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맞는 비(서울주보 / 2022.6.19)

김혜영
2022-06-18
조회수 32

함께 한다는 것은 우산을 씌워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이라고 합니다. 한빛(프란치스코)이 떠난 후 친구, 동료로부터 한빛이 비정규직 등 약자와 소외된 이웃에 많은 시간 함께 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청년이면 누구나 고민했을 아름다운 삶이지만 선하고 평범하게 살아가고자 했던 한빛같은 청년에게 이 사회가 그만큼 절망적인 것이 저를 더 처절하게 했습니다.

그만큼 세상에는 애도조차 힘든 사람이 있습니다. 산재(산업재해)‧재난참사 유가족들입니다. 그들은 어느 날 갑자기 가족을 잃은 고통을 보듬지도 못한 채 죽음의 진실규명을 위해 생계와 일상을 버리고 외롭고 힘겹게 싸워야 합니다. 아울러 더 이상의 죽음을 막기 위해 사회적, 제도적 구조 개선을 외치고 나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하면 매일 7~8명이 퇴근하지 못하는 현실은 바뀌지 않음을 호소합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함께 비를 맞아 주었고 집중해주었습니다. 왜?라고 질문했습니다. 태안에서, 평택항에서 청년노동자가 왜 죽었지? 특성화고등학생이 왜 실습 중에 사망했지? 한빛은 왜? 차별금지법이나 비정규직 문제는 왜 계속 얘기되지? 하고 질문하며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개선할지 끝없이 묻고 안전한 세상과 존엄한 사람이 될 수 있는 답을 함께 찾았습니다. 그 부축의 힘으로 ‘다시는 일하다 죽지 않는 사회’를 위한 산재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이 만들어졌고 비록 내 가족은 죽었지만 그 슬픔을 넘어 다시는 죽음이 없는 세상을 만들고자 피해자운동에 주체적으로 나설 수 있었습니다.

교구 노동사목위에서도 지난 4월 산재 사망 노동자 추모미사로, 5월 ‘산재 유가족 곁으로’로 유가족을 위로하고 함께 해주었습니다. ‘하느님을 닮은 인간은 모든 것 위에 있다’는 복음 말씀은 ‘자본보다 인간’ ‘이윤보다 생명’이라는 상식을 다시 일깨워 주었습니다.

온몸과 마음을 다해 부축해주는 아름다운 사람도 만났습니다. 흑산도 어부는 힘들게 수확한 해산물을 판매할 때마다 수익금의 일부를 뚝 떼어 후원합니다. 반짝반짝 등대가 될 수 있어 기쁘다는 그의 나눔의 삶은 큰 응원이 됩니다. 불광동 작은 서점 <한평책방>에서 열렸던 ‘괜찮으시다면 한빛을 밝혀주시겠어요?’에서는 <네가 여기에 빛을 몰고 왔다>를 읽는 만큼 세상이 따듯해진다는 믿음으로 책이 판매될 때마다 촛불을 밝혔습니다. 가톨릭 신자인 책방지기가 성모님의 은총에 감사하는 자신만의 예식이라고 했을 때 한 번도 이런 전례를 해 본 적이 없던 저는 부끄러웠습니다. 175개의 촛불이 켜지는 기적이 일어났음에도 내내 무모한 일이라고 의심했었습니다.

나보다 더 상대적인 약자에게 손 내밀고 귀를 기울이고 주어진 시간을 그들에게 배려할 때, 부축이 또다른 부축으로 이어지는 것을 볼 때 순간순간 예수성심의 신비를 느끼며 예수님의 지극한 사랑에 울컥합니다.

오늘도 함께 비 맞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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