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 김혜영
시선 - 측은지심
현관과 서재, 베란다에 가득 쌓여 있는 신문지, 책자, 헌 옷 등을 볼 때마다 ‘꼭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회의에 젖는다. 이번 주 분리수거날 싹~ 처리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한빛이 떠난 후에는 더더욱 이런 삶이 구질구질하다. 잘난 척하려고 한 것도 아니고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서도 아니었건만 이젠 이런 시선을 갖고 사는 나자신이 가증스럽다. 누가 누구에게 측은지심을?
한빛이 언젠가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정서는 ‘측은지심’ 이라고. 고등학교때 윤리시간에 달달 외웠던 ‘측은지심’이란 단어. 나에게는 교과서 속의 도덕적인 사자성어로만 존재했었는데 한빛의 말을 듣는 순간 이 단어가 따듯하게 다가왔다. 신비스러웠다.
그러고 보니 나도 남편의 해직으로 ‘측은지심’ 상황을 깊이 경험했다. 남이 보기에는 우습지만 나는 지금도 신용카드가 아닌 체크카드를 쓰면서 으쓱해한다. 통장에 적은 금액이라고 잔액이 있음을 확인하면 뿌듯해진다. 지금 충분히 부자인데도(?) 남편 해직기간 동안의 기억때문인 것 같다.
8월의 태양이 뜨겁게 내리쬐던 농협 앞. 복잡하고 좁은 길거리에 배부른 임산부가 두 살배기 아이의 손을 잡고 있었다. 월급일이 지난 지 겨우 일주일째인데 통장 잔액은 십여만원. 남편이 해직된 상태였기에 이 돈으로 한 달을 살아내야 하는데. 나는 신용카드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현금이 없었으니까. 한빛은 노점상에 있는 장난감을 사달라고 칭얼댔다. 병원에서 두려움에 떨면서 주사를 맞은 어린 한빛에게 무엇을 못 사주랴? 그러나 나에겐 현금이 없었다. 아이가 사달랜다고 불량품같은 장난감을 획~아무 거나 집어주는 것은 비교육적이라고 나자신을 몰아갔다. 칭얼대는 아이를 달랬다. 얼마나 갖고 싶었을까? 1회성 장난감들을 쉽게 사주는 엄마를 부러워하진 않았다. 그런데 지금 마음이 많이 아프다.
‘측은지심’. 그 마음을 안다. 경험했고 또 살아가면서 이웃을 바라보는 시선의 중심은 ‘측은지심’이라는 것도 안다. 아니 인간이 갖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심성 역시 ‘측은지심’이어야 함도 안다.
한빛도 그렇고 한솔이도 대학생이 되고는 주로 노점상에서 현금거래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엄마입장에서는 이제 대학생도 되었으니 백화점에서 비싼 옷도 사주고 싶고 아들이 백화점 상품을 좋아했으면 했다. 내가 아직 경제적 능력이 있고 또 신용카드가 있으니까 아들이 원하면 다 사줄 수 있었다. 양말 하나도 백화점에서 사주고 싶었다. 그러나 한빛 한솔은 굳이 노점상에서 샀다. “이런 것은 엄마가 사줄게. 용돈은 친구들과 놀 때 쓰지” 하는 내 말에 한빛은 ‘측은지심’을 이야기했다. “엄마, 백화점에서는 가격 안 깎잖아요. 시장에서 할머니들이 하루하루 팔아야 하는 야채 제 값 다 주셔야 해요.” 하며 한빛은 작은 가게를 이용할 때는 일부러 현금으로 거래한다고 했다.
그리고 관악구 원룸 주변에는 폐휴지 모으시는 어르신들이 많다며 신문이나 병을 모아 이 분들한테 주는 게 어떠냐고 했다. 한 방 맞은 느낌. 그래 좋은, 바른 생각이다. 평소 우리 동네에도 폐휴지 모으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많이 만나는데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했었다. 매일 보는 신문과 간행물, 병들을 모았다. 현관은 항상 지저분했고 서재까지 어수선했다. 집안청소를 해도 깔끔하지가 않다. 그렇게 몇 년을 살았다.
한빛이 떠난 후 시선을 나한테만 고정하겠다고 발버둥쳤지만 오늘도 나는 현관에, 베란다에 신문과 우편물을 모으고 있다. 택배 겉봉투 비닐과 테이프를 힘들게 분리하며 한빛의 따듯한 시선을 붙잡는다. 나에 대한 측은지심이다.
- 엄마 김혜영
시선 - 측은지심
현관과 서재, 베란다에 가득 쌓여 있는 신문지, 책자, 헌 옷 등을 볼 때마다 ‘꼭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회의에 젖는다. 이번 주 분리수거날 싹~ 처리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한빛이 떠난 후에는 더더욱 이런 삶이 구질구질하다. 잘난 척하려고 한 것도 아니고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서도 아니었건만 이젠 이런 시선을 갖고 사는 나자신이 가증스럽다. 누가 누구에게 측은지심을?
한빛이 언젠가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정서는 ‘측은지심’ 이라고. 고등학교때 윤리시간에 달달 외웠던 ‘측은지심’이란 단어. 나에게는 교과서 속의 도덕적인 사자성어로만 존재했었는데 한빛의 말을 듣는 순간 이 단어가 따듯하게 다가왔다. 신비스러웠다.
그러고 보니 나도 남편의 해직으로 ‘측은지심’ 상황을 깊이 경험했다. 남이 보기에는 우습지만 나는 지금도 신용카드가 아닌 체크카드를 쓰면서 으쓱해한다. 통장에 적은 금액이라고 잔액이 있음을 확인하면 뿌듯해진다. 지금 충분히 부자인데도(?) 남편 해직기간 동안의 기억때문인 것 같다.
8월의 태양이 뜨겁게 내리쬐던 농협 앞. 복잡하고 좁은 길거리에 배부른 임산부가 두 살배기 아이의 손을 잡고 있었다. 월급일이 지난 지 겨우 일주일째인데 통장 잔액은 십여만원. 남편이 해직된 상태였기에 이 돈으로 한 달을 살아내야 하는데. 나는 신용카드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현금이 없었으니까. 한빛은 노점상에 있는 장난감을 사달라고 칭얼댔다. 병원에서 두려움에 떨면서 주사를 맞은 어린 한빛에게 무엇을 못 사주랴? 그러나 나에겐 현금이 없었다. 아이가 사달랜다고 불량품같은 장난감을 획~아무 거나 집어주는 것은 비교육적이라고 나자신을 몰아갔다. 칭얼대는 아이를 달랬다. 얼마나 갖고 싶었을까? 1회성 장난감들을 쉽게 사주는 엄마를 부러워하진 않았다. 그런데 지금 마음이 많이 아프다.
‘측은지심’. 그 마음을 안다. 경험했고 또 살아가면서 이웃을 바라보는 시선의 중심은 ‘측은지심’이라는 것도 안다. 아니 인간이 갖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심성 역시 ‘측은지심’이어야 함도 안다.
한빛도 그렇고 한솔이도 대학생이 되고는 주로 노점상에서 현금거래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엄마입장에서는 이제 대학생도 되었으니 백화점에서 비싼 옷도 사주고 싶고 아들이 백화점 상품을 좋아했으면 했다. 내가 아직 경제적 능력이 있고 또 신용카드가 있으니까 아들이 원하면 다 사줄 수 있었다. 양말 하나도 백화점에서 사주고 싶었다. 그러나 한빛 한솔은 굳이 노점상에서 샀다. “이런 것은 엄마가 사줄게. 용돈은 친구들과 놀 때 쓰지” 하는 내 말에 한빛은 ‘측은지심’을 이야기했다. “엄마, 백화점에서는 가격 안 깎잖아요. 시장에서 할머니들이 하루하루 팔아야 하는 야채 제 값 다 주셔야 해요.” 하며 한빛은 작은 가게를 이용할 때는 일부러 현금으로 거래한다고 했다.
그리고 관악구 원룸 주변에는 폐휴지 모으시는 어르신들이 많다며 신문이나 병을 모아 이 분들한테 주는 게 어떠냐고 했다. 한 방 맞은 느낌. 그래 좋은, 바른 생각이다. 평소 우리 동네에도 폐휴지 모으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많이 만나는데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했었다. 매일 보는 신문과 간행물, 병들을 모았다. 현관은 항상 지저분했고 서재까지 어수선했다. 집안청소를 해도 깔끔하지가 않다. 그렇게 몇 년을 살았다.
한빛이 떠난 후 시선을 나한테만 고정하겠다고 발버둥쳤지만 오늘도 나는 현관에, 베란다에 신문과 우편물을 모으고 있다. 택배 겉봉투 비닐과 테이프를 힘들게 분리하며 한빛의 따듯한 시선을 붙잡는다. 나에 대한 측은지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