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 김혜영
고양이 푸리
몇 해전 한빛 원룸에 갔다가 웬 주먹만한 고양이가 있어 깜짝 놀랐다. 좁은 원룸은 밥그릇, 화장실, 장난감, 작은 캣타워 등 고양이 관련 도구로 발 디디기도 힘들었다. 털이 엄청나게 빠질 텐데 청소도 제대로 안 하면서 어쩌려고? 책임지지도 못할 일을 왜? 도봉동에서 학교가 멀다고 해서 원룸을 구해주었는데, 요즘 대학생은 고양이 키울 만큼 그렇게 한가한가? 온갖 생각에 솔직히 속상하고 화가 났다.
한빛 한솔이가 어렸을 때 강아지를 기르자고 했지만 일언지하에 안 된다고 했었다. 어린 시절 시골에 살면서 개를 키웠고 개와 놀던 일이 일상이었기에 나도 개를 좋아하고 그런 생활이 얼마나 좋은 지를 안다. 하지만 마당이 있는 집도 아니고 좁은 아파트에서 개를 키운다는 것은 당시 나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부모가 다 직장에 나가는데 두 아이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면서 개를 키우게 되면 그만큼 시간과 노력을 나누어야 할 텐데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 그렇잖아도 친정엄마가 오실 때마다 이사 가는 집같다고 들어서시자마자 정리부터 하시는데 무슨 개까지 키운다고? 두 아이나 제대로 키우자 하며 당연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푸리를 키우면서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이것도 한빛이 나에게 준 선물일까?
어렸을 때 한솔이는 내가 퇴근하기 전까지 TV를 습관적으로 켜놓았다고 했다. TV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혼자 있는 게 무서웠던 것 같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는 날도 유치원에서 돌아오자마자 TV를 켰고 생중계를 혼자서 보는데 무서웠단다. TV를 끌 생각은 못했고 반복되는 처참한 현장중계를 고스란히 혼자 시청했다고 한다. 그 이후 혼자 있다가 조금만 큰 소리가 들리면 삼풍백화점 생각이 나고 우리 아파트가 무너지는 것 같아 아파트 밖으로 뛰쳐나간 적도 있다고 했다. 이 얘기를 나중에 중학생이 되어 웃으면서 이야기했지만 나는 한솔이가 너무나 가엾어 꼬옥 껴안았다. 그런 트라우마가 있는 것도 모르고 항상 씩씩하다고 생각한 것에 죄책감을 느꼈다.
결국 엄마의 완강한 반대를 꺾을 수 없었던 아이들은 토끼를 키우겠다고 했다. 베란다에서 키울 수 있으니까 동의했다. 어느 날 한빛은 누에도 키우겠다고 했다. 유리상자에서 키우는데 애벌레가 너무 징그러웠다. 며칠 챙기다 말겠지하며 동의했다. 한솔이는 토끼를 한빛은 누에를 전담했다. 두 아이는 정말 정성을 다해 먹이를 주고 매일 돌보고 들여다보았다. 토끼 똥오줌 관리는 결국 아빠 몫이 되었지만 한빛은 달랐다. 어린 아이가 곤충과 같은 작은 생물에 그렇게 집중해서 정성을 다하는 모습은 정말 감동스러웠다. 대견했다.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유리상자를 살폈다. 누에가 잘 먹게 풀을 최대한 잘게 잘라 주느라 여린 손톱으로 집중하던 한빛의 눈빛과 긴 검정 눈썹. 자기 전에도 꼭 잘 자라고 인사를 했다. 나비가 되면 훨훨 날려줄게 빨리 자라라 하는 인사말도 빼놓질 않았다. 새로 알게 된 한빛의 모습이었다.
문득 문득 아이가 바라는 대로 강아지를 키웠으면 엄마가 채워주지 못한 따뜻한 그 무엇을 가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든다. 그깟 털이 무슨 대수라고? 청소문제가 아이들의 정서적 행복보다 더 중요했나? 반성을 한다.
어느 날인가 한빛이가 취업해서 돈 벌면 제일 하고 싶은 일이 길고양이에게 꾸준히 사료를 주는 거라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좀 한심하단 생각이 들었다. 캣맘과 관련된 길고양이 기사를 보았기에 이해는 되었지만 청년 성인이 그런 것에 관심을 갖는 게 좀 그랬다. 그러나 핀잔은 못 주고 한빛이 너무 순진한 것 같아 엄마로서 마음이 불편했다.
이름이 푸리라고 했다. ‘자유(Free)’를 뜻하는 거냐고 물으니 공상적 사회주의자 ‘푸리에’의 준말이라고 했다. 그 사람이 누군데? 하며 깊게 들어가려하자 ‘자유(Free)’와도 발음이 비슷하니까 그렇게 생각하세요 하며 웃었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프리’로 부르고 있다. 푸리는 자폐증세가 있었다. 길고양이라서 그렇다고 했다. 한빛만 따를 뿐 절대 곁을 주지 않았다. 먹이를 가지고 살랑대며 애교를 떨어도 섭섭할 정도로 매몰찼다. 나는 어차피 가까이 안 할 거고 으, 고양이가 가까이 오는 것도 싫어 속으로는 다행이다 싶었다. 어차피 원룸에서 키우니까 나랑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한빛 군입대로 푸리는 우리집에 왔다. 엄마, 죄송해요 제대까지만 키워주세요. 하는데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겉으로는 “응. 걱정 마. 잘 키울게.” 했다. 고양이털과 냄새만 생각해도 끔찍했지만 어쩐다? 아들 바보? 한빛이라면 모든 게 다 오케이인 엄마이니 받아들일 수 밖에. 입대 전 푸리에게 큰 캣타워를 선물한다고 했다. 무슨 고양이한테까지 선물이냐고 하니 “그동안 모아놓은 돈이 조금 있어요. 10만원도 안 해요”했다. 설치하러 온 기사는 원목이고 미끄럼틀 옵션도 있는 좋은 거라며 30만원은 더 될 거라고 했다. 한빛이가 엄마 눈치를 살폈나 보다.
푸리는 항상 한빛방에서 잤다. 한빛이 침대위에 책을 펼쳐놓고 나가면 푸리는 꼭 그 책위에 엎디어 잤다. 그 모습이 독서하다 잠든 대단한(?) 고양이 같아 그 집사에 그 고양이 하며 웃었었다. 푸리는 우리한테는 도도하게 거리를 두다가도 한빛이가 집에 오면 슬그머니 거실로 나왔다. 한빛이 푸리를 두 손으로 안거나 어깨에 얹어 거실로 나와 서로 장난할 때 보면 푸리도 귀엽고 일반적인 고양이었다. 다른 사람한테는 그렇게 까칠한데 한빛이랑은 정말 잘 놀았다.
푸리는 한빛의 부재를 알까? 나는 한빛이 그리울 때마다 푸리를 안았다. 푸리의 깊은 눈빛에 한빛이 어려있을 때도 있었다. 푸리도 많이 변했다. 한빛만 잘 따랐던 푸리는 지금 한빛 없이도 우리와 잘 지내고 있다. 아침이면 방문 밖에서 야옹대며 우리를 깨운다. 한밤중에도 어느 새 우리 가슴에 올라와 꾹꾹이도 한다. 현관키를 누르면 어디선가 나타나 현관까지 마중도 나온다.
푸리는 한빛이 나에게 남긴 큰 선물이었다. 푸리를 키우면서 반려동물에 대한 시각이 달라졌다. 뜻밖이었다.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 고맙다. 나에겐 생각지도 못했던 큰 변화였다. 한빛은 마지막 글에 푸리에게 미안하다고 대신 전해달라고 했다. 참 따듯한 품성의 아들이었다.
푸리가 창밖을 무심히 쳐다볼 때, 거실 가운데서 식빵을 만들고 가만히 있을 때, 소파 틈새에 또아리를 틀고 힘겹게 자고 있을 때 엄마는 푸리가 너를 그리워하는 것 같아 가슴이 미어진다. 베란다에서 그루밍을 하고 있을 때 너 말고는 푸리 목욕을 시킬 수가 없는데 어쩌나? 엄마가 기도하다 울면 옆에 앉아 있다가도 꼬리를 내리고 슬그머니 네 방으로 들어갈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엄마가 아는 게 없어 너한테도 푸리한테도 많이 미안하구나.

- 엄마 김혜영
고양이 푸리
몇 해전 한빛 원룸에 갔다가 웬 주먹만한 고양이가 있어 깜짝 놀랐다. 좁은 원룸은 밥그릇, 화장실, 장난감, 작은 캣타워 등 고양이 관련 도구로 발 디디기도 힘들었다. 털이 엄청나게 빠질 텐데 청소도 제대로 안 하면서 어쩌려고? 책임지지도 못할 일을 왜? 도봉동에서 학교가 멀다고 해서 원룸을 구해주었는데, 요즘 대학생은 고양이 키울 만큼 그렇게 한가한가? 온갖 생각에 솔직히 속상하고 화가 났다.
한빛 한솔이가 어렸을 때 강아지를 기르자고 했지만 일언지하에 안 된다고 했었다. 어린 시절 시골에 살면서 개를 키웠고 개와 놀던 일이 일상이었기에 나도 개를 좋아하고 그런 생활이 얼마나 좋은 지를 안다. 하지만 마당이 있는 집도 아니고 좁은 아파트에서 개를 키운다는 것은 당시 나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부모가 다 직장에 나가는데 두 아이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면서 개를 키우게 되면 그만큼 시간과 노력을 나누어야 할 텐데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 그렇잖아도 친정엄마가 오실 때마다 이사 가는 집같다고 들어서시자마자 정리부터 하시는데 무슨 개까지 키운다고? 두 아이나 제대로 키우자 하며 당연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푸리를 키우면서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이것도 한빛이 나에게 준 선물일까?
어렸을 때 한솔이는 내가 퇴근하기 전까지 TV를 습관적으로 켜놓았다고 했다. TV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혼자 있는 게 무서웠던 것 같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는 날도 유치원에서 돌아오자마자 TV를 켰고 생중계를 혼자서 보는데 무서웠단다. TV를 끌 생각은 못했고 반복되는 처참한 현장중계를 고스란히 혼자 시청했다고 한다. 그 이후 혼자 있다가 조금만 큰 소리가 들리면 삼풍백화점 생각이 나고 우리 아파트가 무너지는 것 같아 아파트 밖으로 뛰쳐나간 적도 있다고 했다. 이 얘기를 나중에 중학생이 되어 웃으면서 이야기했지만 나는 한솔이가 너무나 가엾어 꼬옥 껴안았다. 그런 트라우마가 있는 것도 모르고 항상 씩씩하다고 생각한 것에 죄책감을 느꼈다.
결국 엄마의 완강한 반대를 꺾을 수 없었던 아이들은 토끼를 키우겠다고 했다. 베란다에서 키울 수 있으니까 동의했다. 어느 날 한빛은 누에도 키우겠다고 했다. 유리상자에서 키우는데 애벌레가 너무 징그러웠다. 며칠 챙기다 말겠지하며 동의했다. 한솔이는 토끼를 한빛은 누에를 전담했다. 두 아이는 정말 정성을 다해 먹이를 주고 매일 돌보고 들여다보았다. 토끼 똥오줌 관리는 결국 아빠 몫이 되었지만 한빛은 달랐다. 어린 아이가 곤충과 같은 작은 생물에 그렇게 집중해서 정성을 다하는 모습은 정말 감동스러웠다. 대견했다.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유리상자를 살폈다. 누에가 잘 먹게 풀을 최대한 잘게 잘라 주느라 여린 손톱으로 집중하던 한빛의 눈빛과 긴 검정 눈썹. 자기 전에도 꼭 잘 자라고 인사를 했다. 나비가 되면 훨훨 날려줄게 빨리 자라라 하는 인사말도 빼놓질 않았다. 새로 알게 된 한빛의 모습이었다.
문득 문득 아이가 바라는 대로 강아지를 키웠으면 엄마가 채워주지 못한 따뜻한 그 무엇을 가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든다. 그깟 털이 무슨 대수라고? 청소문제가 아이들의 정서적 행복보다 더 중요했나? 반성을 한다.
어느 날인가 한빛이가 취업해서 돈 벌면 제일 하고 싶은 일이 길고양이에게 꾸준히 사료를 주는 거라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좀 한심하단 생각이 들었다. 캣맘과 관련된 길고양이 기사를 보았기에 이해는 되었지만 청년 성인이 그런 것에 관심을 갖는 게 좀 그랬다. 그러나 핀잔은 못 주고 한빛이 너무 순진한 것 같아 엄마로서 마음이 불편했다.
이름이 푸리라고 했다. ‘자유(Free)’를 뜻하는 거냐고 물으니 공상적 사회주의자 ‘푸리에’의 준말이라고 했다. 그 사람이 누군데? 하며 깊게 들어가려하자 ‘자유(Free)’와도 발음이 비슷하니까 그렇게 생각하세요 하며 웃었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프리’로 부르고 있다. 푸리는 자폐증세가 있었다. 길고양이라서 그렇다고 했다. 한빛만 따를 뿐 절대 곁을 주지 않았다. 먹이를 가지고 살랑대며 애교를 떨어도 섭섭할 정도로 매몰찼다. 나는 어차피 가까이 안 할 거고 으, 고양이가 가까이 오는 것도 싫어 속으로는 다행이다 싶었다. 어차피 원룸에서 키우니까 나랑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한빛 군입대로 푸리는 우리집에 왔다. 엄마, 죄송해요 제대까지만 키워주세요. 하는데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겉으로는 “응. 걱정 마. 잘 키울게.” 했다. 고양이털과 냄새만 생각해도 끔찍했지만 어쩐다? 아들 바보? 한빛이라면 모든 게 다 오케이인 엄마이니 받아들일 수 밖에. 입대 전 푸리에게 큰 캣타워를 선물한다고 했다. 무슨 고양이한테까지 선물이냐고 하니 “그동안 모아놓은 돈이 조금 있어요. 10만원도 안 해요”했다. 설치하러 온 기사는 원목이고 미끄럼틀 옵션도 있는 좋은 거라며 30만원은 더 될 거라고 했다. 한빛이가 엄마 눈치를 살폈나 보다.
푸리는 항상 한빛방에서 잤다. 한빛이 침대위에 책을 펼쳐놓고 나가면 푸리는 꼭 그 책위에 엎디어 잤다. 그 모습이 독서하다 잠든 대단한(?) 고양이 같아 그 집사에 그 고양이 하며 웃었었다. 푸리는 우리한테는 도도하게 거리를 두다가도 한빛이가 집에 오면 슬그머니 거실로 나왔다. 한빛이 푸리를 두 손으로 안거나 어깨에 얹어 거실로 나와 서로 장난할 때 보면 푸리도 귀엽고 일반적인 고양이었다. 다른 사람한테는 그렇게 까칠한데 한빛이랑은 정말 잘 놀았다.
푸리는 한빛의 부재를 알까? 나는 한빛이 그리울 때마다 푸리를 안았다. 푸리의 깊은 눈빛에 한빛이 어려있을 때도 있었다. 푸리도 많이 변했다. 한빛만 잘 따랐던 푸리는 지금 한빛 없이도 우리와 잘 지내고 있다. 아침이면 방문 밖에서 야옹대며 우리를 깨운다. 한밤중에도 어느 새 우리 가슴에 올라와 꾹꾹이도 한다. 현관키를 누르면 어디선가 나타나 현관까지 마중도 나온다.
푸리는 한빛이 나에게 남긴 큰 선물이었다. 푸리를 키우면서 반려동물에 대한 시각이 달라졌다. 뜻밖이었다.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 고맙다. 나에겐 생각지도 못했던 큰 변화였다. 한빛은 마지막 글에 푸리에게 미안하다고 대신 전해달라고 했다. 참 따듯한 품성의 아들이었다.
푸리가 창밖을 무심히 쳐다볼 때, 거실 가운데서 식빵을 만들고 가만히 있을 때, 소파 틈새에 또아리를 틀고 힘겹게 자고 있을 때 엄마는 푸리가 너를 그리워하는 것 같아 가슴이 미어진다. 베란다에서 그루밍을 하고 있을 때 너 말고는 푸리 목욕을 시킬 수가 없는데 어쩌나? 엄마가 기도하다 울면 옆에 앉아 있다가도 꼬리를 내리고 슬그머니 네 방으로 들어갈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엄마가 아는 게 없어 너한테도 푸리한테도 많이 미안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