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 김혜영
민물고기와 개울순례
한빛이 세 살때 수족관을 설치했던 것 같다. 좁은 아파트에 공간이 가능했을까? 지금 생각하면 엄두가 안 난다. 어린이집 친구들은 수족관을 두 개 가진 한빛을 부러워했다. 우리 집에 오면 모두들 장난감보다는 수족관 앞에서 더 많이 놀았다. 한빛은 친구들에게 물고기의 이름을 말해주며 으쓱해하곤 했다. 엄마들이 아이들의 성화에 민물고기를 분양해가기도 하지만 제대로 키우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사실 민물고기를 키우게 된 것은 경제적인 이유이기도 했다. 자가용문화와 가족여행이 막 시작되던 90년대 초. 우리도 두 아이를 남들처럼 풍족하고 여유있게 키우고 싶었다. 남편의 해직으로 모든 게 힘들었던 그 시절. 사회분위기를 따라 갈 수는 없었다. 부모로서 미안했다. 남편은 안쓰러운 마음에 생태와 환경에 관심이 많았던 동료해직교사 가족과 함께 민물고기를 생각했던 것 같다. 물고기 도구를 가지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일요일마다 전국의 개울을 찾아간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즐거워하는 두 아이를 보며 우리는 행복했고 씩씩하게 살 수 있었다.
한빛은 민물고기책 사진을 워낙 많이 봐서인지 물고기들을 잘 구분했고 이름도 척척 말했다. 꺽지를 잡았을 때 임꺽정이야기를 해 주었더니 꺽지한테 물고기 대장이라고 이름지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꺽지한테 인사하던 어린 한빛의 눈이 참 맑고 컸었다. 길고 짙은 속눈썹으로 한빛은 눈빛도 호수처럼 참 깊었다.
아래 글은 1993년 그 당시 썼던 글이다.
한때 나는 여행, 등산 등의 단어를 취미라고 하는 것은 ‘독서’라고 말하는 것 만큼이나 어리석다고 생각했었다. 일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결혼, 출산, 육아 등으로 정신없이 살다보니 어딘가로 떠난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할 일이 되어 버렸다.
이런 답답한 생활을 5년 넘게 하고 있는 나를 측은히 여겨 미안해하던 남편이 어느 날 신나는 일(?)을 하나 만들어 왔다고 당신도 무척 좋아할 것이라며 유난을 떨었다. 민물고기를 키우자는 것이었다. 전국의 개울을 누비자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클 때까지는 등산이나 긴 여행 등은 힘드니 가까운 개울부터 다니자는 것이었다. 사실 막내 한솔이가 천식기가 있고 방안 공기도 건조해 몇 해 전부터 수족관을 설치하고 싶었다. 그러나 예쁜 열대어들이 모두 엄청난 돈으로 보여 자신이 없었다. 수족관은 부잣집 거실에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상가 열대어 가게 수족관에 매달리는 것을 보면서도 선뜻 설치를 못하고 젖은 빨래나 주렁주렁 널자 하며 위로하던 참이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전국의 개울을 순례하기(?) 시작했다. 이천원짜리 쪽대, 장기간 운반시에 필요한 기포 발생기. 뜰채, 어항 등을 마련하고 13평 아파트 좁은 거실에 수족관을 설치했다. 개울에서 두 아이가 하나 둘씩 주어 온 자갈과 어린이집 친구가 바닷가 다녀오면서 준 조개껍질로 세상에서 하나 밖에 없는 멋진 수족관을 만들었다. 한솔은 “와! 용궁이다. 임금님은 어디 숨었어요? 인어공주도 있나요?”하며 난리고 한빛은 빨리 개울로 나가자고 안달이었다.
처음 갔던 개울은 의정부 집에서 가까운 광릉수목원 끝자락 실개천이었다. 장흥과 포천의 계곡, 임진강, 대성리, 월악산 계곡 등 많은 곳을 누볐다. 두 아들이 서울랜드보다 더 좋아했던 청계산 계곡에는 보리새우가 많았다. 관악산 계곡도 맑고 얕아 아이들이 놀기에는 정말 최상이었다. 지금은 출입이 많이 금지되었지만 당시 우리가 갈 곳은 많았다. 두 아들은 첨벙첨벙 개울로 뛰어들었다. 놀란 고기들은 재빨리 숨어 눈과 코만 모래 밖으로 내놓고 숨바꼭질을 했다. 돌바닥이 훤히 보이는 개울에서 물고기와 함께 물장구치는 것이 신나 논두렁과 수풀을 헤치며 힘들게 걸어온 것은 다 잊은 듯했다. 아빠가 고기를 잡아오면 한빛은 민물고기 사전을 펴 사진과 비교하며 고기이름을 찾았다.
수족관이 두 개로 늘어났다. 꺽지와 같은 육식물고기를 위해 안방에 작은 것을 하나 더 설치했다. 작은 수족관은 바로 눈앞에 있어 꺽지의 표정, 지느러미의 움직임 등을 아주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두 아이는 매일 아침 일어나면 물고기들과 인사한다. 태풍소식이 들리면 한빛은 개울의 물고기들이 많이 다칠까봐 걱정한다. 대견스럽고 그 마음이 그대로 컸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다.
우리의 개울순례는 두 아이에게 새로운 탐구학습의 장이었다. 붕어만 알던 아이들이 나도 생소한 민물고기 이름 - 동자개, 새코 미꾸리, 미꾸라지, 얼룩동사리, 돌마자 등을 구별할 때는 정말 기특했다. 남편은 단순하면서도 깨끗한 돌고기, 나는 오색찬란한 수컷 피라미, 한빛은 물고기 대장인 꺽지를 좋아했다. 한솔은 자기가 잡은 보리새우와 다슬기를 친구라며 자랑했다.
물고기 장비를 낑낑대며 어린 두 아이와 전철과 버스를 타고 개울을 찾아 간다는 것은 고생이지만 오늘은 무슨 물고기를 만날까 하는 호기심으로 힘들어하지 않았던 두 아들이 고맙다.
(한국관광공사/제6회 건전관광 수필 입상 작품/1993년)
- 엄마 김혜영
민물고기와 개울순례
한빛이 세 살때 수족관을 설치했던 것 같다. 좁은 아파트에 공간이 가능했을까? 지금 생각하면 엄두가 안 난다. 어린이집 친구들은 수족관을 두 개 가진 한빛을 부러워했다. 우리 집에 오면 모두들 장난감보다는 수족관 앞에서 더 많이 놀았다. 한빛은 친구들에게 물고기의 이름을 말해주며 으쓱해하곤 했다. 엄마들이 아이들의 성화에 민물고기를 분양해가기도 하지만 제대로 키우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사실 민물고기를 키우게 된 것은 경제적인 이유이기도 했다. 자가용문화와 가족여행이 막 시작되던 90년대 초. 우리도 두 아이를 남들처럼 풍족하고 여유있게 키우고 싶었다. 남편의 해직으로 모든 게 힘들었던 그 시절. 사회분위기를 따라 갈 수는 없었다. 부모로서 미안했다. 남편은 안쓰러운 마음에 생태와 환경에 관심이 많았던 동료해직교사 가족과 함께 민물고기를 생각했던 것 같다. 물고기 도구를 가지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일요일마다 전국의 개울을 찾아간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즐거워하는 두 아이를 보며 우리는 행복했고 씩씩하게 살 수 있었다.
한빛은 민물고기책 사진을 워낙 많이 봐서인지 물고기들을 잘 구분했고 이름도 척척 말했다. 꺽지를 잡았을 때 임꺽정이야기를 해 주었더니 꺽지한테 물고기 대장이라고 이름지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꺽지한테 인사하던 어린 한빛의 눈이 참 맑고 컸었다. 길고 짙은 속눈썹으로 한빛은 눈빛도 호수처럼 참 깊었다.
아래 글은 1993년 그 당시 썼던 글이다.
한때 나는 여행, 등산 등의 단어를 취미라고 하는 것은 ‘독서’라고 말하는 것 만큼이나 어리석다고 생각했었다. 일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결혼, 출산, 육아 등으로 정신없이 살다보니 어딘가로 떠난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할 일이 되어 버렸다.
이런 답답한 생활을 5년 넘게 하고 있는 나를 측은히 여겨 미안해하던 남편이 어느 날 신나는 일(?)을 하나 만들어 왔다고 당신도 무척 좋아할 것이라며 유난을 떨었다. 민물고기를 키우자는 것이었다. 전국의 개울을 누비자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클 때까지는 등산이나 긴 여행 등은 힘드니 가까운 개울부터 다니자는 것이었다. 사실 막내 한솔이가 천식기가 있고 방안 공기도 건조해 몇 해 전부터 수족관을 설치하고 싶었다. 그러나 예쁜 열대어들이 모두 엄청난 돈으로 보여 자신이 없었다. 수족관은 부잣집 거실에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상가 열대어 가게 수족관에 매달리는 것을 보면서도 선뜻 설치를 못하고 젖은 빨래나 주렁주렁 널자 하며 위로하던 참이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전국의 개울을 순례하기(?) 시작했다. 이천원짜리 쪽대, 장기간 운반시에 필요한 기포 발생기. 뜰채, 어항 등을 마련하고 13평 아파트 좁은 거실에 수족관을 설치했다. 개울에서 두 아이가 하나 둘씩 주어 온 자갈과 어린이집 친구가 바닷가 다녀오면서 준 조개껍질로 세상에서 하나 밖에 없는 멋진 수족관을 만들었다. 한솔은 “와! 용궁이다. 임금님은 어디 숨었어요? 인어공주도 있나요?”하며 난리고 한빛은 빨리 개울로 나가자고 안달이었다.
처음 갔던 개울은 의정부 집에서 가까운 광릉수목원 끝자락 실개천이었다. 장흥과 포천의 계곡, 임진강, 대성리, 월악산 계곡 등 많은 곳을 누볐다. 두 아들이 서울랜드보다 더 좋아했던 청계산 계곡에는 보리새우가 많았다. 관악산 계곡도 맑고 얕아 아이들이 놀기에는 정말 최상이었다. 지금은 출입이 많이 금지되었지만 당시 우리가 갈 곳은 많았다. 두 아들은 첨벙첨벙 개울로 뛰어들었다. 놀란 고기들은 재빨리 숨어 눈과 코만 모래 밖으로 내놓고 숨바꼭질을 했다. 돌바닥이 훤히 보이는 개울에서 물고기와 함께 물장구치는 것이 신나 논두렁과 수풀을 헤치며 힘들게 걸어온 것은 다 잊은 듯했다. 아빠가 고기를 잡아오면 한빛은 민물고기 사전을 펴 사진과 비교하며 고기이름을 찾았다.
수족관이 두 개로 늘어났다. 꺽지와 같은 육식물고기를 위해 안방에 작은 것을 하나 더 설치했다. 작은 수족관은 바로 눈앞에 있어 꺽지의 표정, 지느러미의 움직임 등을 아주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두 아이는 매일 아침 일어나면 물고기들과 인사한다. 태풍소식이 들리면 한빛은 개울의 물고기들이 많이 다칠까봐 걱정한다. 대견스럽고 그 마음이 그대로 컸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다.
우리의 개울순례는 두 아이에게 새로운 탐구학습의 장이었다. 붕어만 알던 아이들이 나도 생소한 민물고기 이름 - 동자개, 새코 미꾸리, 미꾸라지, 얼룩동사리, 돌마자 등을 구별할 때는 정말 기특했다. 남편은 단순하면서도 깨끗한 돌고기, 나는 오색찬란한 수컷 피라미, 한빛은 물고기 대장인 꺽지를 좋아했다. 한솔은 자기가 잡은 보리새우와 다슬기를 친구라며 자랑했다.
물고기 장비를 낑낑대며 어린 두 아이와 전철과 버스를 타고 개울을 찾아 간다는 것은 고생이지만 오늘은 무슨 물고기를 만날까 하는 호기심으로 힘들어하지 않았던 두 아들이 고맙다.
(한국관광공사/제6회 건전관광 수필 입상 작품/199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