예습상황(?)을 수업시간 기승전결로 적절하게 녹여내면 아이들은 경이로워하고 나는 우쭐한다

  그러면서도 한빛이 PD가 되리란 생각은 꿈에도 안 했다젊은 애들은 드라마를 좋아하고 예능이 요즘 대세니까 이 정도는 다 기본으로 알고 있으려니 했었다상식인 줄 알았다칭찬해 줄걸또 미뤘다

  

  이제는 작가는 왜 저렇게 끌어가니저 장면은 왜 자꾸 강조되니하고 물어 볼 한빛이 없다그러고 보니 우리 가족이 함께 TV앞에 앉아있던 기억도 아득하다하긴 농담이란 말도무심코 함께 웃어본 기억도 언제였던가 까마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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