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 김혜영
한빛과 함께 한 시간 - 서울대 캠퍼스 탐방
교직생활을 처음 시작했던 80년대만 해도 교사연수기관은 서울대연수원이 전부였다. 경기도 교사들은 자격연수도 서울대에서 받았는데 거리상 먼 경기북부교사들에게는 좋은 연수가 개설되어도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다행히 이후 연수기관이 많아져서 서울대 갈 일은 없었지만.
2008년. 한빛이 서울대에 입학한 후. 나는 서울대연수만 있으면 무조건 신청했다. 한빛이 서울대입구 원룸에 있어 일주일이라도 밥도 해주고 같이 자고 싶어서였다. 한빛은 걷기를 좋아하는 엄마를 위해 밀집한 원룸 뒤의 산길을 넘으면 사범대가 나오는 숲길을 가르쳐줬다. 비가 엄청 오던 여름날엔 원룸에서 서울대까지 언덕을 함께 걸었다. 정문을 지나치지 않고도 갈 수 있는 샛길이 정말 많았다.
연수 마지막 날. 일찍 끝나기도 하니까 캠퍼스 탐방을 하고 싶다고 했다. 나중에 진로탐색교육활동으로 학생들과 함께 오려고 하는데 미리 체험해보면 좋을 것 같아서라고 했다. 한빛은 웃으면서 “우린 학생들이 다가오면 슬쩍 도망가는데... 학생들의 진지한 눈빛에 저희가 해 줄 말이란 게... 그리고 엄마, 학생들한테 미션 많이 주지 마세요. 그냥 가볍게 즐겁게 느끼고 가도 되는데... 여기까지 와서 엄청 많은 질문지에 칸 채우느라 고생하는 학생들 보면 좀 그래요”했다. “그래도 도망가는 건 좀 그렇다. 정보나 문화혜택이 전혀 없는 지역에서 왔을지도 모르잖아. 친절하게 해줘. 우리 학교 애들은 전철역 낙성대도 대학이름인 줄 아는데... 엄마는 그 상황이 이해되거든...”
말은 이렇게 했지만 솔직히 엄마로서 서울대 다니는 아들과 함께 서울대를 걷고 싶었겠지. 단순한 탐방, 견학이 아닌 아들이 생활하는 곳곳을 보고 싶었고 자랑스러운 마음을 느끼고 싶어서였겠지. 속물근성이래도 엄마로서 누리고 싶었다.
한빛은 학과 건물 앞의 작은 광장에 대해 이야기했다. 모두 명칭이 있다고 했다. 아크로폴리스를 제일 먼저 갔다. 인문대는 해방터, 사범대는 페다고지, 공대는 붉은 광장이라고 했다. 그리고 사회대는 아고라라고 했다. 사회과학대 16동 앞. 나에겐 그저 작은 마당? 공터일 뿐인데 한빛의 설명을 듣고 나니 의미있는 광장으로 다가왔다. 가슴이 떨렸다.
한빛은 자하연을 좋아했다. 개나리와 목련이 한창이던 봄날과 뜨거웠던 한 여름. 자하연 벤치에 앉아 함께 커피를 마시기도 했었지. 중앙도서관에도 갔다. 도서관으로 들어가는 긴 통로를 중도터널이라고 했다. 대학생들에게는 아니 젊은이들에게는 이런 줄임말이나 명칭들이 일상적이겠지만 50대 중반의 엄마에게는 모두 신기했고 경탄스러웠다.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도라지. 도서관 라운지란다. 문득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도 이런 예쁜 이름들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학생들과 함께 이름을 짓는 과정을 가슴 설레며 상상했다.
학교를 다 돌지도 않았는데 다리가 아팠다. 정말 넓구나. 온통 초록인 것도 부러웠다. 문득 서울대가 국립대학이긴 하지만 혜택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등록금은 사립대에 비해 반밖에 안 내는데 자연환경도 그렇고 혜택이 너무 많은 것 아니니? 열악한 대학들과 나누어야 하지 않나?”하자 “받은 게 많은 만큼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부담도 커요. 그만큼 열심히 공부해야 하고 함부로 살 수 없으니까요”했다.
적폐의 진원으로 소위 학벌좋은 고위직들이 거론될 때 나는 교사로서 헷갈렸고 의아했다. 참된 학력에 따른 기준은 아니지만 최소한 그들은 나보다 중고등학생때 공부를 더 많이 했고 머리도 좋지 않았을까? 독서도 그들은 나보다 더 많이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대학도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4년을 누렸는데? 왜 그들의 생각과 행동은 바르지 않은 걸까? 한 학생이 “독서를 많이 하면 훌륭한 사람이 된다고 했는데 정말 그런가요?” 하면 엉뚱한 질문이라고 무시해야 하나? 학생들에게 나는 무엇을 어떻게 강조하며 가르쳐야 하는가? 혼란스러웠다.
한빛의 말을 들으며 내 아들이 바른 생각을 갖고 있는 게 자랑스러웠다. 아울러 한빛같은 젊음이 있으니 이 사회는 희망이 있다고 확신했다. 나는 아들이지만 한빛을 존중하고 존경했다. 그래서 한빛이 채울 멋진 미래를 상상하며 가슴이 뿌듯하기도 했었다.
나의 스마트폰에는 오늘도 한빛은 <나의 희망>이다.
- 엄마 김혜영
한빛과 함께 한 시간 - 서울대 캠퍼스 탐방
교직생활을 처음 시작했던 80년대만 해도 교사연수기관은 서울대연수원이 전부였다. 경기도 교사들은 자격연수도 서울대에서 받았는데 거리상 먼 경기북부교사들에게는 좋은 연수가 개설되어도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다행히 이후 연수기관이 많아져서 서울대 갈 일은 없었지만.
2008년. 한빛이 서울대에 입학한 후. 나는 서울대연수만 있으면 무조건 신청했다. 한빛이 서울대입구 원룸에 있어 일주일이라도 밥도 해주고 같이 자고 싶어서였다. 한빛은 걷기를 좋아하는 엄마를 위해 밀집한 원룸 뒤의 산길을 넘으면 사범대가 나오는 숲길을 가르쳐줬다. 비가 엄청 오던 여름날엔 원룸에서 서울대까지 언덕을 함께 걸었다. 정문을 지나치지 않고도 갈 수 있는 샛길이 정말 많았다.
연수 마지막 날. 일찍 끝나기도 하니까 캠퍼스 탐방을 하고 싶다고 했다. 나중에 진로탐색교육활동으로 학생들과 함께 오려고 하는데 미리 체험해보면 좋을 것 같아서라고 했다. 한빛은 웃으면서 “우린 학생들이 다가오면 슬쩍 도망가는데... 학생들의 진지한 눈빛에 저희가 해 줄 말이란 게... 그리고 엄마, 학생들한테 미션 많이 주지 마세요. 그냥 가볍게 즐겁게 느끼고 가도 되는데... 여기까지 와서 엄청 많은 질문지에 칸 채우느라 고생하는 학생들 보면 좀 그래요”했다. “그래도 도망가는 건 좀 그렇다. 정보나 문화혜택이 전혀 없는 지역에서 왔을지도 모르잖아. 친절하게 해줘. 우리 학교 애들은 전철역 낙성대도 대학이름인 줄 아는데... 엄마는 그 상황이 이해되거든...”
말은 이렇게 했지만 솔직히 엄마로서 서울대 다니는 아들과 함께 서울대를 걷고 싶었겠지. 단순한 탐방, 견학이 아닌 아들이 생활하는 곳곳을 보고 싶었고 자랑스러운 마음을 느끼고 싶어서였겠지. 속물근성이래도 엄마로서 누리고 싶었다.
한빛은 학과 건물 앞의 작은 광장에 대해 이야기했다. 모두 명칭이 있다고 했다. 아크로폴리스를 제일 먼저 갔다. 인문대는 해방터, 사범대는 페다고지, 공대는 붉은 광장이라고 했다. 그리고 사회대는 아고라라고 했다. 사회과학대 16동 앞. 나에겐 그저 작은 마당? 공터일 뿐인데 한빛의 설명을 듣고 나니 의미있는 광장으로 다가왔다. 가슴이 떨렸다.
한빛은 자하연을 좋아했다. 개나리와 목련이 한창이던 봄날과 뜨거웠던 한 여름. 자하연 벤치에 앉아 함께 커피를 마시기도 했었지. 중앙도서관에도 갔다. 도서관으로 들어가는 긴 통로를 중도터널이라고 했다. 대학생들에게는 아니 젊은이들에게는 이런 줄임말이나 명칭들이 일상적이겠지만 50대 중반의 엄마에게는 모두 신기했고 경탄스러웠다.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도라지. 도서관 라운지란다. 문득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도 이런 예쁜 이름들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학생들과 함께 이름을 짓는 과정을 가슴 설레며 상상했다.
학교를 다 돌지도 않았는데 다리가 아팠다. 정말 넓구나. 온통 초록인 것도 부러웠다. 문득 서울대가 국립대학이긴 하지만 혜택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등록금은 사립대에 비해 반밖에 안 내는데 자연환경도 그렇고 혜택이 너무 많은 것 아니니? 열악한 대학들과 나누어야 하지 않나?”하자 “받은 게 많은 만큼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부담도 커요. 그만큼 열심히 공부해야 하고 함부로 살 수 없으니까요”했다.
적폐의 진원으로 소위 학벌좋은 고위직들이 거론될 때 나는 교사로서 헷갈렸고 의아했다. 참된 학력에 따른 기준은 아니지만 최소한 그들은 나보다 중고등학생때 공부를 더 많이 했고 머리도 좋지 않았을까? 독서도 그들은 나보다 더 많이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대학도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4년을 누렸는데? 왜 그들의 생각과 행동은 바르지 않은 걸까? 한 학생이 “독서를 많이 하면 훌륭한 사람이 된다고 했는데 정말 그런가요?” 하면 엉뚱한 질문이라고 무시해야 하나? 학생들에게 나는 무엇을 어떻게 강조하며 가르쳐야 하는가? 혼란스러웠다.
한빛의 말을 들으며 내 아들이 바른 생각을 갖고 있는 게 자랑스러웠다. 아울러 한빛같은 젊음이 있으니 이 사회는 희망이 있다고 확신했다. 나는 아들이지만 한빛을 존중하고 존경했다. 그래서 한빛이 채울 멋진 미래를 상상하며 가슴이 뿌듯하기도 했었다.
나의 스마트폰에는 오늘도 한빛은 <나의 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