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418 - 기자간담회

김혜영
2020-08-18
조회수 849

< 정년퇴임과 함께 여러 가지를 정리하다가 한빛 문제를 처음 공론화 했던 기자간담회 원고를 보았다.  가슴이 울컥했다. 많은 이들에게 다시 감사한다. 엄마로서 한빛을 끌어안듯이 고마운 분들 역시 내 죽는 날까지 기억하겠다> 


이한빛PD엄마 김혜영입니다. 정치 사회적으로 바쁜 시간에 함께 해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16년 10월 26일로 시간이 멈춰있는 저는 아직도 아들 한빛이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아들을 자기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남편은 지난 6개월간 술과 수면제가 있어야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결국 지난 주 목요일 지나친 스트레스로 인해 간에 무리가 왔고 중환자실에 입원해 제가 유족 대표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매일 한빛이 안치된 성당에 가서 한빛을 만나 너를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울었습니다. 엄마는 너한테 받은게 많은데 갚을 수가 없구나 하며 기도를 해도 시간이 흐를수록 사무쳐 너무 보고 싶습니다. 대책위가 꾸려진다는 것은 저에게 아들의 죽음을 제 스스로 인정하고 더 큰 상처를 확인하게 하기에 저는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두렵고 무서웠습니다. 그러나 PD가 되어 자신이 고민해온 문제들을 함께 공유하고 사회에 메시지를 던지는 멋진 작품을 만들겠다는 아름다운 청년 한빛의 엄마로서 아들에게 갚아야 할 것이 많기에 아들 죽음과 직면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어제 한빛에게 어떻게 해야 너를 살리는지 잘 모르지만 최선을 다하게 하늘나라에서 기도해 달라고 했습니다.

제 휴대폰 한빛 연락처는 <나의 희망>으로 되어 있습니다. 신문이나 뉴스를 보다가 어떤 사안에 대해 물으면 한빛은 참 명쾌하게 이면의 진실까지 해석해줍니다. 나아가야 할 길까지 제시합니다. 아들 원룸에 갔을 때 꽂혀있는 책들을 보면서 공부도 참 많이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들은 그만큼 고민하고 치열하게 실천적으로 살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평범하게 살고 있는 교육자로서 책임감을 느끼고 마음을 다지곤 했습니다. 내 아들이지만 반듯한 아들이기에 엄마에게는 희망이었습니다.

소위 학벌도 좋고 직책도 높은 대단한 사람들이 사회 적폐의 진원지임을 볼 때 마다 저는 이해가 안됐습니다. 그렇게 많이 배우고 책도 더 많이 읽었고 부모 잘 만나 다양한 체험도 더 많이 했을 텐데 왜 그것이 가치관으로 서지 않고 이 사회에 도움이 안될까? 그들에 비하면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기본적으로 측은지심이 있는 한빛은 잘 자랐다고 자부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한빛같은 젊은이가 있는 한 우리 사회는 <희망>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빛의 실종을 뒤늦게 연락받고 불안속에서 tvN을 찾아가 선임PD를 만났습니다. 선임PD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 시간 넘게 한빛이 불성실했고 비정규직을 무시해 갈등을 초래했다며 비난했습니다. 엄마로서 우선 사과를 했지만 27년간 한빛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저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같이 오셨던 선생님도 본인이 어린 시절부터 보아온 한빛과 너무 달라 뭔가 느낌이 이상해 중간부분부터 핸드폰으로 녹음을 하셨습니다.

한빛이 첫 월급을 반반씩 나누어 엄마 아빠한테 선물했습니다. 저는 엄마가 아직 경제력이 있으니까 이렇게 돈 쓰지 말고 결혼자금을 위해 적금을 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참 후에도 적금을 안 든 것 같아 물어보니 “엄마, 저 돈 벌면 꼭 하고 싶은 것이 있었어요.” 하면서 그동안 월급을 세월호, 대학때 처음 사회현실에 눈을 뜨게 한 기륭전자, KTX승무원, 빈민연대 등에 후원금으로 냈다는 것이었습니다. 12월까지 내고 내년부터 적금 들려구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사회에 나온 아들이 순수하지만 현실적이지 못한게 걱정이 되었지만 아들의 생각이 올바르니까 동의했습니다. 그런 생각을 갖고 실천하는 아들이 기특했습니다. “그런데 결혼하면 그렇게 월급을 전액 후원하면 안 된단다. 후원금은 여유돈이 있을 때 내거나 생활비를 고려해서 배분하는 거야. 그리고 아내한테도 꼭 비밀로 해야 한단다. 그걸 이해하는 아내는 없어”하고 웃으며 격려했습니다. 아들이 걱정되긴 했지만 등을 두드려 주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키워왔으니까요.

한빛에게 건너 듣는 회사생활의 이야기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 투성이였습니다. 우선 촬영에 들어간 후론 거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일주일에 한 두 번, 그것도 새벽 2~3시가 되어야 들어와서, 겨우 두 시간 자고 나가는데 몸이 버틸 수 있을지 불안했습니다. 첫 방송 직전에 촬영팀 교체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계약파기로 인한 그들의 애환, 고통에 대해 마음아파 했는데, 그렇게 쉽게 사람을 짤를 수 있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식탁에 마주 앉은 아들의 얼굴이 너무 상해서 그렇게 힘드니? 물었습니다. 본인이 맡은 일을 설명하는데, 사람이 오죽 없으면 A부터 Z까지 모든 일을 해야 하나 사람을 이렇게 기계처럼 돌려도 되나, 제가 상황을 봐도 알바를 써서 할 수 있는데 경비를 절약하기위해 혹사를 시키고 신입이라고 맘대로 시켜먹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그들의 조직에 의문이 든 적도 많았습니다. 드라마 시스템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최소한의 인간에 대한 예의는 있으려니 거기도 사람이 하는 일인데 하고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이 구조는 사람을 갉아먹고 비참하게 만드는 공간이었습니다. 엄마로서 미리 알았더라면 한빛아 그냥 나와. 거기 아니면 너 꿈을 펼칠 곳이 없겠니? 좀 더 길게 생각하며 살자 했을텐데 저는 tvN이 따듯한 드라마도 만들고 감수성을 다루는 콘텐츠이기에 설마했습니다. 이제 와서 지켜주지 못한 게, 함께 해주지 못한 게 자책감으로 저를 괴롭힙니다.

신문과 공병도 모아서 폐휴지 모으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드리자던 아들이었습니다. 분리수거일에 내놓으면 집안이 깔끔한데 저는 가난하고 힘든 약자를 배려하는 아들의 뜻을 존중했고 아들한테 또 배웠습니다. 이런 아들이었는데 불성실하고 계약직을 무시했다니 말도 안되었지만 아들을 찾는 일이 우선이라 마음이 급했습니다.

선임PD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한빛 소식을 들었고 한빛이 남긴 글을 보고 나서야 선임PD의 의도를 확연히 알 수 있었습니다. 철저한 책임 회피였습니다. 같이 일했던 조연출이 종방연에 불참했는데도 찾을 생각도 안 했고 새벽까지 먹고 마셨습니다. 실종신고가 들어가자 본인에겐 책임이 없음을 말하고자 엄마에게 아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폄하했습니다. 혹시 무슨 일이 있지 않을까하는 걱정은 아예 없었습니다. 그건 그에게, tvN에서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인간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분노했습니다. 다른 회사나 조직에도 이런 사람들이 존재할까 소름이 끼쳤습니다. 이후 단체 카톡방을 보면서 그들이 한 젊은이를 얼마나 비열하게 모멸감을 주며 코너로 몰아갔는지도 알 수 있었습니다. 문화 예술이란 말이 무색했습니다.

그들은 괴물이었습니다. 인간의 정서와 마음을 따듯하게 움직이는 콘텐츠를 만드는 곳임에도 가장 비인간적이고 야비했습니다. 그럴듯한 포장과 시청률을 위해 인간의, 한 젊은이의 생명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괴물들이 드라마를 만들고 인간의 감성을 따듯하게 움직인다고 홍보합니다.

그래서 저는 장례식때 CJ측의 조문을 거절했습니다. 정말 뻔뻔스럽게 찾아온 그들. 한빛의 삶을 매도한 것과 한빛을 죽음에까지 몰고 간 극악무도하고 잔인한 배척에 대해 사과를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또다른 죽음이 나오지 않도록 살인적인 노동강도로 혹사시키는 구조적인 문제점을 해결 개선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돌아온 답은 개인적인 문제였다며 축소시켰고 전혀 반성이 없었고 개선 의지도 없었습니다.

취업하기도 힘든 요즘. 공채로 들어온 것에 감지덕지하고 시키는 대로 해라. 나도 그렇게 살았다. 그런데 뭔 이의제기가 있냐? 알아서 기지 않으면 윗선에 보고해 원하지 않는 곳에 배치하면 되니까. 그리고 계약직도 감사해라. 우리는 너희를 언제든 자를 수 있다. 이런 사고방식이 팽배했던 것입니다. 그런 속에서 만들어지는 작품은 과연 누구를 위한 작품이고 모든 것을 감춘 채 시청자를 감동시켜 시청률만 높이면 된다는 시스템속에서 우리 아들은 희생된 것입니다.


우리 집은 부부교사로 두 아이를 개념있게 키우고자 한 평범한 가정입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하고 작은 일에 행복을 느끼며 이웃과 나누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평범하게 자란 청년도 절망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보았습니다.

한빛이의 죽음이 안고 있는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치열하게 고민하며 성실하게 살아가는 많은 대다수의 젊은이들은 또 희생을 감수해야 하고 큰 절망속에서 비참하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과정이 힘들고 거대한 괴물과의 싸움이지만 한빛에게 엄마가 끝까지 싸울 수 있게 기도해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의식이 투철하고 강하지 못하지만 아들에게 진 빚을 갚아야 하고 이 땅의 청년들이 노력하는 만큼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이 되길 바랍니다.


저는 아들 한빛을 가슴에 묻지 않고 부활시킬 것입니다. 한빛의 죽음이 결코 헛되지 않고 한빛이 이 사회에 던지고자 했던 메시지가 실현될 때까지 엄마로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여러 분들께 진실을 밝히는데 함께 하고 도와달라고 간절하게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2017.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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