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 김혜영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연수가 있어서 대구 중앙교육연수원에 갔었다. 대학 때 친구들과 팔공산에 갔었던 것 같은데 이후 갈 일이 없다보니 대구라는 도시가 무척 낯설었다. 모처럼 온 대구이고 멀리서 갔기에 가보고 싶은 곳이 많았다. 시간 여유가 없어 저녁에 ‘김광석 거리’를 찾아가기로 했다. 김광석 관련 벽화와 김광석 노래가 가득한 골목. 그가 간 지 20년이 넘었음에도 김광석은 자신의 노래로 지금, 여기의 사람들을 안아주고 있었다.
공연장 앞 버스킹에서는 한 젊은이가 기타를 치며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를 부르고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한 걸음 만큼의 인생의 추억을 꺼내보고 보듬어 보게 된다는 김광석 거리. 아름다운 의미네 하는 순간, 울컥 한빛이가 생각났다. 그래. 추억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나도 밤새도록 이 골목을 걷고 걸을 텐데.
나에게 김광석을 처음 가르쳐준 건 초등학생이었던 한빛이었다. 선생님 가족들과 동해안에 갔을 때 아이들만 함께 탄 선생님 차에 김광석의 테이프가 있었다. 김광석의 노래를 처음 접한 한빛은 곧바로 김광석 테이프를 사달라고 했고 특히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를 금방 외워서 여행 내내 불러댔다.
한빛은 초등학교 1학년 때 룰라의 ‘날개 잃은 천사’에 완전히 빠져있었다. 시도 때도 없이 ‘천사를 찾아 사바 사바 사바’ 하며 엉덩이춤을 추고 다녔다. 초등학교 1학년 꼬마 아이가 아파트 마당을 걸으며, 슈퍼 계산대 앞에 잠깐 서 있을 때, 마을 버스에 오르면서 ‘천사를 찾아 사바 사바 사바’ 하며 엉덩이를 살짝살짝 때리며 흔들 때면 솔직히 엄마로서 창피했다. 한 번은 조카들이 노래방에 갔는데 한빛이가 목에 핏줄을 세우며 룰라 노래를 쉬지 않고 불렀다고 한다.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마이크를 놓지 않아 외삼촌이 교통정리를 했다고 했다. 오빠가 우리 부부에게 한빛은 아무래도 돌연변이인 것 같다고 했다. 부모는 전형적인 모범생인데 한빛은 어디서 그런 끼가 발동하는지 모르겠다며. 아니면 아이가 뭔가 스트레스가 심해 미친 듯이 발산하는 것이 아니냐고 했다. 며칠 전 담임선생님께서도 상담을 다 끝낸 후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다. 동요나 고운 노래(?)를 불러야 하는 1학년답지 않게 가요만 흥얼거린다며 가정에서 아이의 예술문화면으로도 신경을 썼으면 좋겠다고 했다. 피아노 학원을 보내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하셨다. 힙합 청바지를 질질 끌며 등교하는 것이 마음에 안 들었지만 그래도 내심 학교생활은 모범적일 거라고 기대했었는데 속상했다. 그러더니 고학년이 되서는 또 장나라 열성팬이 되었다. 장나라 팬 싸인회에도 가고 장나라 사진이 있는 컵, 책받침 등 책상위에는 온통 장나라 사진과 싸인이 새겨진 물건들로 수북하였다. 그때 한빛이가 사용하던 책꽂이에는 아직도 곳곳에 장나라 스티커가 빛바랜 채 붙어있다.
중학교 교사라 다양한 아이들을 보면서 내 아이에 대한 일정 수준 이상의 바람을 가지고 있었다. 여느 부모처럼 나도 처음 학부모가 되면서 내 아이가 공부도, 인성도 괜찮은 아이로 자랐으면 하는 욕심을 가졌다. 그런데 한빛이가 1학년때부터 기대했던 방향으로 가지 않으니 조바심이 났다. 강요할 수도 없고 저러는 것도 한 때려니 하고 이해하고자 했다. 가끔 욱~하고 치밀어 오르기도 했지만 부모의 간섭으로 순식간에 망가지는 아이들을 보아왔기에 꾹 참고 참았다.
한빛이 고등학교 입학선물로 사 달라고 했던 ‘비틀즈 앨범’을 다시 꺼내보았다. 많이 닳고 무성한 스크래치가 있는 케이스에서 수없이 듣고 들었을 한빛의 숨결을 느낀다. 한빛이가 ‘브루컬리 너마저’를 좋아하는지는 한빛이 떠난 후 알았다. 서울대 사회대 신양에서 있었던 1주기 추도식때 기꺼이 와 주었던 ‘브루컬리 너마저’. 한빛이가 좋아할 거라는, 위로받을 거라는 그 마음 하나를 위해 그들은 함께 해주었다. 한빛처럼 참 따듯하고 고마운 사람들이다.
한빛 원룸에서 <골빛> 닉네임이 쓰인 검은 옷을 보고 이게 뭐야? 물었더니 춤 동아리 ‘골패’ 단복이란다. 그 많고 많은 동아리 중에 웬 춤 동아리? 하면서도 언제 공연에 초대해 주렴 하니 초딩도 아닌데요 하며 웃었다. 한빛은 엄마가 소심한 걸 배려했다. ‘골패’는 내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춤 동아리가 아니었다. 몸짓 동아리였다. 노동절이나 노동문화제 행사 때 무대에 올라 행사 주제를 표현해 분위기를 돋구는 동아리였다. 추모제때 친구들이 만든 추모 영상 ‘rememberbit’에 골패 공연 중 한빛이 열정적으로 춤추는 영상이 있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키가 엄청 큰 애가 몸짓 하나 하나에 온 힘을 실어 표현하고 있었다. 내가 몰랐던 한빛이었다.
어느 날 한빛이 PD가 된 후 ‘예능분야’라는 게 걸려 “한빛아, 엄마가 보기에는 너가 모범적인 삶을 살아왔기에 사고의 틀도 원칙적일 것 같아. 또 엄마 아빠도 답답할 만큼 정도만 걸어왔고. 이런 환경에서 자랐는데 예능이라니까 좀 그러네.”하니 “그래도 어렸을 때 엄마가 예능 쪽으로 많이 키워주셨잖아요. 발레공연 간다니까 친구들이 남자가 발레 본다고 놀렸었어요. 그때 공연이나 체험학습을 엄청 다녔잖아요. 다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친구들한테는 끼가 있다는 말도 꽤 듣고 문화기획도 잘 한다는 소리 들어요.”하며 엄마를 덜 미안하게 했다.
초등학생이었던 한빛이가 “엄마, 이 노래말 참 좋아요.”하며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를 처음 알려주었을 때 나역시 노래보다는 노래말이 주는 역발상에 신기했다. 한빛이가 악을 쓰듯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네 바퀴로 가는 자전거 물속으로 나는 비행기 하늘로 나는 돛단배 복잡하고 아리송한 세상위로 오늘도 애드벌룬 떠 있건만 포수에게 잡혀온 잉어만이 한숨을 내쉰다’ 노래를 불렀을 때 함께 호응해주며 같이 부르지 못했다. 어린 한빛이가 이 노래를 좋아하는 것이 오히려 불편했다.
나는 한빛의 생각을 따라가지 못했다. 깊게 격려하지도 못했다. 아마 나는 한빛이가 예능보다는 공부를 잘 하길 바라고 아이를 은근히 그 방향으로 조정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엄마로서 미안하다. 그래서 아무 도움이 못 된 게 가슴이 아프다.
- 엄마 김혜영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연수가 있어서 대구 중앙교육연수원에 갔었다. 대학 때 친구들과 팔공산에 갔었던 것 같은데 이후 갈 일이 없다보니 대구라는 도시가 무척 낯설었다. 모처럼 온 대구이고 멀리서 갔기에 가보고 싶은 곳이 많았다. 시간 여유가 없어 저녁에 ‘김광석 거리’를 찾아가기로 했다. 김광석 관련 벽화와 김광석 노래가 가득한 골목. 그가 간 지 20년이 넘었음에도 김광석은 자신의 노래로 지금, 여기의 사람들을 안아주고 있었다.
공연장 앞 버스킹에서는 한 젊은이가 기타를 치며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를 부르고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한 걸음 만큼의 인생의 추억을 꺼내보고 보듬어 보게 된다는 김광석 거리. 아름다운 의미네 하는 순간, 울컥 한빛이가 생각났다. 그래. 추억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나도 밤새도록 이 골목을 걷고 걸을 텐데.
나에게 김광석을 처음 가르쳐준 건 초등학생이었던 한빛이었다. 선생님 가족들과 동해안에 갔을 때 아이들만 함께 탄 선생님 차에 김광석의 테이프가 있었다. 김광석의 노래를 처음 접한 한빛은 곧바로 김광석 테이프를 사달라고 했고 특히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를 금방 외워서 여행 내내 불러댔다.
한빛은 초등학교 1학년 때 룰라의 ‘날개 잃은 천사’에 완전히 빠져있었다. 시도 때도 없이 ‘천사를 찾아 사바 사바 사바’ 하며 엉덩이춤을 추고 다녔다. 초등학교 1학년 꼬마 아이가 아파트 마당을 걸으며, 슈퍼 계산대 앞에 잠깐 서 있을 때, 마을 버스에 오르면서 ‘천사를 찾아 사바 사바 사바’ 하며 엉덩이를 살짝살짝 때리며 흔들 때면 솔직히 엄마로서 창피했다. 한 번은 조카들이 노래방에 갔는데 한빛이가 목에 핏줄을 세우며 룰라 노래를 쉬지 않고 불렀다고 한다.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마이크를 놓지 않아 외삼촌이 교통정리를 했다고 했다. 오빠가 우리 부부에게 한빛은 아무래도 돌연변이인 것 같다고 했다. 부모는 전형적인 모범생인데 한빛은 어디서 그런 끼가 발동하는지 모르겠다며. 아니면 아이가 뭔가 스트레스가 심해 미친 듯이 발산하는 것이 아니냐고 했다. 며칠 전 담임선생님께서도 상담을 다 끝낸 후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다. 동요나 고운 노래(?)를 불러야 하는 1학년답지 않게 가요만 흥얼거린다며 가정에서 아이의 예술문화면으로도 신경을 썼으면 좋겠다고 했다. 피아노 학원을 보내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하셨다. 힙합 청바지를 질질 끌며 등교하는 것이 마음에 안 들었지만 그래도 내심 학교생활은 모범적일 거라고 기대했었는데 속상했다. 그러더니 고학년이 되서는 또 장나라 열성팬이 되었다. 장나라 팬 싸인회에도 가고 장나라 사진이 있는 컵, 책받침 등 책상위에는 온통 장나라 사진과 싸인이 새겨진 물건들로 수북하였다. 그때 한빛이가 사용하던 책꽂이에는 아직도 곳곳에 장나라 스티커가 빛바랜 채 붙어있다.
중학교 교사라 다양한 아이들을 보면서 내 아이에 대한 일정 수준 이상의 바람을 가지고 있었다. 여느 부모처럼 나도 처음 학부모가 되면서 내 아이가 공부도, 인성도 괜찮은 아이로 자랐으면 하는 욕심을 가졌다. 그런데 한빛이가 1학년때부터 기대했던 방향으로 가지 않으니 조바심이 났다. 강요할 수도 없고 저러는 것도 한 때려니 하고 이해하고자 했다. 가끔 욱~하고 치밀어 오르기도 했지만 부모의 간섭으로 순식간에 망가지는 아이들을 보아왔기에 꾹 참고 참았다.
한빛이 고등학교 입학선물로 사 달라고 했던 ‘비틀즈 앨범’을 다시 꺼내보았다. 많이 닳고 무성한 스크래치가 있는 케이스에서 수없이 듣고 들었을 한빛의 숨결을 느낀다. 한빛이가 ‘브루컬리 너마저’를 좋아하는지는 한빛이 떠난 후 알았다. 서울대 사회대 신양에서 있었던 1주기 추도식때 기꺼이 와 주었던 ‘브루컬리 너마저’. 한빛이가 좋아할 거라는, 위로받을 거라는 그 마음 하나를 위해 그들은 함께 해주었다. 한빛처럼 참 따듯하고 고마운 사람들이다.
한빛 원룸에서 <골빛> 닉네임이 쓰인 검은 옷을 보고 이게 뭐야? 물었더니 춤 동아리 ‘골패’ 단복이란다. 그 많고 많은 동아리 중에 웬 춤 동아리? 하면서도 언제 공연에 초대해 주렴 하니 초딩도 아닌데요 하며 웃었다. 한빛은 엄마가 소심한 걸 배려했다. ‘골패’는 내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춤 동아리가 아니었다. 몸짓 동아리였다. 노동절이나 노동문화제 행사 때 무대에 올라 행사 주제를 표현해 분위기를 돋구는 동아리였다. 추모제때 친구들이 만든 추모 영상 ‘rememberbit’에 골패 공연 중 한빛이 열정적으로 춤추는 영상이 있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키가 엄청 큰 애가 몸짓 하나 하나에 온 힘을 실어 표현하고 있었다. 내가 몰랐던 한빛이었다.
어느 날 한빛이 PD가 된 후 ‘예능분야’라는 게 걸려 “한빛아, 엄마가 보기에는 너가 모범적인 삶을 살아왔기에 사고의 틀도 원칙적일 것 같아. 또 엄마 아빠도 답답할 만큼 정도만 걸어왔고. 이런 환경에서 자랐는데 예능이라니까 좀 그러네.”하니 “그래도 어렸을 때 엄마가 예능 쪽으로 많이 키워주셨잖아요. 발레공연 간다니까 친구들이 남자가 발레 본다고 놀렸었어요. 그때 공연이나 체험학습을 엄청 다녔잖아요. 다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친구들한테는 끼가 있다는 말도 꽤 듣고 문화기획도 잘 한다는 소리 들어요.”하며 엄마를 덜 미안하게 했다.
초등학생이었던 한빛이가 “엄마, 이 노래말 참 좋아요.”하며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를 처음 알려주었을 때 나역시 노래보다는 노래말이 주는 역발상에 신기했다. 한빛이가 악을 쓰듯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네 바퀴로 가는 자전거 물속으로 나는 비행기 하늘로 나는 돛단배 복잡하고 아리송한 세상위로 오늘도 애드벌룬 떠 있건만 포수에게 잡혀온 잉어만이 한숨을 내쉰다’ 노래를 불렀을 때 함께 호응해주며 같이 부르지 못했다. 어린 한빛이가 이 노래를 좋아하는 것이 오히려 불편했다.
나는 한빛의 생각을 따라가지 못했다. 깊게 격려하지도 못했다. 아마 나는 한빛이가 예능보다는 공부를 잘 하길 바라고 아이를 은근히 그 방향으로 조정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엄마로서 미안하다. 그래서 아무 도움이 못 된 게 가슴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