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 한빛과 함께 채울 내일

관리자
2018-04-16
조회수 1092

- 엄마 김혜영


2016년 10월. 한빛이 내 곁을 떠난 후 나에겐 시간도 함께 멈췄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고 그저 속절없이 아니 아무 감각없이, 그저 흘러가는 세상의 시간을 죽이며 울 수 밖에 없었다. 한빛한테 ‘엄마는 너를 가슴에 묻지 않고 부활시켜 함께 걸어가고 같이 살아갈거야’ 굳게 약속하고 허물어지는 나를 다잡고자 안간힘을 썼지만 희망일 뿐 하루하루가 힘들었다. 

그러나 더 슬픈 것은 시간만 멈춘 게 아니고 한빛에 대한 기억도 스물일곱 살에 멈췄다는 사실이었다. ‘지금, 여기’ 한빛을 이야기하고 싶은데 ‘~그랬었는데... ~그랬지...’ 자꾸 과거로 돌아가야 했다. 


   그 해 4월에 한빛은 노란 세월호 리본을 내 가방에 달아주며 “엄마, 기억하기 위한 작은 의식이여요. 기억도 의식을 갖추면 용기가 생겨요. 혼자보다는 함께 하는 공동체에서 우리는 소망을 이루기가 쉽고 연대할 때 혼자라는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거든요.”하며 불편해하지 말라고 했다. 솔직히 4월만 되면 가슴이 저려왔고 미안했다. 경기도 교사이기에 더 그랬다. 슬픔을 함께 나누는 마음으로 노란 리본을 달고 싶지만 사람들이 나를 대단히 의식있게(?) 볼까봐, 허리가 아파 전철에서도 노약자석이 비어있으면 냉큼 달려가는데 나 때문에 통째로 비도덕적이라고 욕먹을까봐 리본달기를 주저했었다. 또 광화문에 나가 힘을 보태주는 것도 아니고 그들과 한 공동체란 생각을 매일하는 것도 아닌 게 부끄러워서 리본을 슬그머니 풀어놓은 적도 있었다. 한빛은 리본을 다는 지극히 작은 의식은 서로의 가슴속에 있는 평화의 씨앗을 확인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 작은 씨앗이 큰 평화의 바람이 되어 고통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든다고 했다. 한빛은 그렇게 나에게 연대가 만들어 내는 평화를 가르쳐주고 자신은 홀로 떠났다. 


  

  2017년 4월 18일. 대책위 사건조사발표 기자간담회를 통해 한빛의 죽음을 공론화시켰다. 대책위가 꾸려졌어도 결국 아들의 죽음을 나 스스로 인정하고 확인하는 것이기에 나는 참석하지 않았었다. 또 거대한 괴물과의 싸움에서 피폐하게 남을 상처와 좌절 역시 두렵고 무서웠다. 그러나 나는 아들의 죽음과 직면하기로 했다. 한빛은 자신이 고민해온 문제들을 함께 공유하고 사회에 메시지를 던지는 멋진 작품을 만들겠다며 PD가 되었다. 나는 그 아름다운 청년 한빛의 엄마이고 아들에게 갚아야 할 것이 많았다. 어떻게 해야 너를 살리는지 잘 모르지만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하고 용기를 냈다. 

그날 나는 호소했다. “저는 아들 한빛을 가슴에 묻지 않고 부활시킬 것입니다. 한빛의 죽음이 결코 헛되지 않고 한빛이 이 사회에 던지고자 했던 메시지가 실현될 때까지 엄마로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여러분들께 진실을 밝히는데 함께 하고 도와달라고 간절하게 부탁드립니다.” 

  

  다시 4월이다. 

  기억... 이제 나는 한빛을 기억해야 한다. 함께 걸어가고 같이 살아가야 한다. 내 스스로 한빛을 부활시키기 위해 난 할 일이 많다. 당당해야 한다. 잘 살아야 한다. 한빛에게 그동안 나는 너무 많은 것을 받았고 특히 한빛은 나의 삶에 희망이었으니까. 정말 난 한빛에게 갚을 것이 많다. 

   이제 견.디.어.내야지. 


   한빛이 채울 내일. 다 갚.겠.다. 나는 한빛 엄마니까. (2018년 4월/ 엄마)

5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