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는 아이를 잃을 수 없습니다.(한겨레신문12.21)

김혜영
2020-12-21
조회수 385

“단식한다고 한빛이 살아 돌아와? 자식을 잃은 부모가 굶어야 하는 이 야만적인 국가에 뭘 기대해? 돈만 아는 기업들이 눈 하나 깜짝할 것 같아? 국회도 절대 약자편 아니야.” 악을 쓰며 울었다. 말려야 했다. 한빛을 잃은 후 한빛 아빠가 중환자실에 있었던 기억이 되살아났고 65세라는 나이가 겁났다.

‘다시는’ 우리 같이 고통받는 가족이 있어서는 안 된다. 더 이상 죽지 않아야 한다. 한빛은 사람이 사람에게 가혹해선 안 된다고 끝까지 목소리를 냈다. 한빛이나 용균이같은 이 사회의 청년들을 이제는 절망 속에서 살게 할 수 없다고 한빛 아빠는 울먹였다.

국회의사당 웅장한 기둥에 점하나 붙어있는 것처럼, 간신히 바람만 막은 작은 천막은 초라하고 추웠다. 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상식적인 세상을 기대했고 사람이 우선인 세상을 확신했던 그해 겨울이 생각났다. 불빛이 환한 의사당 창문을 성냥팔이 소녀처럼 마냥 바라보다가 얼굴빛이 새까맣게 변한 용균엄마, 한빛아빠를 보니 가슴이 미어졌다.

겨울이면 한빛이 대학문학상 수상소감(2016년)에 썼던 말이 생각난다. "올겨울은 춥단다. 세월호와 정리해고로 아픈 모든 이들 ... 언제나 나를 이해해주는 부모님까지. 덜 추운 겨울을 보냈으면 한다.” 단식농성을 하고 있는 아빠를 보고 한빛은 얼마나 가슴 아플까? 힘겨운 사람들을 걱정했던 한빛에게 너가 절망하고 떠난 이후에도 여전히 퇴근하지 못하는 가족이 있다고 어떻게 말하나?

매일 6~7명이 퇴근을 못하고 있다. 기가 막히게도 ‘사람 목숨이 낙엽처럼’이다. 21대 국회에 10만 국민의 동의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이 발의되었으나 정부와 국회는 국민을 방치했다. 정기국회에서 논의조차 안 했다.

코로나 때문에 오늘도 우리는 마스크를 착용하고 집콕한다. 예방을 위해 너도나도 노력한다. 내가 확진되어도 안 되지만 나로 인해 가족, 이웃에게 전염될 것을 더 걱정한다. 그들도 나만큼 귀하기에 상생을 위해 불편을 받아들인다. 산재사망 역시 코로나와 마찬가지이다. 미리 최소한의 안전을 위해 노력하면 사람은 죽지 않는다. 그럼에도 경제단체는 또 입법저지를 위해 총력전이다. 기업의 이윤이 사람 목숨보다 더 중요한가? 산업재해 사망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에게만 해당되서 그런가? 도대체 가난하고 힘없다는 것의 기준은 무엇인가? 정말 남의 일일까? 국회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나?

이 법안은 ‘처벌’보다는 ‘생명보호와 안전’인데 더 전문적인 그들이 모를 리가 없다. 열악한 작업환경에서 그렇게 많은 죽음이 있었어도 항상 노동자의 ‘실수’라고 제대로 된 보상이나 처벌도 없었다. 재해는 ‘사고’나 ‘실수’가 아니라 ‘범죄’이며 그 책임도 기업과 경영자에게 있어야 한다. 그래서 처벌받기 전에, 범죄행위가 되기 전에 경영자가 책임을 가지고 작업환경을 안전하게 만들도록 해야 한다.

기업과 노동자가 공생하는 세상은 정말 불가능할까? 기업가가 “먼저 안전한 환경을 구축하겠습니다” 하면 국회의원이 “사람이 우선인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그리고 노동자와 시민이 “모두가 만들고 싶은 세상, 상생하는 사회 함께 하겠습니다” 이런 의지로 서로 머리를 맞대고 뭉치면 모두를 위한 중대재해처벌기업법이 나올 것이다.

나는 아직도 한빛이 근무했던 상암동 DMC역을 지날 때 눈을 감는다. 대학때 원룸이 있던 서울대입구역을 피하려고 2호선을 빙 돌아 탄다. 아파트 마당에 한빛이 다니던 회사로고가 있는 택배차를 보면 순간 숨이 멎는다. 자식을 잃은 엄마는 매일 이렇게 살고 있다.

용균엄마와 한빛 아빠의 단식은 빨리 끝나야 한다. 자식이 살아 돌아오리란 희망이 있어 굶고 있는 게 아니다. 우리 모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운명’이 아닌 ‘미션’이 되어 자식이 남긴 과제가 모두에게 한 줄기 빛이 되기를 간절히 희망하기 때문이다.

간곡하게 요구합니다. 우리 모두를 살리는 ‘실질적인’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빠른 시일 안에 통과시켜주십시오. 사람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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