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 김혜영
엄마의 거짓말
한빛이 중학교 입학해서 1학년 담임선생님과의 첫 상담. 나는 아이의 인격을 존중하는 좋은 엄마로 비춰지길 바라며 나의 자녀교육방향을 이야기 했다. “제가 가장 바라는 것은 우리 아이가 정직한 아이로 크는 것이지요. 그리고 즐겁게 학교생활을 하는 것. 공부는 그 다음이지요.” 정말 솔직한 표현이었을까? 속으로는 잠시 후끈거렸지만 내 얘기에 존경의(?) 미소를 지으시던 선생님을 보면서 뿌듯해 했던 것 같다.
그로부터 며칠 뒤 가슴을 철렁하게 만드는 한 편의 글을 보게 되었다. 한빛 책상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들춰본 아들의 국어공책. “엄마의 거짓말”. 제목부터가 충격적인 작문의 내용은 이러했다. “우리 엄마는 거짓말을 잘하신다. 특히 아빠와 싸우시면 꼭 동생과 내게 아빠에게 전화를 걸라고 시키신다. 지금 엄마가 아파서 저녁을 못 먹고 있으니 빨리 들어오시라는 내용이다. 저녁으로 카레를 맛있게 먹고 후식으로 과일까지 먹었는데 단지 아빠를 빨리 불러들이기 위해 엄마는 우리에게 거짓말을 하라고 시키시는 것이다. 나야 방에 숨어버리면 그만이지만 매번 꼼짝없이 붙잡혀 전화를 거는 동생이 불쌍하다. 아빠가 동생의 전화에 깜빡 속아 집까지 숨차게 뛰어오시면 방금 전까지도 텔레비전을 보시던 엄마는 이불을 쓰고 누워 아픈 척 연기를 하신다. 나는 그게 싫다. 아. 정말 이해가 안 돼. 우리보고는 거짓말이 나쁜 거라고 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엄마는 왜 우리한테는 거짓말을 하라고 시키시는 건지. 난 정말 거짓말하기 싫은데.”
한빛의 국어담당이셨던 담임선생님께 높은 점수를 받은 한빛의 국어 수행평가 과제. 며칠 전 상담때가 떠올라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한빛에게 정말 미안했다. 학교에서 돌아온 한빛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 “정말 미안해. 앞으로는 거짓말 하라고 하지 않을게. 엄마 때문에 많이 속상했지?” “좀 그랬지만 이젠 다 풀렸어요.” 하며 한빛은 씨익 웃었다.
말과 행동이 따로라면 그것만큼 나쁜 교육이 더 있을까? 엄마의 거짓말을 다룬 한빛의 국어 과제. 내 인생 최고의 교훈서가 되었다. 이후로는 두 아이에게 거짓말을 절대로 안 하려고 무진 애쓰고 노력했으니까.
(TV동화 행복한 세상 / 2012년 방영)
지금은 신호등의 초록불을 초록색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어렸을 때는 왜 파란색이라고 가르쳤을까? 그때는 진짜 파란색이었나? 신호등을 본 적이 없는 시골에서 자랐기에 별 생각이 없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초록불이 켜지면 습관적으로 “한빛, 파란불 켜졌다. 빨리 건너자”고 말했다. 그때마다 어린 한빛은 “엄마, 왜 초록불을 파란불이라고 해요?”하고 묻곤 했다. 아이들 질문에는 엉뚱하게라도 답을 해주는 편인데 딱히 설명을 못했던 것 같다. 횡단보도에다른 사람들도 있는 데 한빛 한솔이가 번번이 같은 질문을 하니까 아이들앞에서는 의도적으로 초록불이라고 했다. 어색했지만 아이들이 궁금해하는 것이 당연하니 내가 수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빛과 슈퍼를 갈 때 한빛이 슬리퍼나 운동화를 찍찍 끌면서 갈 때가 있었다. 신발을 똑바로 신지 않은 것이 신경쓰여서 “한빛, 사람들이 뭐라고 그러잖아. 신발 똑바로 신어야지”하고 야단치곤 했다. 초등학교 저학년때 한빛은 사람들은 나한테 아무 말도 안하는데... 하며 신발 잘못 신은 것을 고치라고 하면 되는데 엄마는 왜 말을 꾸밀까? 아니 거짓말을 할까? 하며 볼멘소리를 했었다.
솔직히 한빛은 엄마의 아킬레스건을 정확하게 짚었다. 나는 안다. 나는 어떤 일이 생기면 먼저 겁부터 먹고 해결해야 하는 부담 속에서 일을 실제보다 크게 생각한다. 사실(fact)을 직시하기 보다는 과장한다. 그래서 매사 많이 힘들고 힘들게 일을 풀어간다. 어린 한빛의 볼멘소리와 중1때 국어공책은 나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렸고 나는 솔직히 인정했다. 그 이후 내 버릇을 다 고치지는 못했지만 최소한 한빛과 한솔에게는 솔직하고자 했다. 사실(fact)만 말하고자 했고 여기부터는 엄마 생각이야 하며 이야기했다. 그만큼 아이에게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훗날 한빛에게 이 얘기를 했다.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과 함께. 한빛은 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것 같다.
나에게 다시 아킬레스건을 극복하고 사실(fact)를 끝까지 붙잡게 한 것은 한빛이 떠난 후 기자회견을 결심하면서였다. 아들을 잃은 분노, 억울함, 슬픔 등을 어떻게 사실, fact로만 이야기할 수 있으랴? 엄마가 죽는 날까지 싸울 거라고 한빛에게 약속했지만 나는 안다. 골리앗과의 싸움이 얼마나 힘들고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것을. 그래서 ‘나중에 울자’고 결심했고 사실(fact)만 붙잡았다. 한빛을 살릴 수 있는 길은 그 길 뿐이었다. 한빛은 또 사실, fact로 나에게 온 것이다.
한빛아, 이제는 사실, fact를 놓아도 되지? 이제는 엄마 울어도 되지?
- 엄마 김혜영
엄마의 거짓말
한빛이 중학교 입학해서 1학년 담임선생님과의 첫 상담. 나는 아이의 인격을 존중하는 좋은 엄마로 비춰지길 바라며 나의 자녀교육방향을 이야기 했다. “제가 가장 바라는 것은 우리 아이가 정직한 아이로 크는 것이지요. 그리고 즐겁게 학교생활을 하는 것. 공부는 그 다음이지요.” 정말 솔직한 표현이었을까? 속으로는 잠시 후끈거렸지만 내 얘기에 존경의(?) 미소를 지으시던 선생님을 보면서 뿌듯해 했던 것 같다.
그로부터 며칠 뒤 가슴을 철렁하게 만드는 한 편의 글을 보게 되었다. 한빛 책상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들춰본 아들의 국어공책. “엄마의 거짓말”. 제목부터가 충격적인 작문의 내용은 이러했다. “우리 엄마는 거짓말을 잘하신다. 특히 아빠와 싸우시면 꼭 동생과 내게 아빠에게 전화를 걸라고 시키신다. 지금 엄마가 아파서 저녁을 못 먹고 있으니 빨리 들어오시라는 내용이다. 저녁으로 카레를 맛있게 먹고 후식으로 과일까지 먹었는데 단지 아빠를 빨리 불러들이기 위해 엄마는 우리에게 거짓말을 하라고 시키시는 것이다. 나야 방에 숨어버리면 그만이지만 매번 꼼짝없이 붙잡혀 전화를 거는 동생이 불쌍하다. 아빠가 동생의 전화에 깜빡 속아 집까지 숨차게 뛰어오시면 방금 전까지도 텔레비전을 보시던 엄마는 이불을 쓰고 누워 아픈 척 연기를 하신다. 나는 그게 싫다. 아. 정말 이해가 안 돼. 우리보고는 거짓말이 나쁜 거라고 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엄마는 왜 우리한테는 거짓말을 하라고 시키시는 건지. 난 정말 거짓말하기 싫은데.”
한빛의 국어담당이셨던 담임선생님께 높은 점수를 받은 한빛의 국어 수행평가 과제. 며칠 전 상담때가 떠올라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한빛에게 정말 미안했다. 학교에서 돌아온 한빛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 “정말 미안해. 앞으로는 거짓말 하라고 하지 않을게. 엄마 때문에 많이 속상했지?” “좀 그랬지만 이젠 다 풀렸어요.” 하며 한빛은 씨익 웃었다.
말과 행동이 따로라면 그것만큼 나쁜 교육이 더 있을까? 엄마의 거짓말을 다룬 한빛의 국어 과제. 내 인생 최고의 교훈서가 되었다. 이후로는 두 아이에게 거짓말을 절대로 안 하려고 무진 애쓰고 노력했으니까.
(TV동화 행복한 세상 / 2012년 방영)
지금은 신호등의 초록불을 초록색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어렸을 때는 왜 파란색이라고 가르쳤을까? 그때는 진짜 파란색이었나? 신호등을 본 적이 없는 시골에서 자랐기에 별 생각이 없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초록불이 켜지면 습관적으로 “한빛, 파란불 켜졌다. 빨리 건너자”고 말했다. 그때마다 어린 한빛은 “엄마, 왜 초록불을 파란불이라고 해요?”하고 묻곤 했다. 아이들 질문에는 엉뚱하게라도 답을 해주는 편인데 딱히 설명을 못했던 것 같다. 횡단보도에다른 사람들도 있는 데 한빛 한솔이가 번번이 같은 질문을 하니까 아이들앞에서는 의도적으로 초록불이라고 했다. 어색했지만 아이들이 궁금해하는 것이 당연하니 내가 수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빛과 슈퍼를 갈 때 한빛이 슬리퍼나 운동화를 찍찍 끌면서 갈 때가 있었다. 신발을 똑바로 신지 않은 것이 신경쓰여서 “한빛, 사람들이 뭐라고 그러잖아. 신발 똑바로 신어야지”하고 야단치곤 했다. 초등학교 저학년때 한빛은 사람들은 나한테 아무 말도 안하는데... 하며 신발 잘못 신은 것을 고치라고 하면 되는데 엄마는 왜 말을 꾸밀까? 아니 거짓말을 할까? 하며 볼멘소리를 했었다.
솔직히 한빛은 엄마의 아킬레스건을 정확하게 짚었다. 나는 안다. 나는 어떤 일이 생기면 먼저 겁부터 먹고 해결해야 하는 부담 속에서 일을 실제보다 크게 생각한다. 사실(fact)을 직시하기 보다는 과장한다. 그래서 매사 많이 힘들고 힘들게 일을 풀어간다. 어린 한빛의 볼멘소리와 중1때 국어공책은 나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렸고 나는 솔직히 인정했다. 그 이후 내 버릇을 다 고치지는 못했지만 최소한 한빛과 한솔에게는 솔직하고자 했다. 사실(fact)만 말하고자 했고 여기부터는 엄마 생각이야 하며 이야기했다. 그만큼 아이에게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훗날 한빛에게 이 얘기를 했다.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과 함께. 한빛은 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것 같다.
나에게 다시 아킬레스건을 극복하고 사실(fact)를 끝까지 붙잡게 한 것은 한빛이 떠난 후 기자회견을 결심하면서였다. 아들을 잃은 분노, 억울함, 슬픔 등을 어떻게 사실, fact로만 이야기할 수 있으랴? 엄마가 죽는 날까지 싸울 거라고 한빛에게 약속했지만 나는 안다. 골리앗과의 싸움이 얼마나 힘들고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것을. 그래서 ‘나중에 울자’고 결심했고 사실(fact)만 붙잡았다. 한빛을 살릴 수 있는 길은 그 길 뿐이었다. 한빛은 또 사실, fact로 나에게 온 것이다.
한빛아, 이제는 사실, fact를 놓아도 되지? 이제는 엄마 울어도 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