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 뉴스레터 : 2020년 여름호] <나의 길을 밝혀준 故 이한빛 PD>(김선희)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2020-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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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길을 밝혀준 故이한빛PD>  김선희

가정을 돌보며 직장 생활을 하다보니 드라마 볼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드라마야 말로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멤버십 형성이라는 생각에 1년에 한 두 편 정도 엄선하여 보곤 했다. 그 중 한 편인 드라마 <혼술남녀>는 노량진에서 삶의 희망을 찾는 공시족 청년들의 현실을 담은 작품이다. 때론 무겁게, 때론 가볍게, 다양하고 재미있는 캐릭터로 유독 젊은이들에게 더 가혹한 우리 시대의 애환이 따뜻하고 생생하게 그려져 있었다. 그러나 정작 드라마 제작에 조연출로 참여했던 故이한빛PD가 살인적 방송 노동의 현실을 고발하며 세상을 등졌다는 뉴스를 들었을 때,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배신감을 느꼈다. 


2017년까지 주로 중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는 교사였던 내가 2018년에 고등학교로 자리를 옮긴 뒤 학벌로 차별하는 이 사회가 아이들의 성장기를 얼마나 형편없이 망가뜨리고 있는지 생생하게 목격하게 되었다. 그 뒤로 ‘아이들이 잘 커가기 위해서는 교육 뿐 아니라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는 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오마이뉴스의 시민기자로 나서 공교육 정상화에 대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더 나은 사회의 본으로 삼게 된 덴마크를 통해 구체적인 교육의 혁신을 꿈꾸게 되었다. 그래서 오마이뉴스의 오연호 대표가 덴마크를 오가며 쓴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와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를 읽고 독후감 쓰기 대회에 참가했다. 


대회의 시상식 자리에서 우연히 자애로운 인상의 김혜영 선생님의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행사 시작 전까지 당시 한 중학교의 교감이라고 소개하신 선생님께 재직 중이던 학교의 비민주적인 실태를 고발하듯 수다스럽게 불만을 토로했다. 그저 묵묵히 들어주시니 마음이 편해서 선생님의 말씀은 들을 겨를도 없이 마냥 주절거렸다. 


행사가 시작된 후 오연호 대표가 故이한빛 군의 어머니라며 각별히 호명하여 소개한 분은 다름 아닌 옆자리의 김혜영 선생님이었다. 그 큰 슬픔을 이기려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서 이 자리까지 힘겨운 걸음을 떼신 선생님의 마음을 생각하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좀 전까지 선배교사라는 이유만으로 철없이 학교에서 받은 상처를 일방적으로 들이밀며 공감 받고 싶어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어서 나도 모르게 선생님의 두 손을 덥석 잡아 버렸다. 서툰 표현에 불편한 듯 선생님은 손을 빼셨다. 더 당황스러워진 나는 ‘이대로 헤어질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마침 오연호 대표가 뒷풀이 자리를 마련하여 함께 참석하시길 권했다. 김혜영 선생님이 근처에서 다른 일을 보고 있던 남편, 이용관 선생님과 동석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셨다. 나는 잠시 기다려달라는 말씀을 남기고 광화문 교보문고로 뛰어가 정혜신, 이명수 선생님의 저서 <당신이 옳다>를 한 권 사들고 다시 서울시청 부근의 뒷풀이 장소로 돌아왔다. 그 자리에서 한빛노동인권미디어센터의 설립 배경을 듣게 되었다. 자리를 마치고 나오며 김혜영 선생님께 <당신이 옳다>를 선물했다. 선생님은 나의 들이댐에 조금은 익숙해지신 듯 ‘꼭 읽어보고 싶은 책’이었다며 감사를 표하셨다. 두 아들의 엄마이자 30여 년 교직 생활 끝에 그 힘든 여성 관리자로의 승진까지 이뤄내신 분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맑고 순한 미소가 진하게 기억에 남았다. 전교조 해직 교사 출신으로 ‘자녀 교육은 아버지의 몫’이라는 생각에 두 아들의 돌봄을 전담하셨다는 이용관 선생님의 우직하고 힘찬 눈빛도 오래도록 떠올랐다. 그래서 김혜영, 이용관 선생님과 페이스북 친구를 맺어 한빛노동인권미디어센터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 오로지 두 분 선생님을 뵙고 싶다는 마음으로 몇 차례 행사에 참석하기도 했다. 두 분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당부하는 한빛 군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그 즈음 내가 좋아하는 이들과 더 단단히 연결되고 싶다는 마음에 페이스북 포스팅으로 저자 정혜신 박사님과 함께하는 카카오 프로젝트100, <당신이 옳다>를 소개했다. 특히, 김혜영 선생님과 함께하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다. 그 마음이 닿았는지 선생님도 자발적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하셨다. 100명의 참여자가 100일간 도서, ‘당신이 옳다’에서 말하는 ‘총조평판(충고, 조언, 평가, 판단)없는 공감을 실천하며 사례를 나누는 활동이었다. 선생님은 프로젝트의 후반부까지 한빛 엄마로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다가 프로젝트를 주도한 정혜신 박사님의 권유로 마침내 조심스럽게 한빛의 이야기를 풀어내셨다. 그러자 글을 통해 저마다의 상처와 아픔을 드러내며 돌봄으로써 기적 같은 사랑의 힘을 체험했던 참여자들의 마음이 온통 김혜영 선생님과 한빛을 향해 쏟아졌다. 


정혜신 선생님은 프로젝트 참가비 전액을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에 기증하고 함께 후원회원이 되어 지속적으로 연대하자는 의견을 내셨다. 모두 환영하며 앞을 다퉈 회원가입을 했다. 프로젝트를 마친 뒤 열린 오프라인 뒷풀이에서 우리는 몇 시간이고 청년, 한빛에 대한 궁금함을 드러내며 김혜영, 이용관 선생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어려서부터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투쟁하는 현장에서 자란 한빛, e-메일을 주고받으며 아버지와의 토론에 팽팽히 맞섰던 한빛, 다른 이들의 마음부터 살피는 엄마의 자랑 한 번을 못들은 한빛, 학생운동을 통해 더 좋은 세상을 열망한 한빛, 마음이 아픈 이들을 위해 월급의 절반을 내어놓았던 한빛, 유쾌하고 창의적이며 멋스럽고 잘생긴 한빛... 


우리는 천하 명창의 절창을 듣듯 한빛 이야기에 온 마음을 기울이며 울고 웃었다. 어느새 우리의 가슴속에도 한빛이 기적처럼 생생하게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무시로 ‘한빛이 꿈꾼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생각한다. 


매년 아이들을 처음 만날 때 마다 ‘어디서나 당당한 주인공이 되자’라고 말한다. 


누구나 출신, 학벌, 나이, 성별에 관계없이 자신의 존엄을 지켜낼 수 있는 이 사회의 동등한 주인이 되자는 바람을 담은 것이다. 더는 수많은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누군가 홀로 십자가를 지고 싸워야 하는 사회가 아니라 노동자 저마다 스스로의 안전을 철통같이 지키며 당당하게 권익을 주장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더불어 어깨동무로 함께 가는 건강한 연대를 꿈꾼다. 


아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 속에서 한빛의 바람이 실현될 수 있도록 나는 오늘도 학교 현장에서 한빛과 함께 발맞춰 걷고 있다. 한빛은 각자도생의 경쟁 사회를 부추기는 교육 현장의 모순을 목도하며 존재의식에 한층 민감해진 나의 남은 교직 생활 동안 가야 할 길을 선명하게 비추는 등대가 되어 준 것이다.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서 당당하게 다시 살아날 한빛을 꿈꾸며, 한빛의 뜻을 이어가는 일에 지속적으로 동참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의 모든 가족에게 고개 숙여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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